[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고위험 산모 병상 실종…출산이 '원정 의료'가 된 나라

 
산부인과 분만실 사진연합뉴스
산부인과 분만실 [사진=연합뉴스]

충북 청주의 임신 29주 산모가 응급 분만이 가능한 병원을 찾지 못한 채 부산까지 이송됐다가 태아를 잃었다. 충청권 병원 여러 곳이 전문의 부재와 병상 부족 등을 이유로 수용하지 못했고, 결국 산모는 헬기로 300㎞ 넘는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수술이 시작됐을 때는 이미 늦었다. 같은 날 세종의 다른 고위험 산모도 부산으로 옮겨진 것으로 전해졌다. 출산을 위해 타지역 병원을 전전하는 ‘원정 의료’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 비극은 단일 사고가 아니다. 지난 2월에는 대구에서 조산 증세를 보인 임신 28주 산모가 지역 대형병원 7곳에서 수용 불가 통보를 받은 뒤 경기 성남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쌍둥이 중 한 명은 숨졌고 다른 한 명은 뇌 손상을 입었다. 지난해 충북 음성에서는 진통 중이던 산모가 병원을 찾지 못해 구급차 안에서 출산했다. 지역만 다를 뿐 장면은 반복된다. 산모가 병원을 찾지 못하고, 태아는 골든 타임을 놓치며, 가족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첫째는 절대적 인프라 부족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8곳의 지역 내 고위험 산모 치료실 이용률이 전국 평균보다 낮았다. 세종은 44.35%로 가장 낮았고 경북·전남·충북·충남 등도 하위권이었다. 이는 해당 지역 산모들이 거주지 안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신생아 중환자 치료실 이용률 역시 다수 지역이 평균 이하로 나타났다.

둘째는 의료인력 붕괴다. 인구 10만 명당 산부인과 전문의 수는 경북 7.6명, 세종 8.7명, 충북·충남·경남 8.8명 등으로 전국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 병상이 있어도 의사가 없고, 의사가 있어도 야간·응급 당직 체계가 유지되지 않으면 병상은 숫자에 불과하다. 지방 대학병원조차 산과 전문의 1명 체제로 버티는 곳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셋째는 왜곡된 보상 구조와 과도한 위험 부담이다. 분만은 24시간 응급 대응이 필요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많다. 그러나 수가는 낮고 의료사고 분쟁 부담은 크다. 젊은 의사들이 산부인과, 특히 분만 분야를 기피하는 이유다. 필수의료를 시장 논리만으로 방치한 결과가 지금의 공백이다.
 
문제는 출산율을 높이겠다며 막대한 예산을 쓰면서도 정작 아이를 낳을 병원은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가 출생 장려금을 늘리고 각종 지원책을 내놓아도 응급 분만 체계가 무너지면 정책은 공허하다. 아이를 낳는 순간 가장 위험한데, 그 순간 국가가 보이지 않는다면 누가 안심하고 출산을 결심하겠는가.
 
고위험 산모 집중치료실과 신생아 중환자실을 권역별로 대폭 확충해야 한다.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마취과 인력에 대한 공공 지원과 수가 정상화도 시급하다. 실시간 병상 공유 시스템을 전국 단위로 구축해 119와 병원이 즉시 연계되도록 해야 한다. 고위험 분만을 담당하는 의료진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 역시 정비할 필요가 있다.
 
출산은 축복이어야지 생존 게임이어서는 안 된다. 산모가 헬기를 타고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가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라라면, 저출생 대책 이전에 의료 체계부터 실패한 것이다. 병상 하나, 전문의 한 명이 생명을 가른다. 정부와 국회는 더 늦기 전에 ‘원정 출산 국가’라는 오명을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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