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우리 외교안보 현안 중에서 가장 해묵은 숙제이자 가장 논란이 많은 이슈는 전작권 전환 문제이다. 전작권, 즉 전시작전통제권은 한국전 발발 당시 유엔군이 단일 지휘권 아래 전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절실히 필요하였던 사안이었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 총사령관에게 한국군 지휘권을 이양하였다. 당시 전작권 이양은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을 감안한 특별한 조치였다. 그런데 이 상황이 종전 이후 7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해묵은 이 문제만큼 우리 정치 양 진영 간 첨예하게 이견이 대립되는 사안이 없다. 양측은 서로 다른 논리와 명분으로 이 사안을 한쪽은 추진하려 하고 한쪽은 저지하려 한다. 그런데 양측 모두 우리 안보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과 득실을 냉철하게 계산하기보다는 막연한 명분론에 입각하여 주장을 펼치는 경향이 있다. 전후 70여 년이 지났고 미국의 세계 전략이 변하고 있으며 특히 트럼프 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급격한 정세 변화를 도외시하고 양 진영은 계속 과거 논리에 입각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작권을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진보 측 주장으로 알려져 있고 최근 동향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전작권 환수는 박정희 대통령이 1978년에 지시한 사안이다. 당시 카터 미국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방침에 대응하여 박 대통령은 소규모로 잔류하는 미군 지휘관 밑에 우리 60만 대군의 작전권을 맡겨두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 후 노태우 정부도 전작권 전환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는 보수 정부에서도 전작권을 가져와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입증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문제는 양측을 극명하게 분리하는 진영 싸움의 쟁점이 되었다.
보수 측에서는 전작권 전환을 주장하는 것은 단지 ‘자주국방’이나 ‘군사주권’과 같은 명분을 위해 우리 안보를 위험에 빠뜨리는 무모한 일이라 평가한다. 또 전작권을 가져오는 순간 한·미 동맹은 심각한 균열을 일으키고 우리가 미군의 정보자산을 이용하지 못하면 대북 까막눈이 된다고 한다. 결국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기에 전쟁이 나면 북한에 우리가 패배할 것이라 생각한다.
진보 측에서는 1994년 미 클린턴 정부의 북한 영변 핵시설 폭격설로 촉발된 미국의 일방적 대북 공격 가능성에 우리가 연루될 것을 염려하여 전작권 환수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미군이 우리 군에 대한 통제권을 계속 가지면 우리가 미국의 대중 전략 구도에 엮여 들어갈 가능성도 우려한다. 물론 우리 군의 자주국방 능력 배양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전작권 문제는 우리 양 진영 간에 다툴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떡 줄 미국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미 부시 정부 당시 럼즈펠트 국방장관은 노무현 정부의 요청이 있자 전작권을 바로 넘겨줄 태세였으나 우리 측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2012년 4월에 넘겨받기로 한·미 간에 합의를 하였다. 그 이후 이명박·박근혜 양 보수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기한을 정하지 않고 우리 능력이 구비되면 전환받기로 하는 조건 기반 전환이라는 합의를 하였다. 현 트럼프 정부는 세계 전략의 중심을 대중 억제에 맞추고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동맹국의 방위는 각국이 책임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현재 논의 중인 동맹 현대화에서 주한미군의 성격과 규모를 변화시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 즉 한반도 방어는 한국이 책임지라는 인식하에 전작권을 가져가라고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우리는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한·미는 3대 조건이 충족되면 미국 측이 우리에게 전작권을 이양해 주기로 하고 그 조건 충족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의 독자능력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문재인 정부는 많은 국방비를 투입하고 미국 측에서 정보자산을 많이 구매하였다. 그런데 이런 노력은 독자능력 배양 조건 충족에는 도움이 되지만 또 다른 조건인 한반도 안정 구도를 오히려 해치는 양면성을 가지게 된다. 우리 국방능력 증가는 북한의 대응 조치를 불러오는 안보 딜레마, 즉 끝없는 군비경쟁으로 한반도가 더 불안해지는 모순을 안고 있다. 그러니 조건 충족 시기를 확정할 수 없다. 또한 현 이재명 정부도 전작권 환수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얼마 전 신임 국방장관이 확인하였기에 미국 측의 관심을 끌고 보수의 반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만약 우리 측이 정책적으로 성급하게 이를 추진하면 미국 측이 안보 청구서 금액을 높이고 미국 장비를 더 많이 구매하도록 압박하는 등 꽃놀이 패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제반 사항을 감안하여 국익에 기반한 실용적인 접근 방안은 무엇일지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 문제는 오래된 숙제이기에 언젠가는 해결해야 하지만 성급하게 추진할 필요는 없다. 성급하게 추진할수록 부작용이 더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국제정세 변화를 감안한다면 지금이 전작권을 우리가 받을 준비를 잘 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무기 연기했다는 생각에 전혀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언젠가 갑자기 우리에게 전작권 이양이라는 일이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 군의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도 전작권 전환 준비를 추진해야 한다. 군사장비만 많이 확보한다고 유리한 것이 아니라 작전능력을 잘 배양해야 전쟁에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우리 군은 전작권이 미국 측에 있다는 생각에 군단급 이상 작전, 즉 한반도 전구 전체에 대한 작전 수립 능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어느 날 우리가 북한군을 독자 대응해야 할 상황이 오면 우리는 혼비백산할 것이다. 넷째,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를 감안할 때 우리 군이 불필요한 상황에 끌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도 동북아 위기 상황 시 우리 군에 대한 통제권은 우리가 가져야 할 당위성이 있다.
그러면 우리가 전작권을 받은 상태에서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한·미 연합작전은 어떻게 수행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 현재 계획에 따르면 현 한미연합사는 미래연합사로 대체되고 미래연합사는 한국군 사령관과 미군 부사령관 체제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미국은 이와 별개로 유엔사의 체제와 능력을 계속 증강시키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휴전 상태에서 다시 전쟁이 재발하면 한국전 당시와 마찬가지로 유엔사가 자동 재가동되게 된다. 그러면 미래연합사는 유엔사 휘하로 배속되고 유엔사 사령관은 미군 사령관이 맡기 때문에 한·미 간에 지휘권 관련 갈등 소지가 없어지게 된다. 특히 주한미군이 감축되어 사령관이 3성 장군으로 격하되고 주일미군 사령관이 4성 장군이 되면 유엔사 후방기지까지 관장하고 있는 주일미군 사령관이 유엔군 사령관이 될 공산이 크다. 이것은 맥아더 장군이 극동군 총사령관이자 유엔군 사령관으로 한국전을 총지휘한 것과 같은 모습이다. 미국은 이미 이러한 복안을 가지고 원모심려하고 있어 보인다.
이러니 우리끼리 명분에 입각한 소모적 논쟁을 접고 현실로 다가오는 정세를 내다보면서 우리가 필요한 준비를 차분히 해나갈 필요가 있다. 언제 그런 상황이 닥치더라도 당황하지 않게, 그리고 우리의 급박한 상황을 이용하여 상대가 우리를 강박할 수 없도록 막기 위해서도 지금부터 준비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날개를 펼 때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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