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소비자 두번 울리는 기업 위기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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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미 기자
입력 2017-09-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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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미 생활경제부 차장
 

최근 이스타항공을 탔다. 탑승 중 항공기 외부에 써 붙인 ‘창립 10주년’ 글자가 눈에 띄었다. 짧지 않은 업력이다.

해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던 비행기가 공항 상공에 30여분 머물렀다. 안개가 심해서 착륙을 할 수 없다는 기장 안내 방송이 나왔다. 김포공항으로 갈 수도 있다는 안내와 함께. 김포로 향하던 도중엔 인천공항 착륙을 다시 시도하겠다고 했다. 인천과 김포 하늘길을 왔다 갔다 하던 비행기는 결국 김포공항을 최종 도착지로 결정했다. 예정 도착 시간보다 3시간이 훨씬 지난 후에야 비행기는 지상에 도착했다.

승객들 태도는 침착했다. 당황하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승객은 없었다. 문제는 승무원들이었다. 승객보다 당황한 태도였다. 날씨로 인해 예정된 일정이나 착륙 공항에 변수가 생기는 게 처음이 아닐 텐데도 말이다.

후속 조치도 엉망이었다. 인천국제공항에 장기주차를 하거나 물건을 반납해야 하는 승객이 있음에도 어떤 안내도 없었다. 항공기에서 나온 후에도 마찬가지다. 기장과 승무원은 이 사태가 ‘남의 일’인 양 자신들의 수화물을 들고 입국장을 빠져나가기 바빴다. 문제가 생긴 승객들은 누구에게 문의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스타 유니폼을 입은 직원을 잡고 물어보자 그제야 답변을 해줬다. 저비용항공(LCC) 업력 10년이 된 회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실망스러운 대응이었다.

위기대응은 위험한 상황이나 사태를 빠르게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미국 존슨앤드존슨이 ‘타이레놀 사건’ 당시 보여준 대처법은 위기대응 모범 사례로 불린다. 1982년 9월 미국 시카고 지역에서 두통약 타이레놀 캡슐을 먹었던 8명이 갑자기 숨진다. 조사 결과 사망자들이 먹은 타이레놀에는 치명적인 독극물인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넣은 것이었다. 사건 일주일 사이 존슨앤드존슨 시장점유율은 35%에서 7%로 추락했다.

하지만 존슨앤드존슨은 사건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사건 조사 결과 등을 선제적으로 공개했다. 또 제품 광고를 전면 중단하고, 타이레놀 캡슐 복용을 중단해 달라고 당부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시카고 지역 타이레놀 수거만 권고했음에도 미국 전역에서 제품 환수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독극물이 든 75개 타이레놀이 추가로 발견·수거됐다. 사태가 진정되자 제품에 이물질을 넣을 수 없는 포장법을 개발했다. 신속하고 양심적인 대응으로 존슨앤드존슨 이미지와 신뢰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시장점유율은 사건 1년 만에 35%까지 올라갔다.

지난 3월 한 여성시민단체에서 ‘릴리안‘을 비롯한 국내 유통 생리대 11종에서 인체 유해물질이 나왔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릴리안 등 국산 생리대를 사용하다 신체 이상증상을 겪었다는 소비자 주장이 잇달았다. 릴리안뿐 아니라 유한킴벌리 ‘화이트’ 부작용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릴리안을 만든 깨끗한나라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그제야 사과와 함께 제품 생산 중단·환불에 나섰다. 생리대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유한킴벌리는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다. 자사 제품이 인체 유해성 의심을 받았지만 모른 척하기에 바빴다. 이달 초 시민단체 실험에 유한킴벌리 제품이 포함된 것이 확인됐지만 여전히 사과는 없다.

기업 위기는 뜻하지 않은 순간에 의도치 않은 이유로 발생하곤 한다. 문제는 그 이후다. 아쉽게도 존슨앤드존슨같이 적절한 대응에 나서는 국내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위기가 발생하면 쉬쉬하거나 축소하는 데 골몰한다. 사태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그 사이 기업 신뢰는 추락하고, 소비자 마음에서 멀어진다. 이번 생리대 사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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