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거래의 기술, 전쟁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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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밌게 본 드라마가 하나 있다. '협상의 기술'이다. 대기업 M&A(인수·합병) 전문가인 주인공 윤주노는 상대의 심리를 꿰뚫고 전략을 구사하는 냉철한 협상의 달인으로 그려진다. 그가 단순한 가격 조정이 아닌, 새로 판을 짜서 원하는 방향으로 협상을 이끌어 나갈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전쟁이 무기로 싸운다면, M&A는 계약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감정적이면 전쟁에서 져요”라는 극 중 대사는 그야말로 총성만 없을 뿐 전쟁터나 다름없는 치열한 협상전을 정확히 표현했다.

‘협상의 달인’하면 떠오르는 인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그의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은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목표가 50이면 처음에 100을 요구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척 80, 다시 50으로 낮춰 상대로 하여금 이겼다고 믿게 만드는 '앵커링 효과', 거친 말을 쏟아내 자신을 미치광이처럼 보이도록 해 상대가 겁을 먹도록 하고 그 틈새를 파고들어 원하는 바를 관철하는 ‘미치광이 전략’, 트럼프가 즐겨 사용하는 거래의 기술이다.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에 중국은 ‘전쟁의 기술’로 맞선다. 동양 병법서의 고전으로 꼽히는 ‘손자병법(The Art of War)’의 나라, 그게 중국이다.

“중국에는 <손자병법>이라는 유명한 병법서가 있다. 첫 구절은 ‘전쟁이란 나라의 생사와 존망을 결정짓는 중대한 일이니, 잘 살펴보고 시작해야 한다’는 말로 시작한다. 전쟁은 되도록 하지 않고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1월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 연설에서 한 말이다.

실제 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상으로 여긴다. 손자병법을 인용해 미·중 관세전쟁을 표현한다면 '살적일천, 자손팔백(殺敵一千 自損八百, 적을 천명 죽이기 위해 아군도 팔백명이 희생된다)'이다. 즉, 관세전쟁은 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싸울 수밖에 없다면 잘 싸워야 한다는 것도 손자병법의 가르침이다.

실제로 트럼프 1기를 경험한 중국은 미국과 잘 싸우기 위해 충분히 대비를 해놓은 듯하다. 손자병법에 따르면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다. 자신과 상대방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손자병법은 일관성 없이 상대방에 휘둘리는 것도 경계한다. ‘선전자, 치인이불치어인(善戰者, 致人而不致於人)’이다. 전쟁을 잘하는 장수는 자신의 의도대로 상대를 움직여 주도권을 잡지, 상대에게 끌려다니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 중국은 무역전쟁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수출 주도형 경제를 소비 주도형으로 전환하고, 기술개발 혁신에 총력을 기울이고, 시장을 개방하는 등 경제 기초체력을 키우며 지구전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2기 관세전쟁 발발 후 첫 미·중 고위급 무역회담이 지난 주말 사이에 열렸다. 중국도, 미국도 아닌, 스위스 제네바에서다. 시 주석이 손자병법을 이야기했던 바로 그곳이다. 장소 선정부터 팽팽한 기싸움을 벌인 양국 대표단은 나라의 생사와 존망을 결정짓는 관세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치열한 협상을 벌였을 터다.

우리도 가만히 앉아서 미·중 양국이 극적으로 타협하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선전자, 치인이불치어인'처럼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면밀히 분석해 선제적 통상외교와 기업들의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정치권은 거래의 기술도 전쟁의 기술도 아닌, 정치 공작 기술에만 매몰돼 있는 듯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미중 국기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중 국기 [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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