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돗물 100일] ④ 전문가들 "상수도관은 시한폭탄…언제 어디서 터질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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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류혜경 최지현 기자
입력 2019-09-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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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도관을 국가적 자산으로 관리해야…"정부 국민의 물 기본권 존중해야"

  • "주민들이 수돗물 관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 마련 필요해"

 

지난 13일 오후 9시50분께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인덕원역 사거리에서 지하에 매설된 1000㎜의 광역상수관이 파열됐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통행 차량 10여대가 침수됐을 뿐만 아니라 인덕원역 3번 출구가 한 동안 통제돼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이번에 파열된 수도관은 지난 1974년에 매설된 것으로 노후화가 파열의 원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노후상수관 파열은 최근 들어 연이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6월 17일에는 대전에서, 5월 24일에는 대구와 서울에서 노후 상수도관 파열사고가 발생했으며, 2018년 9월 19일에도 부산에서 노후 상수도관이 파열됐다.  

본지가 인천수돗물 100일 기획을 진행하면서 만난 전문가들은 지하에 묻힌 상수도관의 파열 혹은 오염 사고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하에 묻힌 '시한 폭탄'인 셈이다.  

환경부를 비롯한 지자체에서는 대책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연이어 열고 있지만, 과연 그중 얼마 정도가 실제 정책에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아주경제 기획취재팀은 전문가들에게 수돗물 정책 재점검이 이슈로 떠오른 지금, 무엇보다도 우선순위에 놓여야 할 정책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들어보았다. 


 

지난 13일 오후 9시50분께 경기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인덕원역 사거리에서 공업용수배관이 파열돼 도로가 물에 잠겼다. 이 사고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차량 10여대가 침수됐다. [사진=연합뉴스]


◇얼마나, 어디에, 어떻게 묻혀있는지 파악해야

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곽결호 경화엔지니어링 회장은 수돗물 관망조사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곽 회장은 "우리나라는 90년대 수질오염 이슈가 터지면서 수돗물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낮은 상태"라면서 "특히 수돗물 불신의 가장 큰 이유는 노후수도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소비자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수돗물) 관망 조사다. 그러나 현재 이를 제대로 조사한 자료는 없다. 지역별로 관에 관한 조사 내용이 없기 때문에 이를 관리하는 체계는 당연히 없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곽 회장은 다른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최근 인천 수돗물 사태와 같은 일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관리하는 기관들이 수도관 현황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교체가 필요한 시기에 제대로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곽 회장은 "수도 관련 사업은 긴 호흡을 가지고 가야하는데, 사실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잠깐 머물다 가는 관리들이 진행을 꺼리는 편이다"라고 비판했다. 이는 앞서 지자체 수도관련 공무원들도 지적한 사항이다.

권지향 건국대 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수도관이 국가의 '자산'으로 관리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 이후 발의되기는 했지만, 이전에는 수도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법이 없었다는 것이 권 교수의 지적이다.

권 교수는 "설치된 뒤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모두 노후관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묻힌 토양의 성질과 관이 매립된 위치에 따라서도 상태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현재 묻혀있는 관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질 필요가 있으며, 이는 관리감독 기관인 환경부의 가이드라인 하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두일 단국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수돗물 정책 마련에 있어 조급한 태도를 버려야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최근 수돗물 논란이 일면서 예산을 늘리겠다는 논의가 급증하고 있지만, 갑자기 예산을 늘린다고 전문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소 30~40년은 축적된 문제가 이번에 터진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를 한순간에 해결하겠다는 태도는 옳지 않다"면서 "상수도 기반시설 노후화를 인정하고 현황을 파악해 나가면서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대영 환경부 정책기획관이 지난달 27일 정부세종청사 환경부에서 미세먼지 저감, 수돗물 안전정책 등 환경권 보장에 집중 투자하는 9조4000억원 규모의 2020년도 환경부 예산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부는 국민의 '물 기본권' 보장해야"

전문가들은 정부·지방자치단체가 수돗물을 좀더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자원공사 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인천대에서 도시토목공학을 가르치고 있는 최계일 교수는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수도관리 당국은) 아파트 단지 내 물탱크나 옥내배관 등은 관여하지 않고 있다"면서 "물도 전기처럼 관리할 수 있도록 법과 조례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급수부 여성우 주무관은 "노후 급수관 관리 주체는 소유자이며, 책임 역시 소유자에게 있지만, 서울시는 예산 낭비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맑은 물 공급이라는 공익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시와 같은 거대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예산이 부족한 작은 지자체 경우에는 이 같은 보조가 어려운 실정이다. 

사회공공연구원의 송유나 연구위원은 올해 1월에 발표된 환경부의 '물 순환 체계 회복을 위한 상수도 발전방향 연구' 보고서에서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치수(治水)라고 할 수 있다"면서 "과거 우리나라는 과잉 댐건설 정책을 주도하여 건설자본 육성에 치중했으며 수요 관리와 지속가능한 물 정책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송 연구위원은 "수도시설 관리 사업의 경우 영세한 지방상수도의 경우, 지자체 재정으로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시설 개선 노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직접 지원 혹은 전반적 지원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자체의 부족한 재원은 상수도의 공공적 발전과 물 기본권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놓고 볼 때 지자체에 내맡길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감당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이 상수도 서비스에 대해 보다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 연구위원은 "녹물이 나오거나 단수가 되거나 하수도가 넘치지 않는 한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별로 없고, 주민들이 수질과 환경, 서비스 조건 등에 대해 평가를 하고 불만을 제기할 정보 자체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시민환경연구소 백명수 부소장은 "수도사업의 역량을 제고하기 위한 논의의 화자는 지역주민이 되어야 하며, 이를 기본 전제로 설정하고 이를 위한 다양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충남연구원 김영일 연구위원 역시 '상수도 민영화 해외사례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상수도) 서비스의 운영방식에 대한 부분은 다양한 이해당사자와 충분한 의견수렴을 통해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상수도 계획의 수립과 집행에 이르기까지 지역주민 및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법률이나 제도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면서 "공공서비스에 대한 주민참여위원회 설치를 통해 정책추진에 대한 감시와 평가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9일 경북 포항시 남구 대잠동에 상수도관과 연결된 소화전에서 틀어놓은 물이 밖으로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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