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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의 아침묵상, 수련] 추석秋夕

배철현 서울대교수(종교학)입력 : 2017-10-02 17:02수정 : 2017-10-03 05:35
[배철현의 아침묵상, 수련]

 

[사진=배철현서울대교수(종교학)]



추석秋夕

능수 벚나무
오년 전 시골로 이사 오면서, 마당에 가운데 능수 벚나무 한 그루를 심어놓았다. 아침에 하얀 방석위에 좌정하면, 나를 어김없이 그리고 무심하게 반기는 스승이다. 4월에는 인간이 만든 어떤 색도 감히 표현할 수 없는 분홍색 꽃을 피우고, 6월에는 검푸른 열매를 맺는다. 6월부터 8월 말까지 이름 모를 새들을 초대한다. 그 새들은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하루 종일 능수 벚나무의 태연泰然을 자신의 목소리로 힘껏 찬양한다. 능수 벚나무가 한 달 전부터는 매일 매일 자신의 몸에서 잎사귀들을 아낌없이 떼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몇몇 끈질긴 나뭇잎 몇 개만이 처량하게 가지에 매달려있다. 이들의 마음도 이미 나무 아래, 자신들이 태어난 보이지 않는 땅 속 깊이 파묻혀 있는 뿌리를 향하고 있다. 자연自然은 신비롭다. 인간의 지성을 뛰어넘는 원칙을, 매 순간 묵묵히 수행한다. 그리고 자신의 주어진 일생 안에서 매년 변화한다.

2. 지구의 삐뚤기
지구는 언제부터 우리에게 사계절을 선사했을까? 능수 벚나무의 행위가 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사실 그 처음은 폭력적이었다. 태고부터 태양주위를 회전해왔던 가스와 먼지가 응집되어 지구의 조상이 된 한 행성이 탄생했다. 이 행성은 끊임없는 화산폭발로 바다와 대기를 만들었지만, 아직 산소酸素가 없어 생물이 살수 없었다. 그러나 신의 섭리인지 우연인지 모르지만, ‘테이아’Theia라는 화성만한 행성이 이 행성과 충돌하여 새로운 행성이 탄생했다. 그것이 ‘초기지구’初期地球다. 테이아는 우주에서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양의 얼음을 가져와 지구에 물과 그 안에 존재하는 산소를 선사하여 생물이 태어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리고 테이아와 행성이 부딪혀 또 하나의 행성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달’이다. 지구는 그 후 10억년동안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가 일어난 후, 35억 년 전에 처음으로 생명이 탄생한다.
테이아와 행성의 거대한 충돌의 흔적이 지구 자전축 기울기이다. 그리고 그 충돌의 결과가 사계절이다. 지구는 삐뚤어져 있다. 남북극을 연결한 직선 축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씩 자전한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이 지구의 직선 축이 지구가 태양주위를 공전하는 궤도에 대해 약 23.5도 기울어져있다. 지구의 ‘삐뚤기’가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의 변화를 선사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라 불리는 사계절이다. 사계절은 태양이 우주 안에서 움직이는 공전, 그것과 호흡을 맞춰 삐뚤어 진채로 태양주위를 도는 지구의 자전, 그리고 달과 지구의 중력 등이 어울려 만들어낸 우주 최고의 예술이다. 지구의 삐뚤기는 신비한 우연이면서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의 삶의 원칙이다.
사계절四季節은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는 시간과 공간의 자연스런 흐름이다. ‘사계절’을 의미하는 고대 히브리어 ‘모에드’moed는 사계절이 담고 있는 심오한 의미를 그대로 간직한다. ‘모에드’는 ‘야아드’라는 문법적으로 히브리 동사의 현재-능동-분사형이다. ‘야아드’는 ‘내가 이 순간에 해야 할 유일무이한 일을 완수하다’이다. 그 유일무이한 일은 이미 우주가 빅뱅으로 생겨났을 때, 나에게 맡겨진 임무任務다. 나는 이 임무를 묵묵히 완벽하게 완수할 것이다. 사계절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 ‘템푸스’tempus도 그 의미가 유사하다. 템푸스는 ‘어떤 임무를 완수하도록 분리된 것’이란 의미다. 사계절은 내가 잊고 있었던 숭고한 임무를 상기하고 발견하고 결심하는 시간의 마디다. 대나무가 마디를 완성하지 않고 하늘로 높이 자라날 수 없듯이, 사계절은 내가 해야 할 임무를 상기시켜주는 회초리다.

