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세계 최대 육가공업체 JBS가 지난 6월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된 것은 요즘 지속 가능성의 핵심 화두 중 하나인 식품 정의와 관련해 주목받은 사건이었다. JBS는 브라질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육가공 기업으로 1953년 창립해 현재는 15개국에서 400여 개 이상의 도축 및 가공 시설을 운영하며 여기서 약 26만명의 직원이 일한다. 연간 육류 가공량이 약 1500만톤에 달하며 전 세계 190여 개국에 수출한다.
JBS는 맥도널드, 버거킹, 월마트 등 글로벌 대형 유통·외식업체에 육류를 공급하는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지난해 매출이 800억 달러에 육박했다. 2000년대 이후 대규모 인수·합병을 통해 미국, 호주 등 브라질 외 해외 시장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며 네슬레, 펩시코 등과 함께 세계 식품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JBS는 빠른 성장 과정에서 뇌물, 부패, 환경 파괴 등 각종 추문과 논란에 휩싸이면서 식품 정의를 거론할 때 반드시 떠올려야 하는 기업이 됐다. 영국의 한 환경단체가 “JBS 상장 승인은 지구와 인류 모두에 재앙”이라며 “세계 최대 증시에 상장을 허용하는 것은 미국 금융 규제의 심각한 실패”라고 비판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인류는 왜 여전히 굶주리는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에서 약 7억3300만명이 기아 상태에 놓여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 약 1억5200만명 늘어났다. FAO는 대략 31억명이 건강한 음식물을 접하지 못하는 상태인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현재 인류문명은 인류 전체를 먹여살릴 만큼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저렇게 많은 인류가 굶주리고 있을까. 자본주의 시장 경제 시스템의 비효율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수확 후 소비 단계 전에 버려지는 식품이 생산량의 약 15%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식품폐기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소매점과 소비자가 판매하지 못하거나 먹지 못해 버리는 식품은 약 17%에 이른다. 폐기하는 음식만으로도 매년 12억6000만명을 먹일 수 있다고 한다.
전 세계 음식물 폐기량이 16억톤에 달하고, 이로 인해 온실가스 33억톤이 대기 중에 배출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전 세계 농경지의 약 30%를 음식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데 쓰고 있다. 신간 <정의로운 식탁-기후, 비인간동물, 인간을 위한 공감의 식생활>(착한책가게)의 저자인 캐나다 케이프브레턴 대학교 교수 트레이시 해리스와 테리 깁스는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본질인 상품화, 성장, 추출주의, 단일경작, 공장식 축산”을 그 이유로 든다. 사실 핵심은 널리 알려져 있듯 육식이다.
예컨대 전 세계에서 생산된 대두의 4분의 3 이상이 육류와 유제품 생산을 위한 가축의 사료로 사용된다. 나머지도 대부분 바이오 연료, 산업용 또는 식물성 기름으로 사용된다. 두부, 두유, 에다마메, 템페 등 사람이 먹는 식품에 직접 쓰인 대두는 7%에 불과하다.
<정의로운 식탁>에 따르면 인간은 연간 대략 소 4000만마리, 돼지 1억2000만마리, 칠면조 3억마리, 닭 90억마리 등을 소비한다. 다른 통계로는 전 세계에서 매년 약 560억마리의 육상동물이 식품 생산을 위해 도살된다고 한다.
<정의로운 식탁> 저자들은 “세계 식단에서 육류 소비가 증가하는 것이 기아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갈수록 더 많은 곡물이 가축 사료로 사용되면서 곡물 칼로리의 많은 부분이 손실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산된 육류는 구입할 여력이 없다. 주지하듯 육류는 효율 높은 칼로리 공급원이 아니다. 육류는 수억 명의 사람이 선호하는 식품이지만 JBS 같은 다국적기업을 통해 그 수억 명의 선호를 충족하느라 나머지 인류는 ‘혜택’ 없이 막대한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한국인은 대체로 선호를 충족하는 수억 명 안에 든다.

■탈동물화와 구획화
브라질의 JBS, 미국의 타이슨 같은 육류가공기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상품을 생산한다. 육류 가공업종의 핵심 기제는 ‘탈(脫)동물화’와 구획화이다. 탈동물화는 <정의로운 식탁>에서 가축을 대체한 용어인 비(非)인간동물을 상품처럼 취급하는 과정 전반을 의미한다. 도축시설의 구획화와 포장을 거쳐 소비자에게 육류를 유통하는 방식은 탈동물화를 더욱 부추겼다. 도축장의 구획화는 불쾌함을 배제하면서 비인간동물을 도살하는 설계이다. 작업을 구획별로 나누고 시설을 구조화하면 육류가공 노동자 대부분에게 동물 도살과 무관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구획화는 이른바 ‘시선의 정치학(politics of sight)’의 활용이다. ‘시선의 정치학’은 무엇을 보여줄지, 무엇을 보여주지 말지를 핵심 수단으로 사용하는데 도축산업의 구조가 어떤 모습인지, 누가 그곳에서 일하는지, 도축장과 소비자 사이의 거리가 어떻게 현실을 숨기는지 등 도축산업의 특징을 은닉한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이전, 캐나다는 1970년대 이전까지 대규모 소·돼지 도축장이 도심에서 멀지 않았다. 이후 도축장이 점점 농촌으로 이동하는 것과 맞물려 작업이 기계화·자동화되었고 단일 종만 도축하는 공장이 세워지는 등 도축업계에 큰 지형변화가 일어났다.
