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계산은 어렵지 않게 읽힌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수송의 목줄이다. 이 길이 흔들리면 국제 유가가 출렁이고, 원유와 LNG에 크게 의존하는 아시아 경제가 먼저 타격을 입는다. 실제로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호르무즈를 지나는 원유와 가스의 대부분이 아시아로 향한다고 분석해 왔다. 중국, 인도, 일본, 한국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나라라는 뜻이다. 미국이 “우리가 도울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현장 호위와 위험 부담은 제3국과 분담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한국의 처지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한국은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이 절실한 나라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고, 해협이 장기간 흔들리면 에너지 가격과 물류비, 무역 전반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미 자원안보 경보를 발령하고 비상 점검에 들어간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곧바로 군사적 개입의 정당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필요와 군사적 결단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이 유럽 국가들과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은 지금도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가다. 한반도는 전쟁이 끝난 지역이 아니라 정전 체제가 이어지는 전선이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계속 고도화하고 있고, 최근에도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중동의 군사적 분쟁에 얼마나 관여할 수 있는지는 처음부터 엄격한 기준으로 따져야 한다. 동맹의 책임도 중요하지만, 국가안보의 우선순위는 결코 바뀔 수 없다.
더욱이 중동전의 여파는 이미 추상적인 우려의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최근 한미가 주한미군 패트리엇 전력의 중동 재배치를 논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반도 방공 태세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실제 재배치의 범위와 방식이 어디까지인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중동의 전쟁이 이미 한국 안보 자산의 배치 문제와 연결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전쟁은 멀리서 벌어지지만, 부담은 곧바로 동맹의 전초기지로 넘어온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원칙부터 분명히 세워야 한다. 첫째, 한반도 방어 태세를 약화시킬 수 있는 어떤 조치도 충분한 한미 협의와 국민적 설명 없이 추진돼선 안 된다. 둘째, 호르무즈 문제 대응은 에너지 안보와 해상교통 보호라는 필요성, 그리고 분쟁 개입의 군사적 위험을 분리해서 판단해야 한다. 셋째, 동맹은 존중하되 국익의 최종 판단권은 한국 정부가 스스로 쥐고 있어야 한다. 동맹이 중요할수록 더 냉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의 요구가 공식화될 경우 한국 정부는 매우 곤란한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거절은 부담이고, 수용도 부담이다. 그러나 외교와 안보에서 가장 위험한 선택은 서두르는 결정이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동시에 북한과 대치한 당사국이다. 중동의 전쟁을 관리하는 문제와 한반도의 전쟁을 억지하는 문제를 같은 저울에 올릴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찬반이 아니라 냉정한 우선순위다.
동맹은 소중하다. 그러나 동맹의 이름으로 국익의 기준이 흐려져서는 안 된다.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은 중요하지만, 한국 안보의 중심축은 어디까지나 한반도다. 기본 원칙과 상식은 분명하다. 국제 공조에는 책임 있게 임하되, 그 책임이 국가의 가장 근본적인 안보 과제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 한국 정부가 지금 붙들어야 할 것은 미국의 공개 압박에 대한 즉흥적 반응이 아니라, 동맹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국가의 판단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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