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케데헌'의 축포 그늘…韓 애니메이션은 왜 울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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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신드롬에 전 세계가 열광했다. K-POP과 한국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은 글로벌 플랫폼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한국 콘텐츠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한국인들에게도 자부심 어린 소식이었다. 음악과 정서, 캐릭터의 매력을 세련되게 녹여낸 결과였다. 그러나 축포의 불빛이 꺼진 자리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작품은 일본 소니픽처스와 미국 넷플릭스가 주도한 글로벌 자본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K-애니'의 쾌거로 환호하지만, 같은 시기 한국 애니메이션 생태계는 예산 삭감과 지원 축소의 그늘에서 제자리를 지키기조차 버겁다.

2023년 여름,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애니메이션 종합지원사업'이 2024년 예산 심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되며 사실상 폐지가 예고됐다. 한국독립애니메이션·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한국애니메이션산업협회 등 6개 유관 단체는 즉각 반대 성명을 냈고, 나흘간의 연명에 1만 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다. 협회들은 "영진위 내부 소위원회나 관련 단체의 의견 수렴 없이 문화체육관광부와 기획재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오랜 논의를 거쳐 기획–개발–제작–개봉을 잇도록 설계된 인큐베이팅형 지원이 단 한 차례 협의도 없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현장의 충격은 컸다.

올해 극장과 OTT에는 '퇴마록', '이별에 필요한', '연의 편지', '달려라 하니', '브레드 이발사' 등 국산 애니메이션이 잇달아 개봉했다. 손익분기점 달성 여부와 관계없이 팬덤 결집이나 IP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개별 제작사의 노력에 의존한 결과였다. 홍보·배급 지원이 미비하고 장기적 육성 시스템이 약하다 보니 성과가 '케이스 바이 케이스'에 머물렀다. 산업의 토양이 여전히 척박하다는 말이 현장에서 반복된다.

제작사의 진단은 엇갈린다. 한 제작사는 "국내 애니메이션은 제작 기간이 길고 회수 속도가 느린 구조적 특성 탓에 단기 사업 중심의 지원으로는 실질적인 숨통이 트이지 않는다"고 했다. "자본력이 곧 경쟁력이 된 시장에서 케데헌 같은 글로벌 성과를 한국 산업 전체의 성과로 포장하는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반면 다른 제작사는 "지원은 적지 않지만 공정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일부 협회 중심의 순환 구조 속에서 완성도가 부족한 프로젝트가 반복 선정되는 반면, 성과를 입증한 IP가 후속 시즌·극장판에서 탈락하는 일이 잦다. '얼마를 주느냐'보다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주느냐'가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현장은 '지원의 부족'과 '지원의 왜곡'이라는 상반된 불만을 동시에 품고 있다.

이에 대해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인디애니페스트·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등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 중인 추혜진 감독은 "콘텐츠진흥원과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는 서로 다른 지향점을 가진 기관"이라며 "콘진원은 산업적·상업적 지원에, 영진위는 신진 작가 발굴과 다양성 확대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두 기관이 병행 지원을 해온 건 중복이 아니라 보완의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예산 삭감은 협의나 의견 수렴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졌다"며 "각 기관의 목표와 예산 규모, 운영 방식을 조율하면서 상호 보완적으로 운영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리그는 많을수록 좋다. 한 기관이 모든 걸 떠안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지원 통로가 공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예산 구조상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이미 궤도에 오른 제작사는 연속적으로 수혜를 받고, 신생 제작사는 진입이 어렵다. 심사 기준의 투명성도 개선되어야 한다. 새로운 인력이 진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진위 지원사업이 장편 제작으로 가는 과정에서 매개 역할을 해왔다. 단편–중편–장편으로 이어지는 단계별 지원이 다시 복원되어야 한다"며 "좋은 감독이 만들어지려면 좋은 프로듀서가 함께 성장해야 한다. 그 둘이 같이 커나가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케데헌'의 성공은 한국 문화 서사의 확장에 기여했다. 축하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축포가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현실을 가리게 해서는 안 된다. '케데헌' 같은 세계적 파급력이 한국 내부에서도 탄생하기 위해선 더 단단한 생태계가 필요하다. 정부가 외치는 'K-콘텐츠의 세계화'는 화려한 수사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씨앗을 심고, 흙을 갈고, 물을 대는 일—지금 우리의 생태계를 제대로 돌보는 일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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