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를 평가하는 가장 단순한 기준은 성적표다. 얼마나 벌었는지, 주주에게 얼마나 돌려줬는지, 회사 가치가 얼마나 올랐는지다. 이 기준으로 보면 양종희의 연임 논쟁은 사실 이미 답이 나와 있는 문제처럼 보인다. KB금융은 역대 최대 실적을 냈고, 주주환원율은 업계 최고 수준이다. 취임 당시 20조 원대였던 시가총액은 세 배 가까이 불어났다. 시장의 언어로 번역하면 “검증된 경영자”라는 평가다. 이 정도 성과라면 글로벌 투자자들이 굳이 다른 선택을 할 이유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논쟁은 끝나지 않는다. 이유는 분명하다. 금융은 단순한 사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은행 하나의 문제는 기업과 가계, 그리고 국가 경제 전체로 확산된다. 금융회사의 실패는 특정 기업의 손실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금융은 늘 두 개의 기준으로 평가된다. 시장은 결과를 본다. 얼마나 잘했는가를 묻는다. 반면 정책은 과정을 본다. 어떻게 운영됐고, 위험은 적절히 통제됐는지를 따진다. 지금 양 회장의 연임을 둘러싼 논쟁은 이 두 기준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이 충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른바 ‘67% 룰’이다. 회장 연임을 단순 과반이 아닌 특별결의로 결정하겠다는 방안이다. 특별결의는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찬성과 발행주식 총수의 일정 비율 이상 출석을 요구한다. 겉으로 보면 문턱을 높인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연임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기준이 높아지면 통과하기 어려워지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작동 방식은 조금 다르다. 의결 기준이 높아질수록 투자자들은 더 신중해진다. 불확실성이 큰 새로운 후보보다는 이미 검증된 인물에 표가 몰리는 경향이 강해진다. 결과적으로 경쟁은 줄어들고 선택지는 좁아진다. 이 과정에서 현직 CEO는 구조적 우위를 갖는다. 양 회장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실적이라는 확실한 근거를 가진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대안을 선택할 이유가 약해진다. 기준 강화가 오히려 현직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67% 룰’은 역설적인 제도다.
이 같은 흐름은 이미 국내 금융권에서 확인됐다. 진옥동과 임종룡은 높은 찬성률로 연임에 성공했다. 특별결의 수준을 훨씬 웃도는 지지를 얻었다. 제도가 강화됐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성과가 검증된 현직 경영자에게 표가 집중되는 흐름이 반복됐다. 양 회장 역시 같은 흐름 위에 서 있다.
그렇다면 왜 금융당국은 이처럼 엄격한 기준을 도입하려 하는가. 답은 과거에 있다. 한국 금융은 이미 “성과만 보고 달려간 결과”의 위험을 경험했다. 2000년대 초 카드사 사태는 단기간 실적 경쟁이 어떻게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당시 카드사들은 공격적으로 신용을 확대하며 외형 성장을 이뤘지만, 내부 통제와 리스크 관리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숫자는 좋아 보였지만 구조는 취약했다. 결국 대규모 부실이 발생했고, 그 부담은 사회 전체로 전가됐다.
해외 사례는 더 극적이다. 리먼 브라더스는 높은 수익을 기록하며 성장했지만 과도한 레버리지와 위험한 자산 구조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했다. 단기 성과 중심 경영이 얼마나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다. 웰스 파고 역시 오랜 기간 안정적 실적을 유지했지만, 내부에서 고객 동의 없이 계좌를 개설하는 관행이 드러나며 대형 스캔들로 이어졌다. 실적은 좋았지만 과정이 잘못됐던 것이다. 이 사건은 “성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교훈을 남겼다.
여기서 양 회장의 상황은 더욱 흥미로워진다. 그는 시장이 요구하는 성과를 이미 충족했다. 동시에 정책이 요구하는 기준의 시험대 위에도 올라섰다. 특히 KB금융은 외국인 지분 비중이 높은 구조다. 이는 실적 중심 평가에 유리한 환경이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자 역시 하나의 집단이 아니다. 각기 다른 투자 목적과 기준을 가진 투자자들의 모임이다. 여기에 의결권 자문사와 정책 신호가 더해지면 표심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단순히 “성과가 좋으니 연임은 확정”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결국 이 문제는 한 사람의 연임 여부를 넘어선다. 핵심은 금융회사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통제할 것인가다. 시장이 결정할 것인가, 아니면 정책이 개입할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히 KB금융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금융 전체가 직면한 구조적 질문이다. 정답은 둘 중 하나가 아니다. 금융에서는 두 기준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시장의 평가와 제도의 검증이 함께 이뤄질 때 시스템은 안정된다.
해법 역시 그 지점에서 찾아야 한다. 성과와 제도를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연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회장 선임 과정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 후보군 선정과 평가 기준이 명확히 공개돼야 한다. “누가 되느냐”보다 “어떻게 뽑느냐”가 신뢰를 만든다. 둘째, 이사회의 독립성이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구조가 형식이 아니라 실제로 기능해야 한다. 셋째, 시장과 정책이 최소한의 공통 기준을 공유해야 한다. 서로 다른 메시지가 반복되면 의사결정은 왜곡된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양 회장의 연임은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성과와 원칙을 동시에 통과한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 반대로 어느 하나라도 충족되지 못한다면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그 경우 연임 여부와 관계없이 지배구조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와 해외 사례가 보여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금융에서 성과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고 통제만으로도 답이 되지 않는다. 성과는 출발점이고, 제도는 검증 장치다. 이 두 단계를 모두 통과할 때 비로소 리더십은 완성된다. 어느 한쪽만 강조하면 균형은 무너진다.
지금 양종희 회장이 서 있는 자리는 바로 그 마지막 시험대다. 시장의 평가를 넘어 제도의 검증까지 통과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한 사람의 연임을 넘어 한국 금융의 방향을 결정짓는 신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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