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들이 제시하는 한국현대미술의 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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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기자
입력 2018-02-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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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호미술관, 오는 4월 1일까지 '2018 금호영아티스트'展 개최

  • 지희킴·강호연·우정수·정희민 등 작가 4명의 회화·설치 작품 선보여

지희킴, '부지런한 기억들'(2017) [사진=금호미술관 제공]


관람객 눈높이에 맞춘 전시 기획·해설, 미술 아카데미 활성화, 작품 유통경로 투명화 등으로 미술관 문턱은 예전보다 많이 낮아졌다. 하지만 미술, 그 중에서도 현대미술은 여전히 난해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작품들이 일반 대중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금호미술관이 매년 선보이는 '금호영아티스트'전(展)이 눈길을 끄는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금호미술관은 2004년부터 공모를 통해 신진 작가들을 발굴·지원하는 등 한국현대미술의 새로운 시선을 제시해 왔다. 현재까지 총 16회의 공모를 통해 69명의 작가가 선정됐다. 오는 4월 1일까지 열리는 '2018 금호영아티스트'전은 2016년 제15회 공모에서 선정된 지희킴과 2017년 제16회 공모에서 선정된 강호연, 우정수, 정희민 등 작가 4명을 소개한다. 

전시장엔 일상 용품을 소재로 태양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인지와 감각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탐구하는 강호연 작가의 설치 작업을 비롯해 서사로부터의 이미지들을 다양한 은유로 그려내며 이미지와 내러티브의 관계에 의문을 던지는 우정수 작가의 회화 작업, 오늘날 세계에서 범람하고 휘발되는 이미지와 물질화된 회화의 사이에서 보편적 ‘상’(像)을 비롯한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탐색하는 정희민 작가의 회화 작업, 드로잉의 지지체로서의 책으로부터 파생되는 사고와 기억을 연쇄적인 드로잉과 감각적인 서사로 풀어내는 지희킴 작가의 회화·설치 작업들이 펼쳐진다.
 

정희민, '두 개의 사과'(2017) [사진=금호미술관 제공]


1층에선 정희민 작가의  'UTC -7:00 Jun 오후 3시의 테이블'이 관람객들을 기다린다. 전시 제목은 작가가 설정하고 있는 가상 세계의 시공간대를 뜻한다. 정 작가는 현재의 삶을 둘러싼 이미지와 이미지를 경험하는 방식을 회화로 옮기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우리의 지각과 인지를 좌우하는 이미지와 그것이 내포하는 권력과 욕망의 전략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온 것이다. 그는 3D 모델링 소프트웨어가 만들어내는 가상 공간의 정물 이미지로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이 유리된 하나의 세계를 함께 탐사할 것을 제안한다. 실재와 동떨어져 모델링된 세계의 공간과 사물들은 스크린 속에 분명하게 실존하지만 일방적인 이미지로 표류한다. 사용자는 화면을 더욱 줌 인(zoom in)해 가까이 다가가 사물의 표면을 응시할 수 있지만, 아무리 밀착하려 하더라도 무게 없는 덩어리들은 사용자를 스크린 바깥으로 밀어낸다. 

미술관 측은 "정 작가가 선택한 시공간은 협정 세계시로부터 7시간 느린 산악 표준시를 사용하는 캐나다·미국·멕시코 서부 지역 어느 즈음의 6월 오후 3시"라며 "가상 공간에서의 ‘나’의 자아를 덩어리로 은유하고, 이러한 가상 생태계의 경험을 꿈에 빗대어 초여름의 오후, 꿈처럼 나른한 어느 날의 테이블을 전시장으로 불러낸다"고 설명했다. 

이어 2층에선 우정수 작가의 'Calm the storm'이 펼쳐진다. 우 작가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를 고민하며 서사로부터 얻은 이미지들을 다양한 은유로 그려낸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삶의 풍경과 대상들을 관찰하고 의심하며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고자 한다.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고 사회 안에서 예술가로서의 역할을 찾으려는 그의 노력들은 먹이나 잉크 펜이 드로잉해내는 흑백조의 화면으로 드러난다. 

그가 선보이는 작업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의 기적 가운데 하나인, ’예수가 폭풍을 잠재우다(Jesus calms the storm)’의 일화로부터 모티프를 얻은 것이다.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를 지나던 예수가 잠든 사이, 풍랑에 휩싸인 호수는 폭풍우치는 바다처럼 출렁이고 제자들은 두려워하며 예수를 깨워 호소한다. 이들의 믿음이 약함을 나무라며 예수가 바람과 호수를 향해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고 꾸짖자 곧 폭풍이 멈추고 호수는 고요해졌다. 후광을 지우는 것만으로 신적 존재인 예수는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되고, 상투적인 성화의 이미지는 폭풍에 고립된 군상의 이미지로 변한다. 종교적 의미가 지워진 그림은 이미지와 서사를 유희할 수 있는 장이 됐다.