3. 오디세우스의 귀향歸鄕
사계절의 시작은 겨울의 죽음을 준비하고 봄의 탄생을 기원하는 추석秋夕이다. 고대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전쟁에 참전하여 승리를 거둔 뒤 20년 만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귀향이 트로이전쟁보다 훨씬 힘든 과정이다. 기원전 8세기 그리스 작가 호메로스는 ‘일이아스’와 ‘오디세이아’라는 서양문화의 바이블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이 추구해야할 최고의 가치 두 가지를 찬양한다. 하나는 ‘일이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를 통해 구현된 ‘명성’名聲이다. ‘명성’은 고대 그리스어로 ‘클레오스’kleos다. 클레오스는 참전하여 탁월한 지략과 용기로 전쟁에서 승리하여 획득하는 덕이다. 명성엔 한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로, 그 안에는 권력과 부가 포함되어있다. 클레오스를 거머쥔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전쟁에서 파리스가 쏜 화살에 발뒤꿈치를 맞아 허망하게 죽는다. 아니 작가 호메로스가 죽게 만들었다. ‘명성’이란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호메로스는 아킬레우스가 죽은 이유를 ‘일리아스’의 시작하는 첫 번째 책의 첫 단어로 알린다. 첫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명사 ‘메니스’menis의 목적격인 ‘메닌’menin으로 그 의미는 ‘분노’憤怒다. 첫 행 전체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오, 여신이시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찬양하십시오.” 분노는 자신이 남들과의 경쟁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호메로스는 ‘명성’보다 소중한 가치를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를 통해 찬양한다. 바로 ‘귀향’歸鄕이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에서 ‘명성’을 얻으면, 만사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명성’보다 더 힘든 영웅적인 전투가 남아있다. 바로 자신의 고향 이타케로 안전하게 돌아가, 자신의 본래 자리인 왕으로 다스리는 일이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꼬박 십년이 걸렸다. 자신의 본래의 자리를 방해하는 수많은 유혹들과 괴물들이 있다. 오디세우스가 이런 방해꾼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고향에 남겨둔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와 보고 싶은 아들 텔레마코스 때문이다. 고향에는 자신의 아내를 빼앗고 아들을 살해하여 이타케의 정권을 쥐려는 수많은 찬탈자가 기다리고 있다.
호메로스는 ‘귀향’을 고대 그리스어로 ‘노스토스’nostos라고 불렀다. 자신의 뿌리로 돌아가는 일이기도 하여 ‘귀근’歸根이라 번역해도 괜찮다. ‘노스토스’는 인생이란 여정의 시발점이면서 동시에 종착점이기도하다. 능수 벚나무 나뭇잎들이 가을이 되면, 그 시절을 좇아 나무 뿌리가 있는 곳을 향해 떨어지듯이, 오디세우스도 남들이 부러워할 명성을 얻고 나서, 그는 자신의 뿌리가 있는 고향으로 향한다.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와야, 희망찬 시작을 위한 힘을 얻기 때문이다.

4. 추석秋夕
생물은 사계절에 따라 스스로 변화하거나 자신의 근본을 찾아 이주한다. 추석은 자신이 있어야할 근본을 찾아가는 이주移住하는 시간이다. 동물들은 계절에 따라 상상을 초월하는 거리를 이동한다. 전 세계의 만 종이상의 새들 중 약 천팔백 종이 장거리 이주한다. 이들의 대부분은 여름에 수백km거리 북쪽으로 이동하고 겨울에 다시 수백km거리를 남쪽으로 이동한다. 새들 중 가장 유명한 종은 북극 제비갈매기다. 제비갈매기는 북극에서 알을 낳고 남극으로 무려 19,000km을 왕복 비행한다. 이 비행은 목숨을 담보한 죽음의 이주이지만, 새로운 생명을 탄생하기 위한 탄생이 이주이다. 특히 곰들은 나무나 바위 밑 깊은 곳으로 이주하여 오히려 죽음을 연습한다. 곰들은 가사假死상태로 겨울 내내 잠을 잔다.
인간의 이주는 특별하다. 자신을 존재하게 만든 부모에게 찾아가 감사感謝한다. 우리는 우리 모두를 배속에 품어 자신의 모든 자양분을 탯줄을 통해 공급하고, 태어나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어머님을 찾아가 인사드린다. 우리에게 생명을 씨앗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가족을 지켜주신 아버님을 찾아가 감사드린다. 추석은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이주할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존재하는 의미를 찾아가는 구별된 시간이다.

5. 오른손 법칙
추석은 이 가을날 능수 벚나무처럼, 모든 잎사귀를 땅에 떨어뜨리는 신비한 시간이며, 곰이 땅 속이 깊이 들어가 죽음연습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이 시간은 긴 겨울을 지나 새싹이 트고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위해선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사진=겨울나무]


나는 이 시간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 단순하게 져야한다. 내가 오른 손을 들고 나를 위한 격려로 엄지척을 하면, 내 존재의미와 임무가 보인다. 손과 엄지척의 각도는 정확하게 23도다. 지구가 우주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를 어렵게 23도 비튼 각도다. 우주, 태양, 지구, 달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 23도 삐뚤기를 마련하여 사계절을 만들었다. 추석은 나의 근본을 반추하는 수련의 시간이다. 그것이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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