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의 차 한 잔] 명상의 달인이 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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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8-0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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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니스트(문학박사)

함백산 적멸보궁 정선군 정암사의 수마노탑 [사진=하도겸 박사 제공]


명상이나 참선에서 "자기를 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방법을 모르겠다는 분이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해 봤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한 분이 어떤 말을 했는데, 그 말에 대해서 다른 한 분이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옳거니 하고 무슨 생각하시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저 분이 제게 왜 그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혼란스러워 합니다. ”가지 말고 여기 계속 있으라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가라는 것인지 분간이 안가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지금 스스로를 보고 계신거죠?”라고 물으니, “스스로를 보고 있기에 대답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대답합니다. 맞나요?

'나를 본다'는 것은 갈팡질팡하며 혼란스러워 하는 자기를 보는 것도 포함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그냥 본다고 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내 마음이 왜 혼란스러운지를 잘 봐야 합니다. 왜 혼란스러운지 모르겠다면, 왜 혼란스럽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됐는지를 보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이뭣꼬” 요즘 말로 ‘뭥미’로 보는 것입니다.

계속 보게 되면,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지 내가 가고 싶지 않은 이유와 내가 가고 싶은 이유가 보여집니다. 그 두 가지 이유들의 작고 세밀한 내 마음 속의 충돌을 봅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각각 시비나 분별이나 망상이라고 합니다. 흙탕물 같은 그것들은 가만이 두면 가라앉습니다. 그렇게 가라앉히고 잘 보면, 그런 망상들이 가라앉은 바닥에 반드시 ‘욕망’이 자리를 잡고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욕망에 좌우되고 집착을 하고 있기에 갈팡질팡하며 무슨 말인지에 대해 바른 판단이 안됩니다. 상대의 의도를 모르고 또 왜 그러는지 모르게 되니 더욱 고통스러울 따름입니다.

자기, 즉 나를 본다는 것은 남의 말이나 행동을 보는 것도 아니며, 남탓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수행한다고 하면서 온통 말은 ‘남’의 말이나 탓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인게 아쉽습니다.

정말 나를 본다면, 내가 왜 그렇게 듣거나 믿거나 하고 싶은지를 봅니다. 나아가, 왜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인지를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사실인지 그냥 희망이나 기대속에 담긴 욕망인지를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반대로 하고 싶지 않은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수마노탑에서 바라본 정암사 전경 [사진=하도겸 박사 제공]


지금 ‘나’를 보고 계신가요? 너무 어렵나요? 직접 만나면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말로 전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 친구 좀 이상한 것 같아!”라고 한다면 그건 저 친구의 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삶에서 실천하는 수행자라서 그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남탓하지 말고 나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까닭에 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지 본인에게 구체적인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에서 그런 노력을 게을리 합니다. 자기가 옳기에 그냥 그렇게 대충 이해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속인 것에 불과합니다. 쉽게 말하면 당한 것입니다. 깨어있지 못한 것입니다. 자만심이거나 열등감일 수도 있습니다.

나를 보는 것은 거울에 비친 자화상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단지 거울을 보는게 아니라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는 것이 그 시작입니다. 눈꼽이 꼈는지 머리 스타일은 괜찮은지 보는 것입니다. 그게 끝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문제는 그런 외면적인 모습이 아니라 내면적인 마음을 보는데 있습니다.

그 친구가 이상하다고 했으니, 내 마음의 거울에 그 이유를 비춰봐야 합니다. 그의 얼굴이 이상하고, 말투가 이상하고 가끔 엉뚱한 말을 해서 이상한가요? 그가 비상식적인가 황당하다구요? 하지만 정말 그런가요? 친구들도 그렇게 본다구요? 남탓일 뿐입니다. 부화뇌동하면서 흔들리거나 현혹되지 말고 정말 스스로의 마음만 보세요. 그러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왜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하는지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납니다. 이것이 무지나 무명에서 깨어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욕망과 집착은 무엇인가요?

얼굴이 이상하다고 여기는 것은 왜곡된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따른 잘못일 따름입니다. 말투가 이상하다는 것은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의 조급함입니다. 둘 다 어쩌면 여유가 없는 나의 열등감이며 과거의 상처 등에 의한 왜곡된 자아상을 아직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잘못입니다. 비상식적이라고 한다면 내게 그가 함부러 하거나 제대로 안해서 ‘화’가 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넉넉하지 않기에 생긴 일입니다. 이 세상에 상식, 기본, 보통, 평범이라는 말은 모두 강요일 따름입니다. 세상에 정해진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자긴 화내지 않고 있고 말도 안된다며 비웃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은 이들과는 말도 썩지 말아야 합니다. 받아들임이 없고 오히려 칼을 겨눌 정도로 아픈 사람들입니다. 시절인연이 아직, 아니 전혀 도래하지 않은 불쌍한 분들입니다. 무슨 말을 하든 부정하거나 튕겨내는 사람입니다.

결국 '이상하다'는 말 자체가 주관적이며 그 말은 상대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초라한 아니 실제로는 정말 이상한 자신을 나타내는 말일 따름입니다. 그런데도 이상하다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면박을 주고 비방·비난까지 한다면 당신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불쌍한 환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항상 스스로를 바라보세요. 그리고 스스로를 속이지 마세요. 그게 성철큰스님이 말한 불기자심(不欺自心)입니다. 자기 마음 즉 스스로를 속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를 보는 방법은 곧 자신을 속이지 않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명상은 곧 삶이고 생활입니다. 명상의 달인은 생활의 달인을 말하며, 그 생활이란 바로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칼럼은 rostraw.com에 게재된 것을 수정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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