가로 세로 모두 100㎝인 정사각형 캔버스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거대한 하나의 화면은 관람자를 압도한다. 추상적인 도상이나 반복된 선과 패턴, 그래픽적 요소들에서는 선의 강약과 농담, 면적 등 이른바 ‘선맛’이 강조된다. 미술관 관계자는 "대담하고 유쾌하게 다양한 표현 방식을 연구하며 작가가 이야기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는 듯하지만, 전시는 어느 순간 이야기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며 "이미지와 서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과 전시의 구성은 작가가 현재 임해 있는 지점을 짐작케 한다"고 말했다. 
 

우정수, 'Calm the storm 2-2'(2017) [사진=금호미술관 제공]


강호연 작가는 3층 전시장을 맡았다. 강 작가는 다양한 감각과 현상을 중심으로 한 이상적인 자연 이미지의 인지 경험을 일상의 사물을 재료로 한 설치 작업으로 구현해 왔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현대의 삶에 팽배해 있는 평면적·간접적인 시각 경험을 입체적·직접적인 공감각적 경험으로 복원해내는 것이다. 

그의 전시 '백과사전'은 거대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하나의 완결된 프로젝트이자 앞으로 이어질 전체 프로젝트를 도해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전시는 태양계를 형상화한 모빌 설치 작업과 사진 작업으로 구성된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자가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사진 작업은 이어지는 모빌 구조를 암시하는 것으로, 어두운 우주에서 행성이 모습을 드러내듯 암흑 속에서 어렴풋이 나타나는 사물들의 프로필 이미지를 담고 있다. 태양계 내에 존재하는 9개의 행성과 14개의 위성 각각을 상징하는 23개의 일상 사물들은 하나의 모빌 구조를 구축하고, 자전과 공전을 통해 우주의 행성들이 운행하듯 선풍기의 바람으로 동력을 얻어 회전한다. 

어린 아기가 침대에 누워 천장의 모빌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맞이하게 된 새로운 하나의 세계를 눈에 담아가듯, 강 작가가 만들어 낸 태양계 또한 아주 일부의 세계인 동시에 전체의 세계이다. 이 작은 태양계의 행성-사물들을 찾아가는 과정은 하나의 서사시와도 같아 작가는 이를 ‘우주를 아우르는 감각의 오디세이아’라 일컫는다.
 

강호연, 'Neptune'(2018) [사진=금호미술관 제공]


지하 1층을 책임지는 이는 지희킴 작가이다. 지희킴은 '가장 격렬한 것부터 가장 은밀한 것에 이르기까지'라는 전시를 통해 책으로부터 파생되는 사고와 기억을 연쇄적인 드로잉과 감각적인 서사로 풀어낸다. 그는 2012년경부터 버려지거나 기부받은 책을 이용한 북 드로잉 작업을 지속해 왔는데, 이번 전시에서 초점을 맞추는 것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로서의 책보다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흘러 넘치는 기억-이미지 자체이다. 

전시장에 나무 기둥을 설치해 관람객이 이동하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한 작업 '사랑을 내주지 않는 것, 사랑을 거두어 가는 것'은 2차원 평면의 드로잉들이 3차원 입체 공간 안에서 유연하게 뒤섞일 수 있게 함으로써 더욱 적극적으로 서사가 생산될 수 있도록 했다. '달아나 버린 밤' 시리즈는 기억과 또 다른 기억이 연쇄되며 이전과 다른 이미지로 변화되는 모습을 과감한 대형 드로잉으로 선보인다. 

전시의 제목처럼 대조적으로 구성된 두 개의 전시 공간은 북 드로잉을 바탕으로 하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조형 언어를 찾아가고자 하는 작가의 고민을 담고 있다. 전시 말미에 위치된 작업 '예의 바른 무관심1'은 기부받은 책의 각 페이지에 색지를 덧입혀 제작한 것이다. 버려진 책의 텍스트를 덮고 자신의 색을 입혀나가는 작업 과정 속에서 작가는 책의 원 저자를 지워나가며 자신의 정체성은 더욱 분명하고 확고하게 했다.

한편 전시 연계 프로그램도 두 차례 마련된다. 우정수·지희킴 작가는 오는 3월 17일 오후 3시, 강호연·정희민 작가는 같은 달 24일 오후 3시에 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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