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낙인 26대 서울대 총장]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더불어 거악 척결로 국법질서를 확립해 온 검찰이 그야말로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처해 있다. 아예 검찰이라는 명칭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문재인 정부 때 시작된 검찰의 수사권 완전 박탈, 이른바 ‘검수완박(檢搜完剝)'에 따라 검찰의 직접 수사권이 획기적으로 제한되었다. 검찰이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종류가 6대 범죄(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부패·경제범죄)에서 2대 범죄(부패·경제범죄)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 실질적으로 ‘검수완복(檢搜完復)'이 작동했다. 검찰이 전면적인 직접수사권을 가진 나라는 외국의 입법례에서도 찾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한국 검찰은 그간 지나치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여왔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권위주의 시절에는 공안부, 민주화 이후에는 특수부가 권력의 축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권력의 사냥개’라는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윤석열·한동훈 체제는 사실상 ‘특수부 검찰공화국’이었다. 검사의 절대다수이면서 묵묵히 일하는 형사부 검사 위에 한 줌밖에 안 되는 특수부 검사가 검찰을 장악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그간 정치검사로 비난받은 검사들도 대부분 특수부 출신이다. 그들의 공과 과는 극명하게 나뉜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과 형들을 구속하는 기개를 보여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검(劍)을 휘둘렀다. 재벌 회장·언론사 사주는 물론이고 전직 대통령도 구속되거나 수사 중 자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자의적으로 설계한 정의의 잣대로 진행한 과잉수사는 결국 자멸을 초래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대법원·대검찰청, 지방법원·지방검찰청 청사는 나란히 이웃해 있다. 어떤 곳은 법원보다 검찰청이 더 크다. 법원과 검찰이 동급처럼 존재하는 외관 자체가 한국적 검찰의 특수한 위상을 보여준다. 서울지방법원이 민사법원과 형사법원으로 나뉘어 있을 때 형사법원이 더 높은 곳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심지어 판검사가 아니라 검판사라는 표현도 통용되었다. 그만큼 검사의 위세가 대단했다는 증좌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 '검사와의 대화'를 생방송으로 직접 주재했다. 특정 직종을 대상으로 대통령이 직접 토론한 예는 역사상 전무후무하다. 대통령에게 당돌하게 대드는 젊은 검사들을 보며 세간에는 ‘검사스럽다’는 유행어를 낳기도 했다. 오죽하면 김대중 대통령은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휘호를 남기지 않았는가. 봉하마을의 전 대통령을 대검 중수부로 소환하고 이후 자진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다.
거악은 반드시 척결되어야 한다. 특히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범죄피해자의 절규에 호응하여왔다. 그런 점에서 검찰의 공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공(功)에 비하여 과(過)가 지나치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검찰은 공소 유지에 주력하고, 수사는 경찰이 맡는 역할 분담이 원칙이다. 이 또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한다. 그 과정에서 야기된 논쟁은 하루속히 정리되어야 한다.
첫째, 정부 수립 이후 지속된 검찰과 경찰의 병존적 수사권이 경찰로 일원화하는 과정에서 야기될 빈틈을 최소화하여야 한다. 경찰의 수사권에 대해서도 그 방향은 논쟁적이다. 문재인 정부 때 검수완박 일환으로 경찰청에 비교적 독립적인 국가수사본부(국수본)를 설치하였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에서는 중요범죄수사청(중수청)을 신설하려 한다. 경찰의 국수본 외에 설치되는 중수청은 다 같이 행정안전부 소속이지만 경찰청법상 경찰이 아니다. 국수본이 있는데 옥상옥인 중수청의 권한 범위가 문제된다. 중수청은 현재 검찰이 직접수사권을 가진 부패·경제범죄 중심으로 수사권을 부여한다는 방침인 것 같다. 중수청에 지방중수청을 설치할 것인지도 미정이다. 지금까지 논의한 결과를 보면 중수청은 검찰조직 안에 형사부가 있는데 특수부가 따로 설치된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이미 폐지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 내지 지방검찰청의 특수부 부활과 무엇이 다른가? 국수본은 자칫 중수청에서 수사하지 않는 잡범만 수사하는 껍데기 수사본부가 된다. 무엇보다 중수청은 외국의 입법례에서도 그 연원을 알 수 없다.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유사한 형태라고도 하지만 이는 법무부 산하 조직이다. 그런 점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초기에 중수청을 법무부에 설치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 그렇게 되면 중수청과 공소청(현 검찰청)을 동시에 가져 오히려 법무부만 비대해지고 실질적 수사권을 가지며, 결국 검찰의 문패 갈이가 될 것이라는 비판에 직면하여 철회되었다. 결국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산하에 설치하기로 한다. 여기에 더하여 총리실 소속으로 신설되는 국가수사위원회(국수위)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기관인지에 관해서 제대로 된 논의도 없다. 여당 의원이 발의한 ‘국가수사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에 의하면 국수위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위원장 1명과 상임위원 3명을 포함하는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이 11명 가운데 4명은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고, 4명은 국회가 선출하며, 3명은 국가수사위원회 위원추천위원회가 추천한다. 사실상 위원 과반수는 정부·여당의 입김대로 구성된다. 설립 목적은 '수사기관 간 갈등의 조정·협력, 수사의 절차 및 결과의 적정성·적법성 등에 대한 민주적 통제, 사건 정보에 대한 접근성 증진, 민원의 공정한 처리 등 수사기관의 대국민 서비스 향상'을 도모하는 데 있다. 총리실 소속 국수위가 수사권 갈등을 조정한다는 것 자체가 수사권의 정치화를 자초한다. 무엇보다 국가수사 관련 기구가 국수위·경찰청의 국수본·중수청에 더하여 공수처까지 난립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국민의 인권이 잘 보장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사체계는 간명할수록 국민이 보다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다.
