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주눅든 보수, 자긍심을 되찾으려면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 보수가 가야 할 길 ②


'주눅 든' 보수와 '샤이(shy)' 보수. '주눅 든'은 무섭거나 부끄러워 기세가 약해졌다는 뜻이다. '샤이'는 부끄러워한다는 뜻이다. '주눅 든'과 '샤이'에는 자기가 보수임을 당당하게 여기지 못하고 그래서 겉으로 밝히길 꺼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지금 보수가 처한 현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국의 보수가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더 이상 주눅 들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보수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보수 세력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하 '전직 대통령' 생략)의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을 거치면서 주눅 들고 부끄러워하게 됐다. 이는 당시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난다. 박근혜 탄핵 직후인 2017년 대선 기간 중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면접원이 응답자에게 직접 답변을 구하는 조사는 자동응답장치(ARS)에 의한 조사에 비해 보수정당 지지율이 낮게 나오거나 무응답 비율이 높게 나오는 사례가 많았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응답자들이 면접원에게 자기가 보수임을 밝히길 꺼려 보수를 지지하면서도 사실과 다르게 답변하거나 아예 답변을 거부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박근혜·윤석열 탄핵, 보수의 가치 되살릴 기회로
 

윤석열 탄핵 이후 실시된 대선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이재명 후보와 이준석 후보는 전화 면접과 ARS 조사 방법에 따른 지지율 차이가 크지 않았다.두 조사 모두 이재명 후보는 49%대, 이준석 후보는 7%대로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다. 그런데 김문수 후보는 조사 방법에 따른 지지율 차이가 컸다. 전화 면접에서는 30% 정도를 유지했지만 ARS는 이보다 10%포린트가량 높게 나오는 경우가 여럿 있었다. 특히 중도층과 보수층에서 그랬다. 중도층과 보수층에서 여론조사 면접원에게 자기가 보수 성향임을 드러내길 꺼리는 사람들이 특히 많았다는 뜻이다.

보수 정당 출신 대통령이 두 명이나 탄핵되면서 덩달아 보수의 가치 그 자체도 부정과 폄훼의 대상이 되다시피 했다. 보수는 사라져야 할 악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보수 정당 출신 대통령들의 탄핵이 곧 보수 가치의 탄핵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들의 잇단 탄핵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수의 가치까지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수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면서 지켜나갈 계기가 될 수 있다.

박근혜·윤석열이 탄핵에 이르게 된 경위는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법치주의를 어겼다는 점이다. 박근혜는 최순실이라는 사인의 국정 개입을 허용했다. 윤석열은 비상계엄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대통령이라도 법적 근거와 절차에 따라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그게 법치주의이다. 사인에게 국정 개입을 허용할 법적 근거는 없다. '경고성 계엄'이라는 비상계엄 선포 요건도 없다.


정의 추구하되 법 질서 내에서
 

법치주의는 보수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아무리 목적이 좋더라도 그 수단과 방법이 법에 어긋나거나 법을 남용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게 보수의 정신이고 가치이다. 보수에게 법은 권력 통제 장치이다. 보수는 정의를 추구하되 법 질서 내에서 한다. 모두가 자기 나름의 정의를 내세워 법을 무시하면 사회는 혼란과 무질서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진보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려 한다. 목적이 좋으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도 문제 없다고 여긴다. 진보에게 법은 권력의 도구이다. 정의를 앞세워 법을 악용하고 남용한다. 국회 입법권을 장악한 민주당이 정의 실현이라는 이름으로 입법 독주를 하고 탄핵 소추를 남발한 일이 대표적 사례다. 법치주의가 비록 박근혜와 윤석열에 의해 훼손되긴 했지만 여전히 보수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임에는 변화가 없다.

사법부 존중 역시 법치주의를 추구하는 보수가 존중하는 가치이다. 사법부 판결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의와 다르다고 해도 사법부 권위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게 보수의 믿음이다. 법을 통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사법부의 역할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지지자들은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을 진행하는 동안 매일 헌재 앞에 모여 탄핵 반대 시위를 했다. 그러나 헌재가 탄핵을 결정하자 순순히 승복했다. 이게 바로 사법부를 존중하는 자세이다.

만약 탄핵 기각 결정이 나왔어도 그랬을까? '법보다 정의'를 외치며 연일 시위와 집회를 벌였을 것이다. 민주당은 사법부가 자기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할 때마다 판사를 탄핵하겠다는 등 법원을 겁박했다. 사법부 권위와 독립을 해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민주당은 '법보다 정의'를 주장했다.


