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기준 S&P500과 나스닥에서는 데이터센터·반도체·클라우드·전력 및 공조 시스템 등 인프라 관련 종목이 상반기 대비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
AI 가속 전용 반도체를 설계, 생산하는 브로드컴은 3분기 실적 발표 직후 주가가 약 13% 급등했고, 연초 대비 주가 상승 폭도 30~40% 수준에 이른다. 클라우드 사업을 하는 오라클도 올해 약 20~30% 주가 상승을 기록했다. 슈나이더 일렉트릭 등 전력망, 냉각 시스템 분야 대표 기업들도 글로벌 데이터센터 확장과 맞물려 실적 호조를 보이고 있다.
AI 2차 붐, 인프라 경쟁으로 전환
과거엔 기술주 주가 상승의 중심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웹서비스(AWS), 세일즈포스 같은 소프트웨어·서비스 기업들이었다면, 하반기엔 인프라 기업들이 시장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직접 AI 사업을 진행하는 기술주가 버블 논란으로 주춤한 사이 관련 인프라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상승하고, 이는 재차 AI 기업들의 주가를 견인하며 버블 논란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AI 인프라란 AI 서비스를 구동하기 위한 반도체 칩,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서버, 전력망·냉각 시스템 등을 포함한 기반 기술을 말한다. 초거대 언어모델과 이미지 생성형 모델이 확산하면서 연산량과 전력 사용이 폭증하자, 하드웨어 인프라 확대와 안정적인 에너지원 확보가 AI 업계의 핵심 경쟁 요소로 부상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시장은 ‘AI 버블’을 우려했다. 챗GPT 열풍 이후 실적이 불확실한 스타트업들에 투자금이 몰렸고, “AI는 제2의 닷컴버블”이라는 경고도 이어졌다. 그러나 올해 들어 실질적 인프라 투자와 매출 증가가 확인되면서, AI 투자가 단기 과열에서 구조적 성장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데이터센터·전력망, AI 확산의 핵심 요소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AI 투자는 단기 붐이 아닌 인프라 확충 중심의 장기 사이클에 진입했다”며 “데이터센터 전력, 냉각 기술, 반도체 공급망이 향후 5년간 주요 수혜 영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는 2028년까지 약 2조9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AI 확산 속도는 전력 문제와 직결된다. 미국 에너지부(DoE)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소규모 도시 한 곳의 월간 전력 사용량과 맞먹는 전력을 초거대 모델 하나를 학습시키는 데 소모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의 데이터센터 지역에서는 전력망 포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냉각 효율 기술과 전력 절감형 반도체 경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주요 인프라 기업들의 실적도 이를 증명한다. 브로드컴은 클라우드·데이터센터용 네트워크 칩 수요 급증으로 3분기 순이익이 전년 대비 36% 증가했다. 오라클은 오픈AI·앤스로픽 등과 인프라 계약을 잇따라 체결하며 클라우드 부문 매출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엔비디아는 여전히 GPU 시장의 절대 강자로 자리 잡고 있다.
이재성 중앙대 AI학과 교수는 “현재 AI는 변동성이 크지만 시장의 방향성 자체는 인프라로 옮겨가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화 등 단기 변수는 있겠지만, AI 인프라 중심의 성장세는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 AI 인프라 경쟁 초기, 성장성 높아
국내 시장은 아직 인프라 경쟁 초기 단계다. 한국벤처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국내 벤처캐피털의 AI 투자액은 전년 대비 20% 증가했지만 대부분 모델 개발·자동화 솔루션 등 서비스형 기업에 집중됐다. 전력·부지·규제 등 제약 탓에 대규모 데이터센터 투자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다만 업계에서는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될 경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은 물론 한국전력과 냉각·전력장비 업체들도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한다.
업계 전문가는 “골드러시 때 금을 캐던 사람보다 주변에서 삽을 팔던 사람들이 더 큰돈을 벌었다”며 “AI 역시 직접 서비스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가장 큰 수익을 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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