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세모 단상(歲暮斷想), '관용과 자유'가 부국 첩경

  • 강한 국가는 관용과 포용에서, 부유한 국가는 최대 자유에서 시작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또 한해의 끝자락인 세모다. 평온해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리 밝지 않다. 온갖 불평과 불만을 삭이면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것 같다.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예측하지 못한 돌발 변수로 인해 나라 전체가 고통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코로나19가 진정되면서 그나마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일시적으로 갖기도 했으나, 비상계엄이라는 난데없는 우발사건으로 모든 것이 꼬였다. 이 무거운 터널을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실타래가 너무 엉켜 있어서 매듭이 잘 풀리지 않는다. 끊임없이 뇌관이 터져 나오면서 우울함이 일상화되고 사는 것이 더 고통스러워질 것과 같은 예감이 든다. 실물 경제가 바닥을 탈출하고 있다고 하지만 체감 경기 전망은 전혀 낙관적이지 않다.
 
추락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지표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환율, 즉 원화 가치의 브레이크 없는 하락이다. 연초부터 시작된 환율의 폭락은 한때 IMF 외환위기 이후 최대 수준인 1,480원을 넘어섰다. 조만간 1,500원을 초과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정부가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라고 할 정도로 거의 속수무책이다. 단기 대증요법으로만 이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 급속히 약화하면서 잠재 성장 동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 근본적 원인이다. 단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해외투자 확대 등으로 달러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지속적인 달러 강세도 상대적으로 펀드멘탈이 약한 원화에 더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판이다.
 
국내가 매력이 없다 보니 모두가 해외만 쳐다본다. 기업은 물론이고 심지어 개인까지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돈을 버는 데에 온통 관심이 가 있다. 국내 경제 주체들이 시장을 외면하는데 외국 기업이나 투자자가 한국 시장에 들어올 리가 만무하다. 나랏빚은 빛의 속도로 늘어나는데 정부는 소비 쿠폰을 위시해 돈 푸는 포퓰리즘 정책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입으로는 실용을 외치지만 속 빈 강정처럼 공허하게 들린다. 실용주의는 원칙적으로 행동과 실천을 중시하는 철학이다. 주어진 엄중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처방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어디에서도 이런 기운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가면 모두에게 절망적일 것이라는 점이 분명함에도 초조감이나 절박함이 잘 안 보인다.
 
최근 실시된 부처별 대통령 업무보고를 두고 말이 많다. 228개 공공 혹은 관계 기관이 참가하였다고 하니 가히 매머드급이다.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부정적 측면이 더 크게 비치지나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국민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관변 기관이나 단체가 그토록 많다는 데에 아연실색할 정도다. 이름만 들으면 비슷비슷한데 그들의 업무 영역과 차별성이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얼핏 봐도 퇴직 공무원의 낙하산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생겨난 불필요한 기관들이 수두룩하게 보인다. 실제로 중앙부처 퇴직 공무원들이 10년 이상 이런 자리 3〜4개를 옮겨 다닌다. 국가 예산을 축내는 것은 물론이고 불필요한 규제와 같은 일들을 양산하여 오히려 경제의 효율성을 망가뜨린다.
 
변하는 것보다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통찰력·예지력이 경쟁력 우위 관건
 
설상가상으로 정치는 더 비관적이다.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처럼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이전투구로 끝없이 평행선을 달린다. 이들에게 공존(共存)의 미덕은 찾아볼 수 없다. 이념과 지역, 세대와 빈부 등 한국 사회의 분열 양상은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과거에 집착하거나 왜곡하고, 현재를 부정하며, 미래를 외면하는 부류들이 힘의 우위를 보이며 세상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잘 되는 나라들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기업가·기술자·과학자들은 괄시를 받지만 얕은 지식과 처세로 무장한 법(法) 기술자들이 미래로 가는 발목을 잡고 있다. 10여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자랑하던 속도 경쟁력은 이미 실종돼 자취를 감추었다. 꺼지지 않던 빌딩의 불빛도 워라밸 풍조 만연으로 이제 아득한 옛날 일이 되었다.
 
이 대목에서 19세기 영국의 저명한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토마스 매콜리의 "강한 국가가 되려면 관용을 베풀고, 부유하려면 자유로워야 한다"라는 명언을 상기해 본다. 사회 내 다양한 의견, 신념, 소수 집단에 대한 포용과 관용이 국가 통합과 안정의 기반이 된다는 의미이다. 억압과 배제는 내부 갈등을 양산하고 국력을 소모케 한다. 한편으론 경제 활동이나 사상·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때 개개인의 창의성과 기업가 정신이 발현되며, 결과적으로 국가의 경제적 번영을 가져온다. 이는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에 포용적 사회 구조와 자유 민주주의·시장경제의 중요성이 왜 절실한지를 시사해준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에 대한 방향타를 정확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이 해가 저물면 다시 새해는 어김없이 다가온다. 이맘때가 되면 모두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우리 앞에 떠 어떤 변화가 닥칠지에 대한 불안감의 엄습하기도 한다. 이럴 때일수록 중심을 잃지 말고 평정심을 찾아야 한다. 세상의 변화를 예측해내는 지혜도 중요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을 높여야 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를 만나더라도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세계는 이미 탈(脫)세계화가 대세다.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인 우리가 현재 비틀거리고 있는 이유도 달라진 환경에 대한 대응이 미숙하기 때문이다. 바뀌는 것들에 대한 대응력과 바뀌지 않는 불변의 법칙 경쟁에서 상대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면 한국 경제의 가능성은 아직 열려 있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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