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가 이유를 묻자 “올 들어 회사 분위기가 흉흉하다. 잘리지 않으려면 차라리 알리지 않는 게 낫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35세 전후 또래 동료들끼리 ‘네이쥐안(內卷·내부 출혈경쟁)’이 너무 심해 불안하다며 신혼여행도 기회를 봐서 몰래 다녀올 예정이라고 했다.
A씨는 아이를 낳아야 할지도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그러는구나’ 싶었는데, A씨의 답변은 기자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임신을 해야 잘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A씨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중국 고용법에 따르면 중국 기업에서 직원을 해고하면 N+1(월평균 임금*근무연수+1개월치 임금)을 보상금으로 지급하지만 임신부를 해고하면 2N(월평균 임금*근무연수*2배)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물론 여기에 임신·출산·육아휴직 기간 등 이른바 싼치(三期) 월급까지 모두 배상금으로 지불할 수 있기 때문에 임신부는 일반적으로 해고하지 않는다는 것.
실제 중국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A씨처럼 회사의 ‘전략적 해고’에 ‘전략적 임신’으로 대응한다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잔뜩 올라온다. 물론 ‘전략적 임신’을 놓고 “아이가 해고의 위기를 벗어날 도구나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이는 여성에 대한 기업의 편견을 심화하고, 여성의 진입 장벽을 더욱 높일 것이란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 극도의 저비용·고효율을 추구하는 중국 빅테크들에는 직원을 해고하는 게 흔한 일이 됐다. 특히 대졸자 취업난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빅테크에 보조금 같은 우대혜택을 제공하면서 대졸자 채용을 늘리라고 촉구하니 기업들은 젊고 의욕 넘치는 대졸자를 앞다퉈 채용하고 대신 고연봉을 받는 중년 직원을 자른다. 젊은 인재들은 최신 기술 습득도 빠르고 ‘996 문화(오전 9시~오후 9시, 주6일 근무)’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어 선호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중국 빅테크 직원 B씨(33)는 “대졸자 채용을 늘리면 그만큼 기존 직원을 내보낼 수밖에 없다”며 “성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직원을 자른다”고 말했다. 대졸자 채용을 늘려도 빅테크 전체 직원 수는 계속 줄어드는 이유다.
해고된 직원 대부분은 35세 이상 중년, 특히 여성은 해고에 더 취약하다. A씨 나이도 35세. 원래는 중국 공무원 채용 연령 제한 상한선인데 이제는 일반 기업도 35세 이상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채용을 기피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해고된 35세 이상 중년들은 창업, 프리랜서 아니면 디디추싱(중국판 우버) 기사나 음식 배달원 등으로 내몰린다. 중국에선 이를 ‘35세의 저주’라고 부른다.
중국 경제 위기 속에서 빅테크들의 저비용·고효율 추구는 전 세계적으로 '딥시크 신드롬'을 일으키며 인공지능(AI) 기술력의 향상을 보여줬지만 한편으론 '내부 출혈경쟁' ‘35세 중년의 저주’ ‘전략적 임신’이라는 씁쓸한 현실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경쟁은 성공의 밑거름' '임신은 인생의 축복' '35세는 인생의 황금기' 같은 말은 중국의 수많은 A씨에겐 그저 공허한 구호가 돼 버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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