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좌우명은 짧았으되 깊었다. “자랑스럽게 살지 못하더라도 부끄럽게는 살지 말자.” 이 한 문장은 말이 아니라 삶이었고,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었다.
한승헌선생은 ‘인권변호사’라는 말조차 경계하며 “변호사는 다 인권변호사다”라고 말했다. 이는 직업의 구분이 아니라 법이라는 것의 본질을 다시 묻는 질문이었다. 법은 강자를 위한 기술이 아니라 약자를 위한 마지막 울타리라는 너무도 당연한 원칙을 그는 끝까지 붙잡고 살았다.
그의 삶은 엄숙함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웃음과 해학으로 시대를 건넌 사람이었다. 어느 모임에서 “여기서 한 변호사가 변론한 사람치고 감옥 안 간 사람 있으면 손 들어보라”는 말이 나오자 그는 “맞다, 그런데 감옥 가면서 나한테 인사 안 한 사람 있으면 손 들어보라”고 응수했다. 또 “검사들이 나를 반미주의자라고 하는데 나는 아메리카노만 마신다”고 말하며 시대의 낙인을 웃음으로 녹여냈다. 그의 웃음은 가벼움이 아니라 깊이였고, 그의 해학은 도피가 아니라 저항이었다. 생의 마지막 1년, 그는 더욱 시와 웃음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고 어린아이 같은 미소로 곁에 머물다가 고향 전주 우석대병원에서 떠났다. 그 모습은 권력의 자리가 아니라 인간의 자리에서 빛났던 한 성자의 풍경이었다.
그의 호 ‘산민(山民)’은 산처럼 무겁고 백성처럼 낮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이를 “산골 사람 같은 민초들과 함께 있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는 단순한 풍류가 아니라 삶의 방향이었다. 그는 위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로 내려갔다.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고통의 주변으로 향했다. 그래서 그의 법정은 언제나 약자의 자리였고, 그의 변론은 기술이 아니라 양심의 목소리였다.
그의 삶을 이루는 세 축은 자강, 자율, 자립이었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하늘은 굳세게 운행하니 군자는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아야 하며(천행건 군자이 자강불식, 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 땅은 두텁게 만물을 싣고 있으니 군자는 두터운 덕으로 세상을 품어야 한다(지세곤 군자이 후덕재물, 地勢坤 君子以厚德載物)”고 하였다. 그는 이 말을 그대로 삶으로 실천했다.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면서도 타인을 품는 삶, 그것이 그의 자강이었다. 자율에 있어 그는 임미누엘 칸트가 말한 도덕적 자율, 곧 스스로 세운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인간의 자유를 실천했다. 이는 공자가 말한 “마음 가는 대로 행하되 법도를 넘지 않는다(종심소욕 불유구, 從心所欲 不踰矩)”의 경지와도 맞닿는다. 그는 자유로웠지만 결코 타인을 해치지 않았다. 자립에 있어 그는 임제의현 선사가 말한 “어디에 있든 주인이 되고, 서 있는 그 자리가 곧 진리다(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는 어떤 자리에서도 흔들리지 않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았다.
그는 우리 사법 역사에서 드물게 검사, 변호사, 피의자, 증인,법대교수를 모두 경험한 사람이었다. 특히 군사정권 시절 수많은 시국 사건과 양심수 사건, 고문 피해 사건에서 그는 언제나 변호인으로 나섰다.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과 같은 중대한 사건에서도 그는 권력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구속과 탄압을 겪었으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변론은 단순한 법률 해석이 아니라 정의에 대한 선언이었고, 그의 삶은 법의 기술이 아니라 양심의 실천이었다.
추모식에서 울려 퍼진 그의 시 <나의 길>은 그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는 말없이 나의 길을 가련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길을 걸었다. 돌아서지 않았고, 타협하지 않았으며, 흔들리지 않았다. 또 다른 시에서는 “한 자루 촛불이 되어 어둠을 밝히겠다”고 노래했다. 그는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다.
어느 날 한 언론인이 "서울대 법대출신이 아니고, 전북대 법대출신이었냐"며 그의 학벌을 두고 의아해하자, 언론인의 선배가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두 마리 개를 버려라”라고 일갈한 일화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드러낸다.실은 한변호사는 전주고 수석졸업생이다. 그는 사람을 간판으로 보지 않았고, 오직 삶으로 판단했다.
그의 삶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청렴을 지키며, 낮은 곳으로 향한 삶이었다. 그는 자강과 자율과 자립을 온전히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단순한 법조인이 아니라 시대의 양심이었다.
오늘의 법조 현실을 돌아보면 깊은 고민이 생긴다. 대형 로펌과 자본의 유혹, 물질적 성공의 욕망 속에서 법은 점점 기술이 되고 정의는 점점 상대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변호사는 공익보다 이익을 먼저 고민하고, 법조는 점점 시장의 논리에 끌려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법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끝까지 지켰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그의 삶을 다시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법조는 직업이 아니라 사명이며, 변론은 기술이 아니라 양심의 표현이어야 한다. 그는 이미 그 길을 보여주었다.
결국 그의 삶은 한 문장으로 돌아온다. '부끄럽게는 살지 말자.' 이 한 문장은 오늘의 법조인들에게 던지는 가장 준엄한 물음이며, 우리가 다시 붙잡아야 할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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