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질병코드, 와인을 깨끗한 소변통에 담겠다는 것”

  • 유병준 “경제 축소 국회의원이 규제 자랑” 일침

  • 질병분류시 생산감소효과 5조ㆍ3만명 취업 감소

  • 인터넷·소셜미디어도 질병분류 대상 가능성

  • 만화ㆍ웹보드게임 규제시 해외업체만 배불려

유병준 서울대 경영대 교수가 28일 오전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주최하고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게임 이용 장애 질병 분류의 경제적 효과 분석 연구 결과 발표 및 토론회’에서 같은 제목의 논문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데일리동방] 게임 이용 장애 질병 분류(ICD-11)가 관련 산업·교육 위축과 청년실업 부작용을 낳는다는 경고가 나왔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28일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주최하고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게임 이용 장애 질병 분류의 경제적 효과 분석 연구 결과 발표 및 토론회’에서 “게임 산업 매출 28%가 감소하면 생산 감소 효과는 5조2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며 “이에 따른 취업 감소 규모는 3만4000명으로 부정적 파급 효과가 이어질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유 교수와 전성민 가천대 경영대 교수, 강형구 한양대 경영대 교수가 함께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5월 국제질병분류(ICD) 11차 개정에 게임 사용 장애를 최종 등재했다. ICD-11은 2022년 1월 효력을 발휘한다. 한국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로 ICD 기준을 적용한다. KCD 8차 개정은 2023년 진행될 전망이다.

게임 사용 장애는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고 해석도 자의적일 수 있어 논란을 불러왔다.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하는 모습이 12개월간 뚜렷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게임 사용 장애로 볼 수 있다. 범위도 디지털・비디오 게임에 한정돼 다른 매체와의 형평성 문제가 거론된다.
 

[사진=픽사베이]

◆산업만 위축···이현세 탄압 기억해야

연구진은 과거 사례를 볼 때 이번 질병코드 등록은 실효성 없이 산업 위축과 논란만 야기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2012년 인터넷 중독 질병코드 생성 방안을 제시한 연구가 대표 사례다. 여기에는 질병 코드화를 통한 치료와 의료비 모델이 담겼다. 이에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가 인터넷 의존증 예방과 해소를 위한 ‘그린인터넷’ 인증 제도를 도입했지만 인증 신청 건수가 연평균 3건에 불과해 2018년 1월 폐지됐다는 설명이다.

게임 규제 정책이 목표와 다른 결과를 낳은 경우도 있다. 청소년보호법 개정으로 2011년 시행된 셧다운제는 만 16세 미만 청소년이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관련 선행 연구에 따르면 심야 시간에 게임 하던 청소년들이 다른 시간대로 옮겨갔을 뿐 총 게임 가용시간 대비 실제 이용 시간은 늘었다.

그 사이 국내 게임산업 매출은 줄었다. 셧다운제 실시 이후인 2013년 1419억원, 2014년 1조200억원 줄었다. 이는 2014년 총 시장 규모의 10.7% 수준이다.

이날 연구진은 국내외 중독·사행산업 규제 사례로 게임 질병 장애코드가 부를 산업 축소 규모를 예측했다. 이를 위해 세 교수는 미국의 1970년대 담배중독에 대한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등재와 1990년대 WHO의 ICD 등재에 따른 판매량 추이, 2004년과 2015년 한국의 담뱃값 인상 결과, 1997년 한국의 만화 검열제 영향 등을 분석했다.

만화 규제의 경우 국내 산업 위축과 수입물 증가로 이어졌다. 1997년 청소년보호법 제정으로 ‘청소년 유해매체 표시’라는 만화 검열제가 시행됐다. 이때 만화방 영업자와 출판업자, 만화가들이 ‘음란만화 작가’로 불리며 줄줄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천국의 신화’를 그린 이현세 작가다.

그 결과 1996년 873종에 불과했던 번역 만화 출판 수는 1997년 1576종으로 뛰었다. 번역본 비율도 이 시기 15.61%에서 25.03%로 올랐다. 같은 기간 전체 만화 출판 수는 5592종에서 6297종으로 소폭 늘어난 점과 대조된다.

같은 흐름을 가정해 국내 게임산업 위축이 해외 게임 수입으로 전환될 경우 예상되는 손실액은 2022~2025년 평균 8648억원이다.

담배산업 사례를 보면 게임산업 매출 감소 규모는 연평균 2조80억~3조5205억원으로 추정된다.
 

[자료=유병준·전성민·강형구 교수 발표 자료]

◆“낙인 의식한 일반인만 사용 줄일 것”

게이머가 받을 영향은 중독 물질을 즐긴다는 사회적 낙인이다. 이 때문 보통 사람들은 게임시간을 줄이는 반면 과몰입자에게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연구진이 올해 2~3월 남녀 503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게임 이용자는 질병 분류 이후 게임비를 평균 28% 줄일 것이라고 답했다. 게임시간은 24% 줄고 이용 게임 수도 22%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진은 질병코드 등록이 잠재적 문제집단에게는 별 효과가 없는 반면 금단현상이 우려되는 소수는 게임 이용 수준을 낮추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설문 응답자 가운데 잠재적 문제이용집단에 해당하는 130명을 보면 이들은 추가 지출을 해서라도 게임을 지속적으로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정상집단은 ‘게임중독 질병코드 등록으로 게임비가 증가(세금 등)한다면 나는 돈을 더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질문에 대한 답변 점수 평균이 1.912였다. 반면 잠재적 문제이용집단 평균은 2.3이었다. 단순 규제가 아닌 ‘스트레스를 많이 겪는 집단’, ‘자기통제력 부족 집단’ 등을 선별해 정책을 펴는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설문과 기존 산업 위축 사례를 종합하면 게임산업 연매출 축소 규모는 3조6798억원이 예상된다. 평균 28% 게임비 감소 응답을 2017년 연매출 13조1423억원에 대입한 결과다. 게임 제작 위축에 다른 수입액은 연간 8648억원이 예상된다.

