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용인과 서남권을 축으로 대규모 반도체 생산벨트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부 지원은 생색내기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사활이 걸린 첨단산업 프로젝트지만 직간접 재정 지원은 전체 투자 규모 대비 1%에도 못 미친다. 당장 내년 조기 가동을 앞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인프라 예산 부족으로 초반 차질마저 우려되는 실정이다.
2일 관련 업계와 주무 부처 등에 따르면 정부가 편성한 내년 반도체 예산 3조4000억원 가운데 1조5000억원은 서남권 클러스터 통합 재정 지원에 쓰인다. 올해부터 향후 4년간 총 6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광주 군공항 이전에도 3000억원이 별도로 배정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서남권에 800조원 규모 투자를 공언했다. 기업이 1조원을 투자할 때 정부 지원은 75억원꼴에 불과하다.
기존 생산 거점인 용인 클러스터 사정은 더 빠듯하다. SK하이닉스는 용인에만 600조원을 투입하며 네 번째 팹 완공 시점을 당초 2045년에서 2033년으로 12년 앞당길 예정이다. 삼성전자도 용인 국가산단에 360조원을 들이는 등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예산안에 담긴 용인·평택 팹 조기 가동 기반시설 예산은 1000억원에 그친다. 서남권에 대한 한 해 지원액 대비 15분의 1 수준이다.
업계에 따르면 용인 클러스터의 송전선로·변전소 사업비만 2조4000억원, 통합 용수공급 사업비는 2조2000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반도체특별법 시행령을 통해 기반시설 비용 중 50~100%를 국가와 지자체가 부담하도록 명시했지만 첫 예산부터 기존 거점에 배정된 몫은 미미한 수준이다.
지원 예산 자체가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인프라 구축에 드는 막대한 비용 부담이 고스란히 기업으로 쏠린다. 용인 클러스터 송전선로·변전소 사업비 2조4000억원 가운데 70%인 1조7000억원은 기업이 직접 부담하기로 했다. 서남권 역시 전남 지역 태양광·해상풍력과 영광 한빛원전 전력을 광주까지 보낼 송전망을 새로 깔아야 하지만 구체적인 재원 계획조차 나오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반도체 투자에 대한 중요성을 연일 강조한 만큼 내년 예산안에선 획기적인 지원책이 나올 것으로 내심 기대했다"면서 "하지만 정작 예산 규모가 너무 미미해 사실상 기업더러 알아서 투자하고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격"이라고 토로했다.
정부가 공언한 인프라 사업조차 행정·인허가 단계에서 제때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용인으로 동해안 전력을 끌어올 동서울변전소 초고압직류송전(HVDC) 변환소 증설은 주민 반대로 2년 넘게 답보 상태다. 15차례 협의에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3일 주민 협의체 회의를 재차 진행할 예정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범정부 TF나 전담 협의체까지 가동한 상황이지만 막상 현장에선 지자체 인허가나 주민 반대에 막혀 번번이 제자리걸음"이라며 "제 아무리 속도를 높여 팹 건물을 올려도 전력과 용수 부족으로 라인을 돌리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재정 지원뿐 아니라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 논의도 표류 중이다.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부 등 관계 부처 간 입장 차로 올해 1월 반도체특별법 제정 당시 빠진 뒤 10개월째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박건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하루를 늦추면 10년 격차가 벌어지는 경쟁을 하고 있다"며 "반도체 업계가 숙원으로 생각하는 것은 핵심 R&D 인력에 대한 근로시간 특례인 만큼 연내 실현되기를 갈망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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