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손으로 그린 시대의 얼굴, 만화가 이두호가 말하는 만화 같은 삶

연필을 쥔 순간부터 만화가 이두호의 만화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권력자가 아닌 민초, 영웅이 아닌 평범한 얼굴들이다. 이두호 작가는 만화를 통해 시대를 기록하기보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마음을 한 칸 한 칸에 담아왔다.

원래 그의 꿈은 화가였다. 만화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1969년, 잡지 연재를 계기로 시작된 만화 작업은 10년간의 갈등 끝에 삶의 중심이 됐다. 그 시간 동안 그는 조선의 골목으로 들어갔고, 바지저고리를 입은 인물들을 불러냈으며, 역사 속에 묻힌 민초들의 이야기를 만화로 되살렸다.

『임꺽정』과 『머털도사』 속 영웅은 높은 자리에 있지 않다. 이두호가 그린 영웅은 늘 평범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선과 악, 분노와 연민, 의로움과 반성을 통해 민중 곁에 서는 인물을 그려왔다. “재미가 먼저이고, 의미는 그다음”이라는 그의 말처럼, 작품은 웃음을 남긴 뒤 오래 남는 질문을 건넨다.

웹툰과 AI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이두호 작가는 여전히 손으로 그린다. 마감이 완성의 기준이고, 매일 조금씩 쌓이는 손의 감각이 만화를 만든다고 믿는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분명하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잊지 않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후회 없이 하는 것이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느냐.”
이두호 작가의 만화는 오늘도 독자에게 이 질문을 조용히 던지고 있다.

만화가 이두호 작가 사진 김호이 기자
만화가 이두호 작가 [사진= 김호이 기자]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가 뭔가
- 원래 꿈은 화가였다. 만화가가 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데 1969년 소년중앙 잡지에서 연락이 와서 연재를 시작하게 됐다. 연재를 하면서도 ‘즉시 그만두고 화가가 되어야겠다’는 갈등이 10년 정도 계속됐다. 결국 친구인 만화가 한희자 씨에게 2년만 내 만화를 대신 그려달라고 부탁했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만화가 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역사 만화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 역사를 좋아했기 때문에, 만화를 그리기로 결심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역사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단군시대부터 그리기는 어려우니 접근하기 쉬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바지저고리를 입은 인물들을 그렸고, 덕분에 ‘바지저고리 만화가’라는 별명이 붙었다(하하).

만화가를 직업으로 삼게 된 계기와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그 동안 신문, 잡지 등에서 다양한 그림을 그리며 경력을 쌓았다. 결국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암행어사 허풍대’를 그리면서 본격적으로 만화가가 됐다.

어린 시절 기억 중 현재 작품 세계에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초등학생 때 본 김용래 선생의 『눈물의 수평선』이 강하게 남아 있다. 친구의 죽음과 재판 등 인간 내면의 갈등과 감정 표현이 작품에 큰 영향을 줬다.

캐릭터 창작 영감은 어디서 얻나
- 독자들이 종종 주인공이 못생겼다고 항의하기도 하지만, 저는 인간은 외모만으로 평가되지 않고 내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을 포함한 캐릭터는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려고 했다.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 김호이 기자]


이두호 작가만의 스타일은 어떻게 형성됐나
 - 10년간의 고민과 연습 끝에 결정했다. 조선시대 서민들을 주인공으로, 민중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삼아 특별한 권력자보다는 평범한 사람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그렸다.

현실의 부조리나 고통을 만화로 옮길 때 조심했던 점은 뭔가
-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그렸다. 심의는 받았지만, 주인공은 항상 평범한 백성으로 설정했다.

시대를 초월한 만화를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하시나
- 작가가 쏟는 열정과 몰입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림과 스토리 모두 영화 한 편 만드는 것처럼 모든 것을 바칠 때 생기는 힘이다.

만화의 재미와 의미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잡나
-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의미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한다. 재미와 의미를 순차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임꺽정과 머털도사 등 작품 속 한국 영웅상의 차이는 무엇인가
-영웅의 계급은 중요하지 않다. 선과 악, 의로움과 반성을 통해 민초를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이 진정한 영웅이다. 『임꺽정』은 민중의 영웅, 『머털도사』는 해악과 자유의 정신을 담았지만 본질은 인간 내면의 의와 열정이다.

민중의 서사를 다룰 때 분노와 연민 중 어느 감정을 먼저 고려했나
- 스토리를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인물의 대응과 감정이 드러난다. 사전에 정해두기보다는 이야기를 따라 자연스럽게 전개되도록 한다.

만약 다시 『머털도사』를 그린다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나
- 첨단 과학과 기술의 대결처럼 현대적 상상력을 가미한 이야기로 재해석해보고 싶다.
 
인터뷰 장면 사진 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사진= 김호이 기자]


인간의 선함을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 세상에 선과 악이 공존하지만, 악을 보면 선한 마음이 그리워진다. 결국 인간의 선한 마음을 믿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시대 변화에 따른 만화의 차이를 실감하는 순간은 언제인가
- 웹툰과 디지털 시대를 보면서 세상이 변한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종이 세대였던 저에게는 그 변화가 크고, 적응 능력에 따라 받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비교육적이라는 이유로 만화를 못 보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손주나 자녀들에게 만화를 보지 말라고 한 적이 있나
- 보지 말라고 한 적 없다.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두고, 어떤 방식으로든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격려했다.

창작의 고통과 고독은 어떻게 극복했나
- 고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고민과 연구로 표현 방법을 찾는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민초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그림 그리는 행위를 명상이나 수행처럼 느끼나
- 연재는 하지 않지만, 작업실에서 자유롭게 그리고 싶을 때 그리며 시간을 보낸다. 습관이 된 행위이지, 특별히 지키려는 것은 아니다.
 
사진 김호이 기자
1999년에 발행된 임꺽정 우표와 이두호 작가의 사인[사진= 김호이 기자]


만화를 그릴 때 완성의 기준은 무엇인가
- 마감시간이다. 약속된 시간 안에 제출해야 하므로 그때 완성으로 간주한다.

시대가 흘러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
- 민초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그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AI와 디지털 도구 시대에서 인간 작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판단하지 않는다. 변화에 적응하고, 후배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양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손의 감각, ‘손맛’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인가
- 특별히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습관처럼 매일 조금씩 그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유지된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작품에 적절히 표현하는 것이 잘 그린 것이다.

후배 만화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남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의 길을 가라고 강조하고 싶다.

만화 같은 삶이란 무엇인가
- 살아온 삶 자체가 만화 같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자신의 스타일대로 살아온 것이 바로 만화와 닮았다.

독자에게 이두호 만화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 ‘안 봐도 된다.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된다.’

다른 의미로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 ‘자기 닮았다.’ 작품과 작가는 자연스럽게 닮게 된다.
 
이두호 작가 사인 사진 김호이 기자
이두호 작가 사인 [사진= 김호이 기자]
 
이두호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사진 김호이 기자
이두호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사진= 김호이 기자]

작품 속 캐릭터 중 본인과 가장 닮은 캐릭터는 누구인가
- 고집불통 캐릭터다.

세상에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면 무엇인가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느냐?" 결국 각자가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지, 자신에게 솔직한지 묻는 질문이다. 세상은 늘 선택을 요구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가이다.

직업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몇점인가
- 100점 만점에 100점이다. 

만화가라는 직업은 어떤 직업인 것 같나
-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직업이다.

마지막으로, 만화 같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라. 남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삶은 한 번뿐이고, 자신이 주인공인 만화는 결국 자신이 그려야 한다.
이두호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이두호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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