의무 부담금과 치료를 위한 사회적 비용도 산업 위축에 영향을 줄 것으로 연구진은 내다봤다. 지난해 기준 국내 전체 게임 이용률은 65.7%다. 이 가운데 과몰입군에 속하는 청소년 비율은 0.5%다. 과몰입위험군은 2.4%다. 이들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예산은 약 49억9500만원으로, 전체 게임 사용자에 적용하면 1131억6300만원이 추정된다.

과거 폐기된 법안을 근거로 새 법안이 통과되는 등 부담금 규모가 커질 수 있다. 2013년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이 발의한 ‘인터넷게임 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은 중독성 높은 인터넷게임에 최대 매출 5%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5억원 이하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담겼다. 향후 게임산업에 사회적 의무 부담금이 징수될 경우 같은 기준을 적용해 연간 7000억원 부담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과몰입과 중독 관련 정부 사업은 이미 진행중이다. 게임문화재단은 문화체육관광부 허가 비영리법인으로 과몰입 연구와 치료 사업을 진행한다. 재단 기부금 대부분이 게임업체에서 나온다. 인터넷게임 디톡스사업은 미래창조과학부와 보건복지부 등 범 부처 연구개발(R&D) 사업이다.

◆몰입하면 무엇이든 이용장애

게임 이용 장애 질병 분류는 인터넷 관련 산업 전반에 확산될 수 있다. 2009년 인터넷 중독 질병 분류를 다룬 선행 연구는 질병 개념 적용이 발달 과정의 자연스러운 문제를 과도하게 질병으로 일반화할 가능성을 지적했다. 강박장애 같은 기존 진단 방법이 있음에도 이를 새 질병으로 추가한다면 유사한 문제 역시 새 진단 대상이 된다는 의미다.

연구진이 구글 트렌드로 2016년 1월 이후 이용자 관심도를 살핀 결과 게임 이용 장애보다 인터넷중독과 소셜미디어중독에 더 높은 관심을 보인점을 파악했다. 이 역시 또 다른 질병코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청년 고용 감소도 예상된다. 연구진이 한국은행의 2015년 산업분류표와 생산유발계수 분석을 종합한 결과 게임산업 취업자 수는 8만9885명으로 추정된다. 게임산업의 고용 창출 효과는 10억원당 6.32명이다. 이는 건설업(5.96), 공공행정(7.59)과 유사한 수준이다.

장애 질병 분류 이후 매출이 5조2526억원 감소할 경우 3만4007명이 고용 기회를 잃게 될 전망이다. 논문은 통계청과 업계를 인용해 게임산업 종사자 대부분이 30대 초중반이라고 설명했다.
 

28일 오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게임 이용 장애 질병 분류의 경제적 효과 분석’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꺼림칙한 매체로 만들고 영향 없다니

토론에 참여한 각계 전문가들은 게임 자체에 대한 낙인 효과를 경계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정책 마련을 제언했다. 좌장으로 나선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엄청난 사회적 실험이 일어나고 있다”며 “게임이 누군가의 정신장애 원인이 된다면 엄청난 트래픽과 사고가 일어나야 하는데 아직 안 나타나고 있다”며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었다.

질병코드 등재가 게임 자체에 영향 주지 않을 것이라는 찬성 측 주장에 대해서는 “최고급 와인을 깨끗한 소변검사 컵에 담아주면 꺼림칙하다”며 “게임 소비에 지장이 없다는 얘기는 문화 콘텐츠를 자연 대상물로 볼 것이냐 사회적 가치로 인식할 것이냐는 문제”라고 반박했다.

객관적 평가 대신 편견으로 게임을 대하는 국내 분위기가 코드 등재에 따른 산업 위축 위험을 높일 것이라는 우려도 이어졌다. 이형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질병코드 도입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굉장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게임물 자체가 중독의 원인이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정신적 요인이 과몰입을 유발할 수 있다”며 “우울증을 치료해야지 게임을 치료 대상으로 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한국·미국·일본 비교 연구를 근거로 국내 질병코드 파급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질병코드 등재시 느끼게 될 낙인 효과가 한국이 가장 크다는 설명이다.

이날 논문을 발표한 유병준 교수는 “(게임 중독) 문제를 무시하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금도 이미 게임업계가 신경쓰고 있고 질병 치료 지원도 하고 있는데 더 많은 규제를 해야 하느냐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웹보드게임 규제 때도 국회의원이 그로 인해 사회가 깨끗해지고 이익도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며 “결국 사업이 반토막 나고 해외 불법사이트로 가는 풍선효과가 엄청날텐데 너무들 쉽게 생각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문제를 특정 산업 자체에 대한 규제로만 해결하려 든 관성이 아무런 효과 없이 산업 위축만 불러온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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