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혁 칼럼니스트]
서울 시내 중심가에 자리하고 있는 주한중국문화원에서는 중국어와 중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연중 다양한 강좌를 운영한다. 원어민으로 구성된 강사진 수준도 높다. 필자도 주 2회 고사성어 강의를 들으며 부족한 지식을 채우고 만학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고사성어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 명멸했던 다채로운 인간 군상들이 써내려 간 이야기에서 비롯된 교훈을 담고 있다. 그런만큼 성어의 탄생 배경인 고사(故事)는 그저 흥미로운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지난 연말에 배운 '가유폐추 향지천금' 또한 그러했다.
진나라에 이어 중국을 두 번째로 통일한 한나라는 7대 황제 무제 치세에 최전성기를 구가했으나 달이 차면 기울 듯 과도한 대외원정과 토목공사의 후유증으로 쇠퇴의 길로 들어선다. 어리거나 무능한 황제를 등에 업은 외척들이 득세하며 어느덧 제국에 황혼이 드리워졌다. 14대 황제 평제에 이르러 야금야금 실권을 장악하던 외척 왕망이 마침내 서기 8년 한나라를 무너뜨리고 신(新)을 건국하였다. 국정 운영의 미숙함을 보이고 민심을 잃은 신나라가 불과 15년 만에 망하자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유방의 방계 후손 유수, 즉 광무제가 서기 25년 한 제국의 부활을 선포하니 역사는 이를 후한(後漢) 또는 동한(東漢)이라 부른다.
유수가 후한을 세우고 황제에 즉위했지만 천하를 다시 아우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마치 20세기 초 쑨원의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망한 후 도래한 '민국시대'처럼 도처에 군웅이 할거했고, 특히 파촉(巴蜀, 지금의 쓰촨성 일대)지역의 맹주 공손술은 스스로 황제를 칭하며 끝까지 저항했다. 서기 33년, 광무제가 총애하는 장군 오한과 잠팽을 보내 공손술 정벌에 나섰으나 잠팽이 암살당하는 등 큰 손실을 입었다. 오한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절치부심, 1년 간의 악전고투 끝에 가까스로 파촉 일대를 평정했다. 복수심에 불탄 오한은 공손술의 근거지였던 청뚜(成都)성에 난입하여 공손술과 휘하 장수들의 일가는 물론 다수의 백성들을 도륙하고 무자비한 약탈과 방화로 성을 초토화시켰다.
소식을 들은 광무제는 크게 화를 내며 오한을 꾸짖고 살육과 노략질을 멈추게 했다. 이어 현지에 사신을 급파하여 다음과 같은 칙서를 내렸다. "병사들의 약탈과 방화로 인한 참상을 들으니 너무도 비통하도다. 집안에 있는 낡은 빗자루도 천금처럼 소중하거늘(家有敝帚, 享之千金), 한 황실의 백성들에게 어찌 그리 잔인하게 굴 수 있는가." 광무제는 군대를 철수시키고 관리를 파견하여 민심 수습에 진력했다. 덕행이 남다른 인사들에게 상을 내렸으며, 공손술 밑에서 일을 한 문무관원일지라도 능력이 있으면 그대로 임용하는 등 백성들을 위무했다. 이로써 민심은 빠르게 안정되었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성어가 '가유폐추 향지천금(家有敝帚, 享之千金)'이다. "집에 있는 낡은 빗자루도 천금만큼 귀하다"고 한 광무제의 이 말은 우선 파촉 지역 백성들에 대한 약탈을 더 이상 저지르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다. 낡은 빗자루조차도 함부로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아울러 비록 끝까지 복속을 거부하고 저항했을지라도 이제 천하를 거머쥔 황제 자신의 백성들이 됐으니 그들도 똑같이 황제의 재산이요 소중한 존재들이므로 함부로 다루지 말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광무제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그같은 해석과 맥락을 같이 한다. 광무제는 중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포용의 선정을 펼친 명군으로 손꼽힌다. 후한 건국 과정에서 일관되게 무차별 숙청을 피하고 항복한 적과 그 백성을 포용하며 '사람을 얻는 정치'를 중시했다. 성어의 출전은 《동관한기(東觀漢記)•광무제기(光武帝紀)》다. '가유폐추 향지천금'은 낡고 다 떨어진 빗자루처럼 객관적으로 볼 때 쓸모없는 물건이 제 눈에는 보배로 보이는 편견을 비유하기도 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민주화는 이루어졌으나 어느 순간부터 첨예한 진영논리가 우리사회를 갈라놓았다.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해서 말하자면, 노무현 정권 때부터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대립 양상이 사회 곳곳에서 노골화되었다고 기억한다.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는 회식 자리에서조차 정치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게 오랜 불문율이었다. 다들 바쁘게 돌아가는 회사일에 치여 사느라 정치에 딱히 관심도 없었다.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요즘처럼 잘 아는 얼굴들끼리 언성을 높이고 얼굴 붉힐 일도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자 이념 논쟁이 빈번해졌고 회사 내에서도 금기 아닌 금기가 깨졌다. 정치 이슈가 직장 동료들과 함께 하는 밥상 위에 올라오기 시작했고 정치 성향에 따라 편이 갈라졌다. 사회 전체가 그렇게 변해갔다.
