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용자성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구조적 통제’를 제시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다. 원청의 사용자성이 과도하게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일정 부분 완화했고, 공장 증설이나 해외 투자, 합병·분할·양도·매각 등 경영상 결정만으로는 단체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명시함으로써 정책 취지와 산업 현실 간의 간극을 줄이려는 시도도 읽힌다. 제도 시행 초기의 혼란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기준이 제시됐다는 점과 그 경계가 충분히 명확해졌다는 점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계약 해지 가능성, 노동안전 조치, 인력 운용과 작업 방식 등 사용자성 판단의 예시로 제시된 항목들은 적용 방식에 따라 해석의 폭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상 원청의 법적 의무 이행이 사용자성 판단과 어떻게 구분되는지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여지가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제도의 취지와 달리 현장에서는 판단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사례를 보면, 노동 보호와 산업 전환을 병행하기 위해 절차와 범위를 명확히 하는 데 공을 들여온 국가들이 적지 않다. 독일은 노동자 참여가 제도화돼 있지만, 구조조정과 산업 재편 과정에서는 정보 제공과 협의, 고용 충격 완화를 위한 절차를 명확히 두어 예측 가능성을 높여 왔다. 일본 역시 고용 안정을 중시해 왔으나, 산업 구조 변화 국면에서는 고용 문제를 기업 내부의 교섭에만 맡기지 않고 정부와 지자체, 산업 단위의 전환 지원을 병행해 왔다. 노동 보호와 산업 생존을 제도적으로 함께 다루려는 접근이다.
이번 가이드라인을 둘러싸고 승진 등 인사 영역까지 쟁의 대상으로 확대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징계와 달리 승진은 기업의 인사 운영 전반과 연결된 영역인 만큼, 그 범위와 적용 기준이 보다 명확히 정리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기준이 모호할 경우 노사 모두에게 예측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석유화학 등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산업에서는 이러한 불확실성이 더 크게 체감될 수 있다. 공장 통합이나 셧다운, 사업 재편은 시장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과정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과 배치 전환이 단체 교섭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불분명할 경우, 의사 결정이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산업 전환의 속도와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점이다.
제도의 목적이 선하더라도,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현장에서는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법과 지침이 지향하는 가치만큼 중요한 것은 적용 과정에서의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이다. 이는 노동자 보호와 기업 활동 모두에 필요한 공통의 조건이다.
노동 보호와 산업 경쟁력은 서로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다. 노동이 보호받지 못하는 산업은 지속되기 어렵고, 산업 기반이 약화된 사회에서 안정적인 일자리 역시 유지되기 힘들다. 두 목표를 함께 달성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방향성과 함께 세부 기준의 명확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은 하나의 과정이다. 향후 보완과 해석을 통해 사용자성 판단 기준과 쟁의 대상의 범위가 보다 구체화될 때, 노동 보호는 제도로서 안정되고 산업 전환 역시 현실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을 지키겠다는 정책 의지와 산업을 살리겠다는 책임이 함께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의 완성도를 높이는 노력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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