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중국심서(中國心書) 2025 ③
최근 국내 일부 언론에서 때늦은 중국 경계령을 쏟아놓아 눈길을 끌었다. 추락의 끝이 잘 보이지 않는 현재 한국 경제 위기의 진원지를 중국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은 마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긴 하지만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평가할 만하다. 사실 중국의 공습 우려에 대한 비상이 걸린 것은 벌써 오래전의 일이다. 필자는 20여 년 전부터 이런 사태가 올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하였다. 그러나 멀지 않아 사그라질 단물에 현혹되어 이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외면을 당하기 일쑤였다. 이제 다소 분위기가 바뀌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중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코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소탐대실한 것이나 다름 아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중국 경제나 산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점이다. 지금의 현상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진단하지 못하면 결코 현명한 대응책이 나올 수 없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냉정하게 평가해 보면 중국 산업의 경쟁력이 한국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봉제나 화장품에서부터 가전·자동차·석유화학·철강·조선 등 주력산업, 그리고 드론·원전·로봇에다 심지어 AI 등 미래산업에 이르기까지 중국이 우리보다 앞서간다. 뒤에서 따라오는 추격자가 아니고 우리를 넘어 세계 시장의 최강자로 부상했다. 이는 중국 시장은 물론이고 한국 내수 시장, 심지어 제3국 시장에서 한국 수출이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중국 상품에 비교해 경쟁력이 갈수록 후퇴하고 있는 것이 근본적 원인이다.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인가? 이는 한국 정부 혹은 기업의 중국 시장에 대한 편견과 오만, 이에 더해 오판(誤判)이 불러온 결과물이다. 1992년 양국 수교 이후 약 10년간은 중국의 저임금을 활용한 단순 생산가공 기지로 진출하였으나,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 내수 시장을 겨냥해 앞다투어 들어갔다. 중국 경제의 규모가 파죽지세로 확대하면서 시장이 계속 커질 것으로만 판단했다. 한국 상품의 현지 시장 점유율이 늘어날 것으로만 보고 투자를 키웠다. 경쟁자, 특히 중국 로컬기업의 추격에 대해 간과했다. 시장 확대 속도가 식으면 시장 내에서 구조조정이 일어나게 되고, 그 최대 희생양이 한국 상품 혹은 현지 진출 기업이 될 수밖에 없는 시장 구조라는 점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산의 부상으로 인한 피해는 중국 내에서 뿐만 아니고 밖으로도 도미노처럼 번진다. 한국 내 제조업이 위기에 봉착하고 지방 경제가 휘청거리는 가장 큰 이유는 제조 강국 중국 쓰나미에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가 일시적인 것이 아닌 지속적이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양국 간의 산업의 양과 질에 대한 격차가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날 수 있는 개연성이 훨씬 크다. 여기서 중대 결단을 하지 않으면 일본이 경험한 잃어버린 세월보다 훨씬 길고 혹독한 미래를 보내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그만큼 한국 경제 혹은 산업의 기초 체질이 취약함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위기를 인정하더라도 타개할 수 있는 정신 무장과 극약 처방이 나오지 않으면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위협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처절한 대응 필요
이미 중국 산업은 넘사벽이다. 세계의 공장 중국의 세계 제조업 비중은 31%에 달한다. 2위인 미국(16%)에 더해 독일·일본·인도·한국 등 10위까지 국가들의 합친 규모보다 더 크다. 중국의 위력은 제조업에 그치지 않고 물류, 인프라, 광물 등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확대일로다. 이처럼 중국으로 기울어진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위해 체면을 구기고서 극단적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미국의 초조함이 측은해 보이기까지 한다. 중국이 커지면 커질수록 미국은 패권 이양의 위협을 받게 되고, 한국은 제조업이나 무역의 중심 국가가 아닌 주변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한국 제조업의 위상은 인도에 밀려났고, 시간이 갈수록 10위권 밖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기까지 하다.
그럼 이 엄중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혹자는 중국 산업의 쓰나미에 올라타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하고, 혹자는 중국과의 결별을 서둘러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말보다 쉬운 것이 없다. 정확하게 판단하고 실행으로 옮기는 쪽은 정부나 언론이 아닌 기업이다. 실제로 상당한 산업 분야에서는 중국과 부딪칠수록 손해가 나니 가능하면 회피하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 나가는 것이 대세다. 이미 약발이 떨어진 중국 시장에 미련을 두고 무리하게 고집을 피우면 더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당분간 중국을 외면하고 다른 데서 대안을 찾는 게 바람직할 수도 있다.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무모한 경쟁은 지양하고 협력이 필요하면 전술적 대안을 가져야 한다. 그 필요성은 기업이나 업종의 종사자가 가장 잘 안다. 설익은 훈수가 일을 더 꼬이게 할 수 있음을 상기하고 차제에 중국 시장에 더 들어가라고 종용하는 시대착오적인 거간꾼들도 도태시켜 나가야 한다.
더 중요한 점은 중국의 실시간 위협에 대비하는 우리 내부 전열 정비이다. 이제는 삼척동자도 알다시피 중국은 정부(공산당)와 기업이 하나가 된 ‘팀 차이나’의 가공할 만한 결속력으로 가히 무소불위다. 수시로 바뀌는 정책에다 표를 구걸하기 위해 포퓰리즘을 남발하는 후진적 정치 구조로는 중국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 한편으로는 극단적 이기주의와 천민자본주의에서 비롯된 전문 인력 시장 구조의 왜곡, 일은 하지 않고 소득이나 여가나 챙기려는 사회 인식 구조 등으로는 만회가 거의 불가능하다. 한때 자타가 인정하던 우리의 ‘속도’가 회복되지 않는 한 한국 경제의 재도약은 쉽지 않다. 이처럼 가라앉아 있는 자신감이나 패배 의식을 일시에 바꾸는 국가 대전환이 시급하다. 그 시발점은 정치일 수도 있고, 민간에서의 자생적 발화일 수도 있다. 이대로 있으면 그냥 주저앉는 길밖에 없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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