이명박, 박근혜 시대를 거쳐 집권한 문재인은 진영논리에 가장 충실했던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문재인 정권은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국민을 적으로 여겼다. 상대 진영의 숨통을 끊기로 작정한 듯 집권 내내 거두지 않은 '적폐청산'의 칼날은 정권의 상징이 됐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만델라식 용서와 화해가 아니라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며 벌인 증오와 보복의 굿판은 진영간 대립을 극단으로 몰고 갔다. 퇴임 때까지 이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던 그가 비호감 전임 대통령이 된 건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기보다는 한쪽 진영의 대통령이기를 자처한 자업자득이라 하겠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난 연말 뉴스를 뜨겁게 달구던 정부 부처별 대통령 업무보고 장면으로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나 업무보고 생중계로 '국민주권'을 실현하겠다고 천명했다. 허나 국민주권 실현이 그렇게 손쉬운 일도 아닐뿐더러 최고권력자가 국민주권 운운하는 건 썩 좋은 징후가 아니다. 직접민주주의를 표방한 포퓰리즘 정치를 하겠다는 뜻으로 비치니 말이다. 아무튼 '국민 보고대회'로 이름붙이고 대통령의 보여주기식 만기친람 원맨쇼로 시종일관한 생중계 업무보고는 그저 무성한 뒷말을 낳으며 정치권 논란으로 번졌을 뿐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을 연임하고 경기도지사를 거쳐 대통령이 됐기에 행정실무에 밝다. 그런데 유독 국민의힘 정권에서 임명한 공직자를 겨누어 질책하고 조롱하는 데 그 남다른 능력을 과시했다. "참 말이 기십니다." "어디 가서 놀다 왔어요?"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에게 한 힐난이다. 이런 말들은 대통령의 언어가 아니다. 선택된 단어와 비아냥대는 어투에는 경박함마저 묻어난다. 일국의 대통령이 기관장과 핑퐁처럼 치고받는 공방전도 불사한다. 이학재 사장의 정치적 체급만 키우는 것 아니냐는 조소가 넘쳐났지만 그보다는 대통령 체급이 쪼그라들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사장이 대리와 싸우면 같이 대리급이 되는 게 세상의 이치다. 탈모, 생리대, 애국가 배경화면 등에 대한 언급도 그렇다. 엄중 시국에 대통령이 관여하기에는 너무 한가하고 자잘하지 않은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두고는 "징계 중이니까 기분 나빠서 못 나오겠다고 한 건가요?"라고 물었다. 서늘한 적대감이 느껴진다. 김 관장의 불참은 독립기념관 사유화 문제로 감사를 받고 있어 보훈처장이 업무보고에서 배제했기 때문이다. 사실관계에 상관없이 일단 질책하기로 작정했다는 방증 아닐까 싶다.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체면을 구기고 망신을 당한 기관장들이 사후에 항변하면 탄압의 서사를 쓰고 있다고 공박했다. 일종의 2차 가해다. 업무보고는 소통이어야 하는데 대상을 찍어 편파적으로 호통을 치고 면박을 주니 볼썽사납기 짝이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신년 다짐을 했다. 취임식 때도 했던 말이다. 집권 7개월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어떨지 궁금하다. 낡은 빗자루가 집안 살림에 유용한 가재도구이듯 나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도 대통령이 보듬고 가야 할 나라의 소중한 일원이다. 나라를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진영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훗날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타이틀도 덤으로 따라오지 않겠는가. 말보다 실천이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