급격한 혁신 대신 점진적 변화 지향
 

보수는 이념이나 이상을 앞세운 급격한 변화를 거부한다. 법 질서 안에서 안정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전통과 관례와 경험을 존중하면서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게 보수가 추구하는 가치다. 반면에 진보는 사회정의 실현이나 개혁 같은 이념을 앞세워 기존의 법과 제도를 단박에 뜯어고치려 한다. 이상적인 사회 건설이라는 확신과 열정에 차서 급격한 혁신을 하려 한다. 그러나 이런 혁신은 재난이 되기 쉽다. 혁신은 이로운 만큼 파괴적일 수도 있다. 이게 보수의 믿음이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 개혁을 앞세워 일거에 검수완박을 하고 공수처를 도입한 것이 확신과 열정에 의한 혁신의 사례다. 그 문제점과 부작용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국민 생명을 지키겠다며 급격히 추진한 탈원전 정책도 그렇다. 어마어마한 전력 수요를 필요로 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이재명 정부 역시 방송3법, 노란봉투법, 검찰 수사와 기소 분리 등 그들의 확신과 열정에 얽매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정책 역시 앞으로 문제와 부작용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안정 속 점진적 변화는 당장은 미흡할 수 있다. 그러나 부작용을 피하거나 줄일 수 있다. 점진적 변화로 안정과 질서를 꾀한다는 보수의 가치는 결코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다.


능력과 실적에 따른 정당한 배분 추구
 

보수는 능력주의와 실적주의 그리고 능력과 실적을 겨루는 경쟁을 긍정적으로 본다. 결과의 평등보다 기회의 평등을 중시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능력을 발휘하고 경쟁에서 이겨 실적을 낸다면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경쟁에서 뒤처져 불평등이 생긴다면 그런 불평등은 정당하다고 믿는다. 능력주의와 실적주의는 궁극적으로 개인과 사회의 발전에 원동력이 된다. 이게 보수의 믿음이다. 기회의 평등보다 결과의 평등을 앞세워 능력주의와 경쟁을 죄악시하는 진보와는 다르다.

이처럼 보수의 가치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다. 자긍심을 갖기에 모자랄 게 없다. 문제는 보수가 이런 본래의 가치에 얼마나 충실하느냐다. 아무리 보수의 가치가 좋다고 해도 존중하고 지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나아가 보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보수는 기득권 수호 논리밖에 되지 않는다. 약자를 배려하고, 잘못된 법과 제도를 서서히 고쳐나가는 일이 보수의 책임이고 의무이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말이 있다. '졸부'와 '꼰대'이다. 졸부는 돈이 있다고 우쭐대며 남을 업신여기는 행태를 말한다. 이웃과 남을 배려하지 않는 개인주의, 냉정한 이기주의, 탐욕주의, 물질 숭배주의가 졸부의 속성이다. 남보다 더 노력해서 실적을 내고 경쟁에서 이겨 재산이나 지위를 얻은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다. 그보다는 경쟁에 뛰어들 형편이 안 되거나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에 대해 배려와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게 문제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낸 존 롤스(John Rawls·1921~2002)는 경쟁이나 실적주의가 꼭 공정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본인으로선 어쩔 수 없는 운이나 상황이 경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유한 부모를 둬서 어릴 때부터 비싼 사교육 받고 외국 유학 다녀온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같이 경쟁시킨다면 그 결과를 공정하다고 할 수 없지 않으냐고 한다. 부유한 부모를 둔 것은 운일 뿐이다. 그런 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졸부'와 '꼰대'에서 탈피를
 

자기가 남보다 머리가 좋거나 열심히 노력하는 성격이라 경쟁에서 이긴 경우라면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롤스는 이런 경우라도 경쟁에서 이긴 과실을 혼자 독차지한다면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고 한다. 좋은 머리나 근면성과 성실성 역시 타고난 운일 뿐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란다.

롤스의 말에는 보수가 되새겨봐야 할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부유한 부모를 둬서 남보다 상공한 경우는 물론이고 남보다 머리가 좋거나 열심히 노력하는 성격 덕분에 성공한 경우라도 우쭐대거나 기득권을 독차지하려 하지 말고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능력이 뒤처지거나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에게 따듯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재산의 일부를 기부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자세가 한 예이다.

보수에게 따라다니는 '꼰대'라는 말은 어떤 변화도 거부한 채 기존의 법과 제도를 고수하려는 자세를 말한다. 수구, 반동, 꼴보수라고도 한다. 보수에게 변화가 왜 중요한지를 얘기할 때 댐의 수문을 예로 든다. 댐에 수문이 없으면 물이 가득 차 댐이 무너질 수 있다. 수문이 있으면 물이 찰 때마다 조금씩 흘려보내 댐이 붕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보수에게 변화는 댐의 수문과 같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보수가 쇠퇴와 타락으로 빠져들지 않으려면 수문을 통해 조금씩 물을 흘려보내듯 점진적인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대 변화에 맞춰 법과 제도의 잘못된 점은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오는 22일 전당대회를 열고 새 지도부를 선출한다. 새 지도부가 보수를 이끌 만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가 관심이다. 그러나 보수의 재건을 국민의힘이나 그 지도부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그들이 다 할 수도 없다. 우리 사회의 보수가 보수의 가치를 지켜내는 게 중요하다. 보수의 가치에 자긍심을 갖되 보수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게 그 길이다. 그래야 주눅 들고 부끄러워 하는 보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야 보수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