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란전 대응과 관세 협상, 무역전쟁이 이제 사실상 하나의 전선으로 수렴되고 있다. 군사·안보·통상이 각각의 궤도를 달리던 시대는 끝났다. 미국은 동맹의 안보 기여와 무역 질서를 동시에 압박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국제 질서 재편에 나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연합(EU)의 이란전 비협조를 겨냥하듯 독일 주둔 미군 5000명 철수 검토 카드를 꺼내든 직후, EU산 자동차 관세를 25%로 환원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안보와 통상을 하나의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이다. '미국 우선주의'는 더 이상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 국제 거래의 작동 원리가 되고 있다.
이 문제가 한국과 무관할 수 없다. 한국은 세계에서 미국 안보 의존도가 가장 높은 동맹국 가운데 하나인 동시에, 수출로 먹고사는 개방형 경제다. 중동발 지정학적 충격과 미국의 관세 압박이 동시에 밀려오는 지금, 한국은 두 개의 전쟁 사이에서 가장 어려운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자동차·반도체·배터리·조선 등 한국의 핵심 산업은 미국 시장과 공급망에 깊숙이 연결돼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이 바뀔 때마다 기업의 투자 계획과 생산 전략, 수익성 전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장기화할 경우 에너지 수입 비용 상승과 물류 차질 부담까지 한꺼번에 떠안게 된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사실상 '관세 전쟁'과 '에너지 전쟁'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이중고다.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공급망의 미국 내 이전, 동맹국의 전략적 기여 확대, 그리고 대미 투자 확대다. 이미 일본과 유럽 기업들은 미국 현지 생산 확대와 대규모 투자로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한국 역시 감정적 접근 대신,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는 현실적 협상 전략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첫째, 미국 내 전략 산업 투자와 국내 산업 공동화 문제를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 미국 투자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핵심 기술과 고부가가치 생산기반까지 해외로 유출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국내 연구개발(R&D) 역량과 첨단 소재·장비 생태계, 미래 인재 기반은 반드시 국내에 남겨야 한다.
둘째, 안보 기여 역시 단계적·현실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 문제만 하더라도, 무리한 군 자산 투입보다는 정보 공유, 연락장교 파견, 국제 공조 참여 등 실질적이면서도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방식을 우선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익은 원칙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감당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셋째, 통상 외교의 수준 자체를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한다. 지금의 무역 협상은 단순한 관세 문제가 아니다. 안보·에너지·투자·기술 패권이 복잡하게 얽힌 총력전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 국방부가 따로 움직이는 시대는 지났다. 경제안보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통합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정치권의 진영 논리다. 미국의 압박에 굴복한다며 비난하거나, 반대로 미국의 요구 수용을 애국으로 포장하는 이분법 모두 위험하다. 냉혹한 국제 질서 속에서 중요한 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생존이고, 구호가 아니라 계산이다.
세계 질서는 지금 빠르게 힘의 논리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공짜 안보'도, '무조건적 자유무역'도 없다는 신호를 분명히 보내고 있다. 한국은 그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고 산업 경쟁력을 지키면서, 동맹의 틀 안에서 최대한 협상 공간을 확보하는 것—그것이 지금 한국 정부에 주어진 가장 어렵고도 피할 수 없는 숙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