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인데도 돈을 벌면 비판을 받는, 이 기형적 구조가 지금 한국 금융의 현주소다. 수십 년째 바뀌지 않는 인식이다. "우리가 ATM(현금인출기)이냐"는 불만이 나올 법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에 반기를 드는 금융사는 없다. 인허가 사업이라는 태생적 한계 탓이다. 여기에 금융에 대한 대중의 곱지 않은 시선도 의식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금융 홀대'의 근원이요 뿌리다.
홀대받던 금융이 한때 ‘산업’으로 대접받을 뻔했던 적이 있긴 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 때다. 진보와 보수를 표방하는 두 정권은 ‘동북아 금융허브’를 기치로 내걸며 금융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키우려 했다. 홍콩·싱가포르에 견줄 아시아 최대 금융허브를 만든다는 웅장한 그림도 그렸다. 결과는 실패였지만….
그때를 제외하면 금융은 늘 산업이 아닌 '규제의 대상'이었다. 정치와 정부가 보기에 은행은 현대판 '샤일록'(베니스 상인 속 고리대금업자)이며, 증권은 '봉이 김선달'이다. 국내에선 왜 '금융의 삼성전자' '한국판 골드만삭스'가 나오지 않느냐고 질타하면서 뒤돌아선 금융사를 압박하는 게 역대 정권이 금융을 대하는 방식이다. 관치(官治)가 힘을 얻는 원천도 이것이다.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23년 전 김석동(전 금융위원장)의 일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금융업계 고위 인사에게 10년 전 '왜 금융의 삼성전자가 없느냐는 정부 비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답은 이랬다. "한국과 같은 금융 홀대 풍토에서 삼성그룹도 금융업을 제대로 키우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건 없다.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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