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46] 사냥이 곧 전투인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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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 칼럼니스트
입력 2017-09-1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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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사냥은 유목민의 생존 수단

[사진 = 초원의 몽골 가젤]

유목과 사냥, 이 두 가지는 유목민의 생존 수단이다. 유목민은 대부분의 생애를 말위에서 보내면서 유목과 사냥으로 생활을 이어간다. 그 가운데 사냥은 유목민에게 식량과 모피를 제공해주는 경제 활동의 하나다. 몽골족은 몽골초원으로 진입하기 전에 동쪽의 흥안령(興安嶺)일대의 삼림지역에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당시에는 반목반렵(半牧半獵)으로 살아갔지만 목축보다는 사냥이 더욱 확실한 생활 수단이었을 것이다.
 

[사진 = 초원의 타르박]

사슴이나 노루, 토끼, 타르박(초원에 굴을 파고 드나들면서 사는 오소리 정도 크기의 날렵한 동물) 등 온순한 동물에 대한 사냥은 요령과 기동력만 갖추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표범이나 늑대, 곰, 독수리와 같은 사나운 짐승을 그 대상물로 할 때 사냥은 그 자체가 전투나 마찬가지가 된다. 맹수를 제압할 만한 담력과 전투력을 갖추지 않으면 오히려 자신이 맹수의 희생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대규모 사냥은 군사훈련이나 마찬가지
그래서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사냥은 그 자체가 군사훈련이나 마찬가지다. 대규모 사냥은 단순히 맹수를 제압할 만한 전투력과 기량만 갖췄다고 해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협동심과 각 상황에 알맞은 전술 전략이 뒤따라야 많은 노획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모의 전투와 같은 성격을 띠게 된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매년 겪었던 정기적인 모의 전투 훈련에 대한 여러 가지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칭기스칸 군대의 사냥은 현대 군에서 실시하는 연대전술훈련인 RCT(Regimental Combat Team)나 대대전술훈련인 ATT(Army Training Test)와 비슷한 성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칭기스칸의 푸른 군대는 바로 이 사냥을 통해 군사훈련을 생활화하면서 최강의 군대로 태어나는 바탕을 닦았다.

▶ 헨티 지역 늑대사냥에 동참
몽골 중부의 헨티 아이막!(우리의 道에 해당하는 행정구역) 과거 몽골족의 본거지였던 지역이다. 테무진이 태어난 다달솜도 바로 이 헨티 아이막에 속해 있다. 이 지역에는 늑대, 노루, 차강제르, 순록, 숫 사슴 등 여러 종류의 초식동물과 육식동물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일부지역에는 사향노루와 반달곰도 서식하고 있다. 그래서 사냥터로서는 아주 적격인 곳이다.
 

[사진 = 올고이트산(헨티 아이막)]

넓은 초원을 둘러싼 이 지역 올고이트산에 7월의 소나기가 한차례 쏟아진 뒤 말을 탄 청년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근처 초원에서 양을 물어간 늑대를 사냥하기 위해 모여든 동네 사람들이다. 이 헨티 지역에서 1박 2일의 일정으로 진행되는 늑대사냥에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 사냥 팀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 원래는 사냥대상물이 아니었으나...
고대 몽골에서 늑대는 사냥의 대상물이 아니었다. 이는 한 때 몽골고원을 장악했던 유목민 가운데 돌궐족(突厥族)이 늑대를 자신들의 조상으로 생각하고 이를 자신들의 토템으로 삼은 데 이어, 이후 나타난 몽골족도 자신들이 푸른 이리와 흰 사슴 사이에서 생겨난 종족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늑대에 대한 사냥은 피해왔다.

그러나 늑대가 가축을 공격하며 유목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일이 반복되자 늑대를 보면 그냥 두지 않는 관습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몽골의 목축에 큰 해를 끼치는 늑대는 주로 초원 삼림지대에 서식한다. 늑대들은 타르박이나 차강제르를 먹고살지만 자주 초원의 양떼들도 노린다. 몇 마리의 늑대가 하루 밤에 수 백 마리의 양들을 교살할 정도로 유목민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주로 늑대의 교미기가 시작되는 10월이 되면 유목민들은 본격적으로 늑대 사냥에 나선다.
 

[사진 = 초원의 사냥꾼]

그때는 말을 타고 가면서 주로 막대기 끝에 갈고리를 달아 늑대를 낚아채는 방법을 사용한다. 통상 교미기가 되면 늑대 암컷 한 마리에 10마리 이상의 수컷이 뒤따라 다닌다. 그 가운데 한 마리를 갈고리로 낚아채도 수컷들은 경쟁자가 사라졌다고 생각할 뿐 사냥꾼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암컷을 잡거나 죽일 경우 수컷이 집단으로 덤벼들기 때문에 이점을 감안해 사냥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늑대는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은 공격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 소규모 사냥 '앙' 이 일반적
사냥이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원나라 때까지 자주 있어 왔으나 청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대규모 사냥은 구경하기 어려워졌고 대신 많게는 수십 명 적게는 열 명 미만의 인원이 참여하는 ‘앙’ 이라고 부르는 소규모 사냥이 일반적으로 행해졌다.

