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가 전투기 구매 계약을 체결한 이후 예상치 못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노후 전력 교체라는 군사적 판단을 넘어, 계약의 내용과 절차를 둘러싼 논란이 정치·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전투기 도입 자체가 국가적 쟁점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는 최근 스웨덴 Saab의 JAS-39 그리펜 전투기 17대를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31억 유로, 미화 약 36억 달러 수준). 오랜 기간 운용해 온 Kfir 전력을 대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현지 주요 언론과 국내외 국방 전문가,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계약을 단순한 전력 현대화의 문제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은 계약 구조의 불투명성이다. 기체 가격 외에 무장 체계 포함 여부, 조종사와 정비 인력 양성, 장기 유지·보수 체계, 정비창 구축 등과 관련해 포괄적인 설명만 제시될 뿐, 각 항목이 어떤 범위와 비용 구조로 구성돼 있는지는 상세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전투기 기체와 무장을 일괄 패키지로 구매한 것인지, 아니면 별도로 조달하는 구조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설명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불투명성은 계약 금액을 둘러싼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Saab는 계약 규모를 31억 유로로 발표했지만, 이를 달러나 페소로 환산한 언론 보도에서는 출처마다 서로 다른 수치가 제시되고 있다. 현지에서는 “실제 총비용이 얼마인지 국민이 이해하기 어렵다”라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이번 계약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대목은 전투기 도입과 함께 발표된 간접 오프셋 협력의 내용이다. 정부와 Saab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이번 계약에는 보건(헬스케어) 관련 기술·서비스 협력, 지속 가능한 에너지 분야 협력, 그리고 수처리·정수 기술 및 인프라 프로젝트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투기 구매를 단순한 방산 거래에 그치지 않고, 사회·산업 분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이 지점에서 논란은 전투기를 구매해 공군 전력화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 자체에 대한 반대라기보다, 그런 판단이 왜 이런 방식과 이런 계약 구조로 구현됐는지에 관한 질문으로 옮겨간다. 이러한 오프셋 구성은 사회적 형평성과 지속 가능성을 중시해 온 페트로(Petro)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에너지 전환과 기초 인프라 개선은 콜롬비아 사회가 중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인식됐으며, 전투기 계약에 이러한 협력 분야가 포함된 배경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정책적 설명에도 불구하고, 콜롬비아 사회 전반에 제기되는 의문은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전투기 구매 계약에 사회 인프라 분야까지 간접 오프셋으로 포함시킨 배경보다, 왜 그 분야까지 스웨덴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이 반복해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은 스웨덴이 보건, 지속 가능한 에너지, 수처리 분야에서 다른 국가들보다 콜롬비아에 대해 뚜렷한 비교우위나 축적된 기여를 보여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런데도 사회 인프라와 직결된 분야까지 전투기 구매 패키지에 포함된 것은, “굳이 별도의 국가 예산이나 공개 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을 왜 방산 계약에 묶었는가”라는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전투기 도입이 여전히 많은 국민에게 우선순위가 낮은 사업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와 지역 개발을 위한 의제까지 방산 계약에 결합한 방식이 오히려 논란을 키웠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투기 구매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한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정책 과제를 우회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수단이었는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리는 이유다.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한 대선 후보는 이번 전투기 계약을 두고 부패 가능성과 절차적 불투명성을 문제 삼으며, 미국 관계 기관에 조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히기에 이르렀다. 방산 계약을 둘러싼 논쟁이 외부 조사 요청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이번 사안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운 정치적 쟁점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투기 도입 문제는 현 정부를 넘어 차기 정부에서도 상당 기간 논의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콜롬비아는 한국전 참전국이며, 오랜 기간 외교·경제·인적 교류를 이어온 국가다.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 갈 수 있는 토대 역시 비교적 탄탄하다. 이런 관계를 고려하면, 이번 전투기 도입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활용되지 못한 공백이 드러난다. 그런데도 이번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전투기는 검토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현지에서는 이를 기술력이나 개발 성과의 문제로 보지는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정치·전략적 판단이 우선되면서, 기존에 축적된 관계 자산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결과라는 해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한편 페루 역시 노후 전력을 대체하기 위해 24대 규모의 전투기 도입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보도 기준 약 35억 달러 안팎). 한국으로서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현지 언론 보도와 군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한국 기종은 아직 우선 검토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콜롬비아 사례는 한국에도 분명한 교훈을 남긴다. 대형 방산 수출은 전투기 자체의 성능이나 가격 경쟁력만으로 성사되기 어렵고, 군사 분야 중심의 접근만으로도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콜롬비아 사회에서 제기되는 문제의 핵심은 전투기 도입 자체에 대한 반대라기보다, 왜 이런 방식으로, 왜 이 패키지로, 왜 이 상대와 계약했는가에 대한 설명과 소통의 부족에 있다.
결국 이번 콜롬비아 사례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전투기 수출은 군사 기술이나 협상 실무만으로 추진되기 어렵다. 현지의 정치 환경과 경제구조, 사회적 우선순위는 물론 감정의 흐름까지 이해하고 소통하는 종합적 접근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오늘의 방산 수출은 군(軍)의 영역을 넘어, 외교·경제·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전략적 과제가 되고 있다.
콜롬비아에서의 경험과 아직 결정되지 않은 페루의 선택은, 한국 방산 외교가 군사 중심 접근을 넘어 현지 사회와의 신뢰를 함께 설계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박선태 (stpark98@gmail.com)
前 중남미 전문 외교관. 현재는 콜롬비아 Dentons Cardenas & Cardenas 로펌 고위자문위원으로서 중남미 국가들과의 산업·안보 협력 분야에 대한 자문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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