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기업과 기업가정신을 연구해온 필자의 귀에는 자연스레 질문 하나가 남는다. 이 말이 ‘인사말’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약속’이 될 것인가. 기업가정신의 관점에서 보면, 이 둘의 차이는 매우 크다.
이날 행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정부와 기업이 상생하고 연대하며 협력하는 모습은 과거에는 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정경유착의 역사적 상처를 의식한 발언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역시 “정치가 경제를 대신하려 해서는 안 된다”며 “기업이 가벼운 몸으로 뛸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했다.
말은 옳다. 문제는 정치가 과연 ‘기업이 가벼워진다’는 말의 무게를 알고 있느냐다. 기업가정신에서 ‘가벼운 몸’이란 규제를 없앤다는 뜻만은 아니다. 그것은 불확실성이 줄어든다는 의미, 예측 가능한 규칙 속에서 투자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업은 특혜를 원하지 않는다. 다만 오랫동안 바뀌지 않을 규칙을 원한다.
반대로 정치 일정에 따라 산업 정책이 흔들렸던 시기에는 기업의 투자가 멈췄다. 특정 산업을 ‘미래 먹거리’라 강조하다가, 여론이 바뀌면 곧바로 규제 대상으로 돌려세우는 장면을 기업들은 여러 번 경험했다. 그때마다 기업은 도전보다 관망을 선택했다. 이는 기업가의 보수성이 아니라, 정치가 만든 불확실성에 대한 합리적 반응이었다.
해외 사례는 더 선명하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16년 재임 기간 동안 산업 정책의 큰 틀을 거의 흔들지 않았다. 환경 규제는 강화했지만, 기업이 적응할 수 있는 시간표와 예측 가능한 규칙을 함께 제시했다. 독일 기업들이 장기 투자에 나설 수 있었던 이유다. 메르켈의 리더십은 ‘기업 친화적’이라기보다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정치’에 가까웠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역시 평가가 엇갈리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분명하다. 그는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추진하면서도 “규칙은 명확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기업들은 정책의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최소한 그 방향이 쉽게 뒤집히지 않는다는 점은 계산할 수 있었다. 기업가정신은 바로 이런 계산 가능성에서 나온다.
기업가정신은 흔히 도전과 혁신으로만 설명되지만, 현장에서는 정반대의 언어로 작동한다. 그것은 모험이 아니라 확신의 관리다. 규칙이 자주 바뀌고, 법의 해석이 정치 일정에 따라 달라지는 환경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기업가도 몸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날 행사에는 최태원 대한상의회장을 비롯한 경제단체장들이 나란히 섰다. 정치권과 기업인이 함께 사진을 찍는 장면은 보기 좋았다. 그러나 기업가정신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사진이 아니라 그 다음 장면이다. 기업가정신은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기업이 원하는 것은 ‘유리한 법’이 아니다. 일관된 법이다. 오늘은 투자하라 독려하고, 내일은 규제로 옥죄는 환경에서는 누구도 장기 계획을 세우지 못한다. 정치가 진정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말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책의 변동성을 낮추는 것이다. 이것이 기업가정신을 이해하는 정치의 출발점이다.
기업가정신의 세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투자는 희망이 아니라 계산에서 나온다.” 기업은 낙관적인 구호보다 차분한 신호에 반응한다. 정치권의 약속이 진짜 약속이 되려면, 더 큰 말이 아니라 더 적은 돌발 변수로 증명돼야 한다.
새해 초의 악수와 건배가 진짜 의미를 갖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 의미는 법안 하나, 규제 하나, 정책 하나가 예측가능하게 유지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기업가정신은 박수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신뢰 속에서 자란다. 정치가 그 신뢰를 관리할 준비가 돼 있는지, 이제 기업과 시장은 조용히 지켜볼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