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국제 유가 급등이라는 비상 상황에서 서민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가격에 대한 행정적 개입은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단기 처방이 될 수는 있지만 시장 기능을 위축시킬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는 소비자 판매가격이 아니라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에 상한을 두는 방식이다. 정부는 정유사의 휘발유 공급가격 상한을 리터당 1,724원, 경유는 1,713원으로 정했다.
이는 최근 평균 공급가격보다 휘발유는 약 100원, 경유는 200원 이상 낮은 수준이다. 실제로 일부 주유소에서는 휘발유 가격이 1,700원대로 내려가며 소비자 부담이 일정 부분 완화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가격을 행정적으로 억제하는 정책은 구조적 한계를 갖는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 형성되는 시장의 신호다. 이를 인위적으로 누르면 단기적으로는 가격 안정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공급 축소나 유통 구조 왜곡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석유는 국제 시장 가격에 의해 움직이는 대표적인 상품이다. 국제 유가 상승이 계속된다면 국내 가격을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에너지 소비 신호의 왜곡이다. 가격이 인위적으로 낮아지면 소비는 늘어나기 쉽다. 에너지 가격 상승기에는 소비 절감과 효율 개선이 중요한 대응 수단인데 가격 억제 정책이 이런 흐름을 약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결국 가격 통제는 근본 해결책이라기보다 위기 상황에서 시간을 벌기 위한 임시 조치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국제 정세가 평상시와 다르다. 중동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커지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했고, 국내 물가와 서민 생활에 직접적인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아무 대응도 하지 않는다면 유류 가격 상승이 물가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최고가격제는 한시적 비상 대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지속 기간과 방향이다. 정부는 국제 유가 동향을 반영해 2주 단위로 최고가격을 재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상황이 안정되면 시장 기능을 정상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격 개입이 장기화되면 시장 자율성이 약화되고 정책 의존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또 하나의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 경제는 여전히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에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국제 유가 급등은 곧바로 물가와 산업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단기적인 가격 안정 조치와 함께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전략 비축 확대, 에너지 효율 개선 등 중장기 대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석유 최고가격제는 위기 속에서 나온 정책이다. 그러나 위기는 언제나 정책의 방향을 시험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가격을 억누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장 질서를 지키면서 국민 부담을 줄이는 균형 잡힌 대응이다. 그것이 경제 정책의 기본 원칙이자 상식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