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컬럼] 마법사의 빗자루와 AI

그래픽지피티
[그래픽=지피티]


디즈니 애니메이션 ‘마법사의 제자’에서 늙은 마법사가 외출하자, 게으른 제자는 물 긷는 일을 피하려고 꾀를 낸다. 스승의 주문을 훔쳐 빗자루에 마법을 건다.

“빗자루야, 물을 날라라.”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빗자루는 지치지도 않고 물을 퍼 날랐고, 제자는 낮잠을 즐겼다. 생산성은 폭발했다. 그러나 곧 재앙이 시작된다. 물이 가득 찼는데도 빗자루는 멈추지 않았다. 제자는 멈추는 주문을 몰랐기 때문이다. 도끼로 빗자루를 쪼개 보지만, 쪼개진 빗자루들이 다시 일어나 두 배의 속도로 물을 퍼붓는다. 집은 순식간에 물바다가 된다.

2026년 대한민국 노동시장에도 이 ‘마법의 빗자루’가 등장했다. 인공지능(AI)이다. 기업이라는 마법사들은 이제 사람 대신 AI라는 빗자루를 쓰기 시작했다. 조만간 우리는 넘쳐 나는 물, 즉 실업의 위험 앞에서 점점 마법사의 제자처럼 허우적거릴 것이다.

영국의 빗자루와 한국의 흥부

최근 공개된 영국의 고용 통계는 이 우화를 현실로 끌어온다. 영국 기업들은 AI 도입으로 생산성을 평균 11.5% 끌어올렸다. 마법은 분명히 작동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지난 1년 새 고용은 8% 감소했다.

이 현상을 기업의 탐욕이나 도덕성 결여로 설명할 수는 없다. 작동한 것은 훨씬 단순한 원칙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최저임금 인상과 사회보험료 부담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비용이 높아지자, 기업들은 사람 대신 기술을 선택했다. 밥도 먹지 않고, 쉬지도 않고, 노조도 없는 빗자루를 택하는 것은 냉혹하지만 합리적인 시장의 계산이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흥부’들은 늘어나는데, 기업이라는 ‘놀부’는 굳이 흥부를 고용할 유인을 느끼지 못한다. 고비용 구조와 경직된 노동시장 탓에 사람을 쓰는 비용이 AI를 쓰는 비용보다 훨씬 비싸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국 기업의 AI 도입은 혁신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고용을 피하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변질되고 있다.

사우디의 실험, 그리고 ‘멈추는 주문’

그렇다면 우리는 물 바다에 빠질 수밖에 없는 운명일까. 사막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흥미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리야드에서 열린 글로벌노동시장콘퍼런스(GLMC)에서 사우디는 “AI의 발전 속도를 정책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비전 2030’이라는 이름 아래, 학위가 아닌 기술 중심으로 노동시장을 재설계하는 실험에 착수했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이 나온다. 마법사의 제자가 실패한 이유는 빗자루를 썼기 때문이 아니다. ‘멈추는 주문’, 즉 제도적 준비 없이 마법을 부렸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일자리 대책은 “빗자루를 부숴라”는 식의 기술 규제나 신(新)러다이트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빗자루가 물을 나르는 동안, 제자가 더 고차원적인 마법—새로운 직무와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국가의 태도가 흥부를 살린다

AI가 일자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국가와 경직된 제도가 일자리를 없앤다.

지금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빗자루를 빼앗는 것도 아니고, 흥부에게 공짜 쌀을 나눠주는 것도 아니다. 현금 살포식 대책은 미시시피 거품처럼 결국 꺼질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필요한 것은 흥부가 AI라는 도구를 다룰 수 있도록  ‘이동의 사다리’를 놓는 일이다.

학력 중심 채용을 기술 중심으로 전환하고, 기업이 AI를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라 사업 확장의 도구로 쓰도록 인센티브를 설계해야 한다. 제자가 빗자루를 통제할 수 있을 때, 마법은 재앙이 아니라 축복이 된다.

놀부에게 “흥부를 고용하라”고 도덕적으로 호소해 봐야 소용없다. 시장은 도덕이 아니라 이익에 반응한다. 놀부가 AI를 쓰면서도 흥부를 고용하는 편이 더 이익이 되도록 판을 바꾸는 것—그것이 국가가 외워야 할 진짜 ‘멈추는 주문’이다.

물이 차오르고 있다. 이제 빗자루를 탓할 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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