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노딜'로 끝난 미·이란 협상…호르무즈 이후는 세계의 문제다

미국과 이란의 마라톤 협상이 결국 합의 없이 끝났다. 21시간에 걸친 협상에도 양측은 핵 문제와 호르무즈 해협 개방이라는 핵심 쟁점에서 끝내 접점을 찾지 못했다. 미국은 핵 개발의 영구 포기를 요구했고, 이란은 우라늄 농축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협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번 결렬은 놀라운 결과가 아니다. 전쟁과 협상이 병행되는 국면에서 양측은 ‘합의’보다 ‘지렛대’를 택했다. 미국은 군사력과 제재로 압박하고,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전략적 요충을 쥐고 맞선다. 문제는 이 지렛대가 더 이상 양자 간 힘겨루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에너지의 대동맥이다. 이곳이 두어달간 사실상 봉쇄되면서 충격은 곧바로 유가, 물가, 환율, 공급망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세계 경제는 공통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향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이 “모든 길이 더 높은 물가와 더 낮은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경고한 것은 단순한 전망 수정이 아니다.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고착될 수 있다는 구조적 경고다.  

이 같은 위기의식 속에서 국제 공조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오는 월요일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그리고 국제에너지기구(IEA)가 한자리에 모여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위기와 그 파급효과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미 정책 자문과 금융 지원을 포함한 공동 대응 체계 구축도 추진되고 있다. 이는 이번 사태가 더 이상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공조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들 기관은 위기를 진단하고 완화하는 역할에는 강점이 있지만, 갈등의 근원인 지정학적 충돌을 해소할 힘은 갖고 있지 않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정치와 외교의 영역에 남아 있다. 

호르무즈가 ‘무기화’된 순간, 에너지에 의존하는 모든 국가가 이해당사자가 되었고, 그 파장은 세계 경제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더 이상 미국과 이란, 일부 중동 국가들만의 문제로 볼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외교의 틀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협상은 제한된 당사국 중심으로 이뤄지고, 글로벌로 확장된 이해관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마저 미·중·러 간 이해 충돌 속에 사실상 기능을 잃으면서 국제 조정의 공백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제는 접근을 바꿔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을 협상 카드가 아닌 국제 공공재로 재정의해야 한다. 주요 에너지 소비국과 산유국이 함께 참여하는 다자 협의체를 통해 해협의 안정적 이용과 비군사화를 제도적으로 담보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교착 상태가 이어진다면 그 대가는 지역에 머물지 않는다. 국제에너지기구의 파티 비롤 사무총장이 지적했듯, 이번 에너지 위기는 과거 주요 오일쇼크를 합친 것보다 더 클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질서의 균열이다. 

외교는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몫이다. 그러나 모든 외교에는 경계가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그 경계를 넘어선 지금, 이 문제를 두 나라의 협상 테이블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승패를 가르는 접근을 넘어 흔들리는 에너지 질서와 세계 경제를 지키기 위해, 전 세계가 책임을 공유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집단적 대응이다.  
 

JD 밴스 JD Vance 미국 부통령이 2026년 4월 12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출국에 앞서 TV 연설을 통해 기자들과 발언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은 장시간 협상에도 불구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EPA연합뉴스
JD 밴스 JD Vance 미국 부통령이 2026년 4월 12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출국에 앞서 TV 연설을 통해 기자들과 발언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은 장시간 협상에도 불구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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