인력을 이민자로 채우는 노동 전략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이에 따라 1960년대 이후 도축장 노동자의 소득이 낮아지고 단체교섭력 또한 눈에 띄게 약해졌다. 광범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전반적인 노조의 영향력 감소는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축업계는 쉽게 인력을 대체하고 더 고분고분한 노동자를 고용했다. 시골에서는 다른 일자리가 많지 않았기에 회사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동시에 이민자를 대거 고용했다.
<정의로운 식탁> 저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육류가공 일선에 있는 노동자 중 45%는 저소득층, 80%는 유색인종, 52%는 이민자이며, 이들 중 다수는 불법체류 상태이다. 캐롤라이나의 닭 도축 공장 두 곳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노동자의 90%가 흑인 여성으로 밝혀졌다. 저임금과 ‘불쾌’한 노동 떄문에 이쪽의 이직률은 이례적으로 높다. 캐나다 육류가공 공장에서 입사한 첫해를 넘겨 계속 남아 있는 노동자는 10명 중 단 1명뿐이었다.
식품 기업이 노동자에게 적절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이유는 여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구획화한 공정을 기계화하고 자동화하면서 협상력이 부족한 취약 노동자를 고용해 적은 임금을 주고 기업과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재무제표를 통해 쉽게 확인된다.
미국 등 서구 국가에서 시행 중인 애그개그법(동물학대행위 촬영 금지법)은 시장과 소비자를 겨냥한 ‘시선의 정치학’의 좋은 예다. 소비자는 정갈하게 손질되고 포장된 육류를 보아야 하며, 과정의 불쾌나 문제점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전략이다. 목표는 ‘소비자 고착(consumer lock-in)’이다. 소비자는 동시에 시민이어야 하는데 시민성을 잃어버리고, 더불어 음식을 먹는 것이 생태적 행위이자 정치적 행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저자들은 “농축산업이 너무 강력해져서 그들은 법 위에 있다. 법을 존중하기보다는 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육식 민주주의가 되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고 개탄했다.
■비대칭과 분열
현재 지구 인구의 1.7%만이 농사를 짓고 나머지 98%는 짓지 않는다. 시장에 식품을 공급하는 것은 사람을 먹이는 것과는 매우 다른 일이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작동하는 식품수급체계는 시장에서 식품을 사고파는 것이다. 식품시장에 관한 한 시장은 비효율적이다. 생산된 식품의 30%가 쓰레기로 버려지는 상황은 교과서에서 말하는 시장을 통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동떨어져 있다. 이 세상에는 굶주린 사람 7억~8억명과 과체중·과영양인 사람 10억명이 공존한다. 북아메리카와 서유럽 주민은 세계 인구의 12%에 불과하지만 개인 소비 지출에서는 60%를 차지한다. 그들은 가난한 나라들의 주민보다 평균적으로 곡물, 생선, 담수는 3배, 고기는 6배, 에너지와 목재는 10배 더 많이 소비한다.
남북 격차만 있지 않고 국가 내에서도 심각한 비대칭이 있다. 미국에서 백인 중산층 밀집 지역의 식품 접근성이 흑인 저소득층 밀집보다 훨씬 높다. 가난한 지역에서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식품을 구할 데가 없을 때가 많아서 시민들은 편의점과 주류 판매점,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식품을 구입해야 한다. 이런 지역은 ‘식품 사막(food desert)’으로 불리며 ‘식품 사막’을 포함한 현재의 인종주의적 식품 정책 전반의 결과 혹은 그 구조적 폭력을 ‘식품 아파르트헤이트’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휴메인 워싱’
육식이 문제라는 사실이 이제 제법 알려졌지만 답안 작성이 어렵다는 게 더 큰 문제이다. 인간에 대한 억압과 다른 동물에 대한 억압이 깊게 얽혀 있다는 것이 <정의로운 식탁>의 통찰이다. 그렇다는 얘기는 ‘식품 정의’가 ‘기후 정의’ 등 다른 의제와 함께 풀어야 하는 난제라는 뜻이기에 문제를 제대로 확인하는 순간 사실상 포기 상태에 접어들 확률을 높인다.
동물복지라는 부분적 주제에 매몰돼 ‘행복한 고기’ 같은 지엽적 사안에 매몰되는 회피 또한 가능해 보인다. 구조적 문제에 눈감고 그릇된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는 ‘휴메인 워싱(humane washing)’을 야기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정의로운 식탁>이 마땅한 해법을 제시한 것은 아닌 듯하다. 구조적 약탈과 구조적 폭력으로 복잡하게 얽힌 시스템을 바꾸려면 전면적인 전복이 사실상 유일한 해법인데, 현재로선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인류 전체가, 적어도 상당 비율이 육식을 끊는다면 좋은 대안이 될 텐데, ‘나 하나’로 그칠 공산이 크다.
저자들은 “음식 정의를 이루려면 정의로운 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토지 인간 비인간동물에 대한 구조적 폭력을 시작으로 식품 시스템, 동물산업복합체, 기후 붕괴와 민주주의의 제반 현안으로 논의를 확대한 뒤에 온정적 식품 시스템과 공동체 등 긍정적 변화의 방향을 제안한다. <정의로운 식탁>과 같은 작업이 분명 유의미하지만 JBS 같은 기업이 승승장구하는 상황에서는 탁상공론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을 어떻게 넘어설지를 먼저 고민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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