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기의 이혼’으로 불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이 16일 노 관장에게 유리했던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면서, 1조3808억 원이던 재산분할금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의 두 축이었던 ‘노태우 비자금’과 ‘SK 주식 증여분’을 모두 재산분할 계산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불법자금은 기여 아니다”…비자금 300억 완전 배제
2심은 노 관장의 부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돈가에 건넨 300억 원이 SK그룹 성장의 종잣돈이 됐다고 보고, 이를 노 관장의 경제적 기여로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돈을 민법 제746조상 불법원인급여, 즉 “사회질서에 반하는 불법자금”으로 판단했다.
“노태우가 대통령 재직 중 받은 뇌물의 일부를 사돈에게 지원한 행위는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으며, 이를 기여로 참작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론이었다. 이로써 노 관장이 주장해온 ‘비자금 기반의 경제적 기여’는 완전히 배제됐다.
경영권 유지 위한 증여·기부도 분할대상서 제외
대법원은 또 “혼인관계가 파탄된 이후 공동생활과 무관하게 처분한 재산만 분할대상으로 포함할 수 있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재단과 친인척에게 증여한 SK 주식 350만 주, 급여 반납과 증여세 대납 등은 모두 경영권 안정과 그룹 운영을 위한 행위로 평가됐다.
대법원은 “이 같은 행위는 부부공동재산의 유지와 관련된 것이므로, 이미 처분된 재산을 분할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파기환송심에서는 2심에서 포함됐던 거액의 증여·기부 자산이 빠지고, 최 회장이 실제 보유 중인 SK 주식·배당금·부동산·현금성 자산 등 실제 남은 재산만 기준으로 계산이 다시 이뤄진다.
노 “경영 뒷받침” vs 최 “경제기여 0”…기여율 공방 예상
2심은 분할대상 재산을 약 3조9400억 원으로 보고, 노 관장의 기여율을 35%로 산정해 1조3808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비자금과 증여분이 빠지면 분할대상은 2심의 절반 수준, 약 2조 원 안팎으로 줄어든다. 여기에 대법원이 “비자금 기여를 잘못 참작했다”고 지적한 만큼, 기여율 자체도 다시 따질 수밖에 없다.
파기환송심에서는 양측이 기여율을 두고 정면으로 다툴 전망이다. 노 관장 측은 “30년 넘게 혼인생활을 이어오며 자녀 양육과 사회활동을 통해 최 회장의 경영 기반을 뒷받침했다”며 ‘경영활동 간접지원’ 논리를 내세워 25~30% 수준의 기여율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대법원이 판결문에서 “최 회장의 증여·기부 행위가 공동재산의 유지 및 가치증가와 관련된다”고 언급한 점도 노 관장 측에 유리한 논거로 활용될 수 있다. 재단 운영, 대외 이미지 관리, 사회공헌 활동이 그룹의 대외 신뢰도 제고에 기여했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최 회장 측은 “노 관장은 기업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았고, 비자금 기여가 배제된 이상 경제적 기여는 0에 가깝다”고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혼인 기간 중 형성된 재산 대부분이 SK 주식 가치 상승에서 비롯된 만큼, 생활기여만 반영할 경우 20% 이하를 주장할 수도 있다.
파기환송심 핵심은 ‘기여율 재산정’…4000억~6000억 가능성
법조계에서는 이를 반영하면 파기환송심을 거쳐 재산분할금이 4000억~6000억 원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노 관장이 ‘경영간접지원론’을 입증하면 25~30%까지, 최 회장 측 논리가 받아들여지면 20% 안팎으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 변호사는 “대법원이 사실상 ‘전체 파이도 줄이고, 나누는 몫도 줄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결국 절반 이하 수준에서 결론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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