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짝퉁의 나라'라고 비하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대한 시장과 기술력에 두려움을 느낀다. 중국을 이해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규모'이다. 14억 인구로 나누면 어떤 성과도 먼지처럼 작아 보이지만 그 먼지도 14억개가 합쳐지면 거대한 태산이 된다. 중국의 과학기술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이 거대한 규모의 경제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내수 시장만으로도 첨단 기술의 상용화 테스트베드가 완성되는 나라, 그것이 중국 과학기술 굴기의 기초 체력이다.
공대생의 나라, 엔지니어가 지배하는 테크노크라시
중국의 힘은 사람, 즉 인재에서 나온다. 중국은 '공대생의 나라'이다.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역대 지도부가 모두 이공계 출신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 정부는 영재 교육과 공대 중심의 교육 시스템을 통해 매년 수백만 명의 이공계 졸업생을 배출한다.
미국과 한국이 의대 쏠림 현상으로 이공계 기피 현상을 겪을 때 중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AI, 반도체, 우주항공 분야 인재를 양성했다. 전 세계 AI 대학 랭킹 상위권을 중국 대학들이 휩쓸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해외 유학생들이 귀국하여 창업 전선에 뛰어들고, '서당개 30년이면 스승을 넘는다'는 말처럼 지난 30년간 전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며 축적된 제조 노하우가 이제는 혁신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의 과학기술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중국은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하에서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 추진이 가능하다. 정부가 과학기술 체계를 총괄하며, 7대 신흥산업과 미래 산업 신질 생산력 강화에 국가의 모든 자원을 쏟아붓는다. 헤페이, 중관춘, 상하이, 항저우, 선전 등 각 지방정부별로 특화된 첨단산업 개발 모델을 적용하여 경쟁을 유도하고 성공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시킨다. 실패를 용인하는 정부의 막대한 투자가 있기에 기업들은 과감하게 R&D에 뛰어들 수 있다. 한국의 R&D 예산이 삭감되거나 조정될 때 중국은 국가 전략 기술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으며 기술 격차를 줄여 나가고 있다.
사회주의는 창의성의 무덤인가? 시장이 기술을 만든다
흔히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창의성이 발현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사상 통제가 심한 '창의성의 지옥'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기술의 영역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중국은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속성을 가진다. 돈이 되면 무엇이든 하는 시장의 역동성이 기술을 견인한다. 지난 30년간 애플, 나이키, 루이비통의 OEM 공장 역할을 하며 중국은 제조 기술의 정점을 찍었다. 처음에는 베끼기에 급급했지만 이제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내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를 '산자이(Shanzhai)' 문화라고 폄하할 수도 있지만, 이 과정에서 축적된 공급망과 제조 기술은 독자 브랜드와 기술 혁신의 토대가 되었다. 시장이 기술을 만든다는 명제가 중국만큼 확실하게 증명된 곳은 없다.
그리고 중국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현금, 카드, 지갑, 대면, 줄서기가 없는 '5무(無) 사회'로 급속히 진입했다. 이는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를 의미하며, 이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는 다시 AI 기술 고도화에 쓰인다. 중국 정부의 'AI+' 정책은 제조, 의료, 교육, 금융 등 모든 산업에 AI를 접목하여 생산성을 혁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스마트 팩토리로 제조 효율을 높이고, AI 의사로 의료 격차를 해소하며, 맞춤형 교육과 핀테크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사회 구조 자체를 디지털과 AI 기반으로 재편하는 거대한 실험이다.
데이터, 알고리즘, 자본 등 삼박자: AI 패권의 이동
AI 시대의 석유는 데이터다. 개인정보 보호가 강력한 서구권과 달리 중국은 14억 인구의 데이터를 정부와 기업이 비교적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이는 AI 알고리즘을 학습시키는 데 있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게 한다. 중국이 AI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도 바로 데이터, 인재(알고리즘), 자본 등 세 가지 요소가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인구 기반의 방대한 데이터, 정부 주도의 과감한 자본 투자,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수많은 AI 엔지니어들은 향후 5년 내 응용 분야에서 미국을 위협하거나 추월할 동력이 될 것이다. 특히 제조, 의료, 교통 등 산업 현장의 데이터를 학습한 중국의 산업용 AI는 서방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가질 것이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는 날카로운 식칼과 같다. 첨단 장비와 기술의 반입을 막아 중국의 숨통을 조인다. 그러나 중국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티는 전략을 구사한다. 레거시(구형) 공정에 집중하여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첨단 패키징 기술로 성능의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 거대한 내수 시장이 있기에 자체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할 기회가 보장된다. 기술 수준의 종착역에서는 결국 만날 수밖에 없다. 시간이 걸릴 뿐 중국은 자본과 인력을 쏟아부어 반도체 자립 생태계를 완성해 나갈 것이다.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기술이 축적될수록 중국 반도체의 위협은 현실이 된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산다
중국을 여전히 ‘짝퉁의 나라’로 치부하는 ‘정신승리’는 이제 한국을 위기로 몰아넣는 독(毒)일 뿐이다. 14억 데이터와 강력한 리더십, 과감한 규제 혁파로 무장한 중국은 단순한 추격자를 넘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시스템 경쟁자’로 변모했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우리의 핵심 텃밭까지 치고 들어온 중국의 공세 앞에서 한국의 대응책은 그들의 강점을 냉철히 벤치마킹하여 우리만의 ‘초격차 전략’을 재설계하는 것에 있다.
첫째, ‘국가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대수술이 시급하다. 5년 단임 정권의 한계를 넘어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하고 흔들림 없이 추진할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과감한 ‘규제 혁파’를 통한 테스트베드의 부활이다. 중국의 ‘선(先) 시행, 후(後) 규제’ 모델을 참조하여 AI와 바이오 등 신산업이 기득권의 저항 없이 기술을 실증할 수 있도록 ‘규제 샌드박스’를 전면 확대해야 한다. 기술이 시장을 여는 것이 아니라 규제 없는 시장이 기술을 꽃피우게 만들어야 한다.
셋째, ‘선택과 집중’을 통한 기술 안보 확립이다. 물량 공세로는 중국을 이길 수 없다. HBM, PIM 등 중국이 모방할 수 없는 핵심 병목 기술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끝으로 ‘엔지니어가 대우받는 사회’로의 대전환이다. 의대 쏠림 현상을 타파하고 파격적인 보상 체계를 마련하여 최고 인재가 과학기술 전선에 뛰어들게 해야 한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공포가 아닌 기술 우위를 사수하기 위한 처절한 실행력이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칭화대 석사·푸단대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애널리스트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겸임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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