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최근 한 대학에서 진행된 교양과목 중간고사에서 다수의 학생이 생성형 AI를 이용해 답안을 작성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난리이다. 약 600명이 수강하는 대형 온라인 강의였고, 비대면으로 치른 시험은 감독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했다. 학생들은 컴퓨터 화면을 캡처하거나 카메라 사각지대를 교묘히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AI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담당 교수는 부정행위 학생에게 0점 처리 방침을 공지하며 자수할 기회를 주었지만 사건은 이미 오늘의 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 특히 생성형 AI로 촉발된 새로운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자수 여부는 결국 학생의 선택일 뿐이며 학교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명백한 증거가 없다면 말이다.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곧 대학의 무기력을 의미한다. 이는 시간문제일 뿐이며 어느 학교에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비단 시험 방식뿐만 아니라 AI 시대의 대학 교육 자체가 거대한 변곡점 앞에 서 있다. 생성형 AI가 과제나 시험을 대신 해주는 일이 더 이상 영화적 상상이 아니게 된 지금, 대학은 과연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그러나 사회적 논의는 종종 지나치게 단순하다. “AI를 금지해야 한다” “학생들을 더 엄하게 감시해야 한다”는 식의 반응은 대한제국 고종황제 시절, 1899년 5월 26일 최초의 전차 사고로 어린아이가 사망하자 분노한 군중이 전차를 불태웠던 장면을 연상시킨다. 문명의 이기가 불러온 부작용이 두렵다고 해서 문명 자체를 거부할 수 있을까? 자동차 사고가 난다고 우리가 자동차를 포기하지 않듯이, 비행기 사고가 난다고 우리가 비행기를 포기하지 않듯이 AI의 부작용을 이유로 AI를 배제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외면하는 판단이다.
기술은 진보한다. 교육 역시 기술의 흐름을 피할 수 없다. 많은 대학은 경비 절감을 이유로 대규모 온라인 방식의 강의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만들어 내기만 하고 실질적인 감독과 평가 체계 등 그 운영이나 시험 방식에 소홀한 것은 사실이다. 수백 명이 동시에 온라인 시험을 치르는 상황에서 철저한 시험 감독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우리가 AI 부정행위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이는 여러 부정행위 방식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시험 도중에 잘 아는 누군가에게 물어보거나 대리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것도 부정행위이고 AI를 검색하는 것 역시 부정행위이다. 문제의 본질은 비대면 온라인 시험의 부정행위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이루어지지 않은 자체인 것이다.
시험으로 다시 돌아와서 보면, 감독의 기술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 지금처럼 수백 명이 비대면으로 시험을 치르는데 감독 기술은 과거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부정행위는 반드시 발생한다. 과거 아날로그 시절 학생들은 예상답안을 책상 위에 쓰거나 지우개나 여러 자루의 볼펜대에 깨알 글씨로 쓰곤 했다. 시험을 치르는 교실에서 자리를 옮기라고 하면 일어섰다가 제 자리에 앉거나 맨뒤의 학생은 책상을 통째로 옮기곤 했다. 정말 아날로그스럽기 그지없다. 어설프지만 그립고 아름다운 시절이기도 하다. 오늘날 기술 환경에서 이러한 방식의 경험을 회고하는 일은 이제 아득한 향수일 뿐이다. 진정 대학은 AI 시대에 걸맞은 첨단 시험감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시설을 갖추고 메뉴도 잘 구비해서 손님을 맞이하자.
도시의 CCTV가 교통과 보행자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듯 시험 환경에서도 정교한 눈동자 추적 장치, 시선 이동 감지, 답안 입력 패턴 분석, 의심 행동 자동 탐지 시스템 등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이러한 기술은 이미 상용화되어 있으며 대학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여전히 감독을 사람의 시선과 지시에만 의존한다면 이제는 더 이상 ‘공정’을 보장할 수 없다. 이는 기술 시대에 걸맞지 않은 구시대적 방식이다. 몇 년 전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에 미국에서는 이미 온라인 시험감독 사이트가 서비스를 시작했다. 시험 대행 사이트는 각 대학 측과 사전 조율에 따라 신분증 확인부터 시작해서 시험 공간을 카메라에 먼저 비추게 하고 모니터 위 카메라를 통해 눈동자 움직임, 고개의 각도, 모니터의 창 전환 여부까지 실시간으로 감지한다. 이상한 동작이 감지되면 경고음이 울리고 기록된다. 처음 이러한 서비스가 제공될 시점에는 이런 방식이 낯설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일시적인 조치처럼 보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 바로 ‘AI 시대 시험 감독 체계’의 서막이었다.
AI 시대의 대학은 교육도 진화하고, 감독 기술도 진화해야 한다. 학생이 AI를 활용하는 속도가 빠르다면 대학은 그보다 앞서 뛰어야 한다. 단순한 비용 절감 논리에서 벗어나 교육의 질과 공정성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시험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지만 측정및 평가 없이 발전은 없다. AI는 정보를 생성할 수 있지만 그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것은 인간이다. 대학의 역할은 바로 그 인간적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기술은 시대의 흐름이지만 사고는 인간의 본질이다. AI 시대에 참된 교육은 인간의 사고에서 시작되고 인간의 판단에서 완성된다. 교육이 목적이고 AI는 도구일 뿐이다. 이제 대학은 질문해야 한다. 뛰는 학생 위에 나는 대학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의 속도에 뒤처지고 있는가? 학생이 AI를 사용하여 뛰어간다면 대학은 그 위를 날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은 더 이상 ‘배움의 중심’이 아니라 ‘과거의 유물’이 될 것이다. 대학이 날지 않으면 교육의 미래도 날지 못한다.
필자 주요 이력
▷부산대 번역학 박사 ▷미국 University of Dayton School of Law 졸업 ▷대구가톨릭대 영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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