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5년이 아니라 12년이다

노조발 정년 연장 요구가 거세다. 여권도 관련 입법에 드라이브를 걸며 화답하는 모양새다. 

60세였던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2013년부터 5년마다 1년씩 늦춰져 2033년 65세가 된다. 현재 정년은 60세. 정년과 연금 수령 시점 간 격차로 최대 5년이라는 소득 공백 기간이 발생한다. 65세 정년 연장론이 힘을 받는 이유다.

재계는 인건비 부담과 청년 고용 감소 우려 등 논리로 난색을 표한다. 굳이 정년을 연장하겠다면 퇴직 후 재고용과 같은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60세 이후 일을 더 하고 싶은 근로자는 고용 방식이나 임금 조건을 다시 정하는 식으로 기업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정년 연장 관련 법안 대다수가 법정 정년을 65세로 못 박고 있다. 퇴직 후 재고용 등 고용주에게 선택지를 부여하는 법안은 1건뿐이다. 이재명 정부나 더불어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65세 정년 연장이 급물살을 탈 수 있는 상황이다. 

통계청이 올해 5월 기준으로 55~79세 고령층 경제활동인구(1665만명)에 대해 조사한 결과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둘 당시 평균 연령은 52.9세였다. 현재까지 계속 일하는 비율은 30%, 이미 퇴직한 비율은 70%로 집계됐다. 퇴직자 가운데 정년을 채운 비율은 17.3%에 그쳤다. 

평균 53세 정도면 다니던 직장을 나오는데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65세다. 소득 절벽 구간은 노조 측 주장대로 '5년'이 아니라 '12'년인 셈이다. 그래서 퇴직한 고령층 가운데 1000만명 이상이 생계 유지를 위해 저임금 근로에 나서거나 현재 구직 활동 중이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2023년 대기업 평균 퇴사율은 16.1%다. 평균 연봉 1억원에 성과급으로 1억원을 더 받게 된 SK하이닉스 직원들의 자발적 이직률은 지난해 기준 0.9%다. 작금의 정년 연장 논의는 정년을 채우고 퇴직할 가능성이 높은 16~17% 안팎 근로자를 위한 밥상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30인 이상 중소기업 중 86.2%가 정년 연장 대신 선별 재고용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인건비 부담 때문에 정년 연장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응답이 41.4%에 달했다.

결국 노동시장을 안정화하고 고용 기간을 늘리기 위한 핵심은 법정 정년 연장이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창출하는 것이다.

청년들도 정년 연장을 환영한다는 일각의 의견이 있다. 한 직장인 전문 플랫폼에서 설문조사를 하니 전체 응답자 중 정년 연장 필요성에 공감하는 비율이 20대는 67.9%, 30대는 70.4%로 나왔다. 

정년 연장을 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후 생활 안정'(39%)과 '소득 공백 해소'(17.8%)였다. 현재의 삶이 팍팍하고 미래도 불투명한 탓에 정년에 기대 소득 안정성이라도 확보하겠다는 바람인데, 앞서 언급한 정년 퇴직 비율을 애써 외면한 발상이다. 

삼성, SK, 현대차, LG 등 대기업 팔 비틀기에만 매달린다면 5년이든 12년이든 소득 절벽 완화는 요원한 일이다. 기업가 정신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토양 조성, 기업의 단계적 도약을 위한 성장 사다리 마련, 고령 빈곤층 대상의 사회안전망 구축 등 측면에서 이재명 정부는 얼마나 준비돼 있는가.

아직 청사진 완성 전이라면 고용지원금, 조세·사회보험료 지원 등 영세·중소기업들이 고용 확대에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정책 수단까지 함께 넣어 그려 주길 바란다. 

 
이재호 산업부 부장
이재호 산업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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