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철강 생산 15년 만의 최저치…연명이 아닌 전환, 그러나 순서가 있다

 추위가 절정을 보인 22일 오전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나온 수증기와 연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추위가 절정을 보인 22일 오전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나온 수증기와 연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철강 생산량이 15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세와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 국내 건설 경기 침체가 겹친 결과다. 철강업계는 감산과 사업 구조 재편에 나서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산업 전반이 구조적 전환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조강 생산량은 6182만2000톤으로 전년 대비 2.8% 감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11년 이후 7000만 톤 안팎을 유지하던 국내 철강 생산은 2023년 6600만 톤대로 내려앉은 데 이어 3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흐름이 멈추지 않는다면 올해는 6000만 톤 선마저 위태롭다는 관측도 나온다.

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국내 건설 경기 침체다. 건설기성(공사 실적)은 2024년 5월 이후 감소 흐름이 이어지며 장기 하락 국면에 들어섰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건설기성액은 전년 동월 대비 15.6% 줄었다. 건설 수요가 급감하면서 철근 등 범용 철강재 시장은 명백한 공급 과잉 상태에 빠졌다.

수치는 냉정하다. 지난해 국내 철근 소비량은 약 700만 톤에 불과한 반면, 국내 생산 능력은 약 1230만 톤에 달한다. 중국산 저가 철강재 유입이 시장을 더욱 압박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산이 없더라도 국내 설비 가동률은 구조적으로 60%를 넘기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위기의 핵심은 외부 충격 이전에 수요 전망을 과대평가한 채 누적돼 온 국내 설비 증설의 실패에 있다.

해외 여건 역시 산업 회복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보호무역 장벽이 높아지고, 베트남·인도 등 신흥국들까지 반덤핑 조치에 나서면서 철강 수출 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한국산업연구원(KIET)은 올해 철강 수출이 전년보다 6.4%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로 내수 부진을 상쇄하던 기존 전략도 한계에 봉착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최근 현대제철의 일부 공장 폐쇄 결정은 개별 기업의 판단을 넘어 산업 구조 변화의 신호로 읽힌다. 과잉 설비를 유지한 채 손실을 감내하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냉정한 결론이다. 철강업계 전반이 본격적인 구조조정 국면에 진입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연명이 아닌 전환’을 말하면서도 그 순서를 혼동하는 데 있다. 수소환원제철이나 저탄소 공정, 전기로 기반 고급강 생산은 분명 중장기적으로 가야 할 방향이다. 그러나 공장 가동 중단과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정도로 재무 여력이 악화된 기업들에게 즉각적인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이는 개별 기업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산업과 국가 차원의 과제다.

더욱이 고부가가치 전략은 모든 철강사의 해법이 될 수 없다. 범용 철근 설비를 고급강 생산으로 단기간에 전환하는 것은 기술적·경제적으로 쉽지 않다. 고부가 전환은 산업 전체를 구제하는 만능 해법이 아니라, 생존 가능한 일부를 선별하는 과정에 가깝다. 그 이면에는 설비 퇴출과 매몰 비용, 고용 조정이라는 불편한 현실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모호한 ‘체질 개선’ 구호가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질서 있는 감산과 구조조정을 통해 추가적인 손실 확대를 막고, 지역 경제와 고용 충격을 완화할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저탄소·고부가 철강으로의 전환을 기업 단독이 아닌 산업 차원의 로드맵과 정책 금융, 공동 투자 체계를 통해 준비해야 한다.

철강 생산 15년 만의 최저치는 위기의 끝이 아니라 경고다. 연명과 전환을 동시에 요구하는 모순을 넘어서려면, 지금 버틸 수 있는 구조와 이후 바뀔 구조를 분리해 설계하는 것이 정책과 산업 모두에 필요한 기본이자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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