이번 사냥에 참여한 인원은 모두 20명으로 두 명은 전문사냥꾼이고 나머지 열여덟 명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 동네 청년들이었다. 두 명의 전문사냥꾼은 수 십 년간 사냥으로 생업을 이어왔던 노인이었다.

▶ 인원배치․몰이방법 사전 지시

[사진 = 사냥준비]

한 차례 소나기가 여름 초원의 열기를 식힌 뒤 물러가자 근처 동굴 속에서 잠시 피해 있던 사냥꾼들은 사냥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초원에서 시작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길게 이어져 있는 올고이트산은 군데군데 숲을 이룬 곳이 있기는 하지만 산 정상까지 대부분 키 낮은 풀들로 덮여진 초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차례 내린 소나기가 그 초원의 녹색 빛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있었다.

전문 사냥꾼인 나착도르지 노인이 청년들에게 산의 지형을 설명하고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몰이를 할 것인지를 지시한다.
 

[사진 = 산 정상의 엽사]

그리고 두 명의 엽사(獵師)에게 자리를 잡고 대기할 장소를 일러준다. 지시를 받은 청년들은 산 아래쪽으로 이동하고 엽사 두 명은 산의 위쪽으로 올라간다.

▶ 소리도 냄새도 금기

[사진 = 사냥꾼 늑대 몰이]

사냥은 산의 아래쪽에서 말을 탄 청년들이 늑대를 찾아 능선을 따라 몰아 오고 산 위로 도망가는 늑대를 기다리고 있던 엽사가 총을 쏘아 잡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비록 사냥에 쓰이는 도구가 활이나 칼 대신 총으로 바뀌고 몰이꾼의 숫자도 적지만 이러한 방식은 몽골인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사냥 방법이었다.

산 아래쪽에서 늑대를 몰아 산의 위까지 몰이꾼이 당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남짓, 그 동안 위에서는 침묵을 지키며 기다려야 한다. 사냥작전이 이루어지는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아야 하고 특별한 냄새도 풍기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몰이꾼이 나타날 때까지 음식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는 일이 금지됐고 연락을 위해 사용하는 무전기도 꺼두어야 한다.

▶ 산등성이로 사라진 늑대

[사진 = 초원호수의 오리떼]

한 동안 산 전체에 정적이 감돈다. 조용한 산중에 갑자기 큰 새가 한 마리 하늘로 날아오른다. 매 치고는 크다는 생각을 하고 살펴봤더니 매가 아니라 시체를 쪼아 먹는 타스라는 새였다. 평소 같으면 총으로 쏘아 잡으려고 시도를 해보겠지만 늑대 몰이가 계속되는 중이라 능선을 타고 날아가는 것을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멀리 산등성이 위로 몰이꾼들이 점처럼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대기지점까지 빠른 속도로 이동해 왔다. 그러나 움직이는 동물은 눈에 잡히지 않았다. 늑대를 찾아내는 데 실패한 것이다. 첫 번째 몰이에 실패한 사냥꾼들은 일단 산 아래로 내려와 맞은 편 산에서 같은 방법으로 늑대몰이를 시도했다. 두 번째 몰이에서 몰이꾼이 산의 중간 지점에 왔을 때 갑자기 숲 속에서 뛰쳐나와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동물이 눈에 잡혔다. 개처럼 보이는 동물, 바로 늑대였다. 늑대가 나타나자마자 몰이꾼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고함소리가 온 산을 진동한다.
 

[사진 = 달아나는 늑대]

늑대가 달아나려는 길목을 미리 차단해 당초 계획했던 곳으로 몰아가기 위해 말을 탄 몰이꾼들이 재빠르게 움직인다. 능선의 중앙지점을 타고 달리던 늑대가 갑자기 능선 위쪽으로 방향을 바꿔 달아나기 시작한다. 위쪽 능선을 차단하며 아래쪽으로 몰아넣으려고 시도해 보지만 어느새 늑대는 산등성이를 넘어 뒤편 능선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걸려든 늑대가 영악하기도 했지만 몰이꾼의 숫자가 적었던 것도 늑대를 놓친 원인이었다.

두 차례의 사냥시도가 끝나자 하루해가 어느덧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 늑대는 잡지 못했으나 사냥이해 도움

[사진 = 초원의 늑대]

다음날 시도된 사냥에서도 늑대를 잡는데 실패했다.
아마 전날 주변을 소란스럽게 만든 것이 늑대를 놀라게 해 깊게 숨도록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20명 남짓의 인원으로는 늑대 몰이를 효과적으로 할 수 없었던 것도 그 원인중의 하나인 것 같았다.

그래도 사냥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몽골인들에게 생활화돼 있었던 과거 대규모 사냥의 일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소득이었다. 사냥을 하는 데는 용맹성과 기동력 그리고 전투력 뿐 아니라 상황을 정확히 읽어 내는 판단력과 함께 무엇보다 서로간의 손발이 제대로 맞는 협동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냥을 지켜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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