둘째, 검수완박 이후 검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여당안에 의하면 검찰이라는 존재 자체를 원천적으로 배척한다. 검찰총장은 국무회의의 필수적 심의사항의 하나로 헌법 제89조 제16호에서 명시한다: '검찰총장, 합동참모의장, 각군 참모총장, 국립대학교 총장, 대사 기타.' 그런데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개칭하면서 검찰총장을 공소청장으로 개칭하려 한다. 위헌 여부에 관한 논쟁을 떠나 헌법에 명시된 직책을 법률로 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향후 헌법에 명시된 조직이나 직책을 법률로 개정한다면 헌법은 사실상 누더기로 전락하게 된다. 같은 조문에 있는 합동참모의장의 명칭 변경에 대해 제13대 국회에서 현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평화민주당 정웅 의원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 오히려 향후 그 직책의 중요성에 비추어 본다면 국무회의의 필수적 심의사항에서 검찰총장을 대체하는 공소청장은 빠지고 경찰청장과 중수청장으로 대체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헌법 제12조 제3항). 문제는 검찰청은 공소청으로, 지방검찰청은 지방공소청으로 개정하면서 검사는 그대로 존치한다. 검사가 존재하는데 굳이 이를 검사청 또는 검찰청으로 하지 않고 공소청으로 바꿔야 할 이유도 찾기 어렵다. 아니면 공소청 소속 검사도 공소관으로 변경하여야 마땅하다.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배제하더라도 검찰청 및 검사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영어 prosecutor, 프랑스어 procuror의 번역어인 검사도 유지하고 검사의 office인 검찰청(검사청)도 마찬가지다.
검수완박에 이어 검찰수사권의 배제가 현실화되고 있는 와중에 3개 특검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110명의 검사와 100명의 검찰수사관이 특검에 파견돼 근무하고 있다. 여기에 ‘더 센 특검법’까지 작동하면 170명에 이르는 검사가 파견 근무하게 된다. 사상 최대 규모의 특검 작동 과정에서 이미 검찰 수사는 지금 거의 마비 상태나 다름없다. 특검 파견의 빈자리는 채워지지도 않는다. 그리니 젊은 검사들은 밤을 새워 일하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의 자업자득이라고 하기에는 젊은 검사들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작동한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형사사법체계의 급격한 변화에 대하여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해왔다. 신체의 자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형사사법체계의 변화는 아무리 조심스럽게 접근하여도 지나침이 없다. 새 제도에 대한 적응기간을 충분히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단행된 새 제도가 구제도보다 못하다면 이는 명백한 형사사법체계의 후퇴를 초래한다.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愚)'를 범하여서는 아니 된다.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 있어서는 한 치의 빈틈도 있어서는 안 된다.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같은 예외기구를 두고 있는 나라를 찾기 어렵다. 특검(특별검사)도 미국만 시행한다. 왜 선진 사법제도에서 공수처와 특검이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여기에 더하여 중수청과 국수위도 설치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각종 형사사법기구의 백화점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인간의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신체의 자유를 속박하는 제도는 간단하고 명료해야 한다. 벌써 네티즌 사이에서는 국수위, 국수본, 공소청, 중수청, 공수처가 무엇이고 무엇이 다른지 논의가 분분하다. 형사사법 전문가가 아니고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제도가 남발되어서는 인권 보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자 주요 이력
▷파리2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한국공법학회 회장(2005~2007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2009년 1월~2012년 12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2010~2013년) ▷동아시아연구중심대학협의회 의장 ▷제26대 서울대 총장(2014년 7월~2018년 7월)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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