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금융의 삼성전자'는 커녕 ATM 취급받는 한국 금융사들

이도윤 증권부장
이도윤 증권부장
기업이 돈을 많이 벌면 칭찬 받아 마땅하다. 벌어들이는 돈이 많으면 직원들 월급 올려주고, 투자도 늘리며, 배당도 확대할 수 있다. 세금도 많이 내니 나라경제에도 이롭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벌면 욕을 먹는 기업이 있다. 바로 은행·증권사 등 금융기업들이다. 한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역대급 실적을 낼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돈을 너무 많이 버는 것 아니냐”는 정부와 여론의 따가운 눈총이 쏟아질 게 불을 보듯 뻔해서다. 증권사들의 처지는 좀 낫지만 별반 다르지 않다. 호실적을 내면 "손쉬운 수수료 장사만 한다" "개미 등쳐 먹는다"는 비판을 받기 일쑤다.

기업인데도 돈을 벌면 비판을 받는, 이 기형적 구조가 지금 한국 금융의 현주소다. 수십 년째 바뀌지 않는 인식이다. "우리가 ATM(현금인출기)이냐"는 불만이 나올 법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에 반기를 드는 금융사는 없다. 인허가 사업이라는 태생적 한계 탓이다. 여기에 금융에 대한 대중의 곱지 않은 시선도 의식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금융 홀대'의 근원이요 뿌리다.

홀대받던 금융이 한때 ‘산업’으로 대접받을 뻔했던 적이 있긴 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 때다. 진보와 보수를 표방하는 두 정권은 ‘동북아 금융허브’를 기치로 내걸며 금융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키우려 했다. 홍콩·싱가포르에 견줄 아시아 최대 금융허브를 만든다는 웅장한 그림도 그렸다. 결과는 실패였지만….

그때를 제외하면 금융은 늘 산업이 아닌 '규제의 대상'이었다. 정치와 정부가 보기에 은행은 현대판 '샤일록'(베니스 상인 속 고리대금업자)이며, 증권은 '봉이 김선달'이다. 국내에선 왜 '금융의 삼성전자' '한국판 골드만삭스'가 나오지 않느냐고 질타하면서 뒤돌아선 금융사를 압박하는 게 역대 정권이 금융을 대하는 방식이다. 관치(官治)가 힘을 얻는 원천도 이것이다.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23년 전 김석동(전 금융위원장)의 일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재명 정부 출범 100일. 금융사 책상 위에는 벌써부터 청구서가 수북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금융회사들의 사회적 기여와 책임을 요구하는 정부의 압박이 나온다. 청구 내역은 역대급이다. 은행들은 대규모 빚 탕감 고지서에 이어 4000억원 규모의 '배드뱅크' 분담금 청구서를 받았다. 엊그제(3일)에는 금융위 부위원장이 5대 금융지주를 불러모아 미국발 관세 대응 협조를 요청했다. 요청액만 267조원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청구서들이 나올 예정이다. 증권사들도 '모험자본 공급에 더 적극 나서라'는 협조 공문을 배송받은 상태다. 수익성이 악화되는 걸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벤처·스타트업, 초기 단계 기업에 자금을 더 넣으라는 요구와 다름없다. 곧 윤곽을 드러낼 금융 정책·감독 체제 개편 방안은 어쩌면 더 큰 '관치'와 '압박'을 예상케 한다. 금융정책 기능은 떼어내고 금융감독위원회를 부활하는 방안은 감시와 규제의 칼을 더 엄격하게 들이대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금융업계 고위 인사에게 10년 전 '왜 금융의 삼성전자가 없느냐는 정부 비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답은 이랬다. "한국과 같은 금융 홀대 풍토에서 삼성그룹도 금융업을 제대로 키우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건 없다.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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