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인터뷰②] "시공사 선정보다 설계 먼저"…건설사에 주도권 넘기지 않은 소규모 정비사업 조합 '커먼즈 종암'의 비결

  • HUG 기금 융자로 초기 사업비 확보…시공사 선정 전 사업 방향 구체화

  • 기존 조합원 90% 사업 참여…사회적협동조합 설립해 입주 후 운영도 준비

지난해 9월 착공 시작한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위치한 소규모 정비사업 커먼즈 종암의 공사 현장 사진이은별 기자
지난해 9월 착공 시작한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위치한 소규모 정비사업 '커먼즈 종암'의 공사 현장 [사진=이은별 기자]
건설사가 제시하는 브랜드와 설계에 맞추는 대신 주민들이 직접 사업의 방향을 결정한 정비사업이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서 추진되고 있다. 가로주택정비사업 '커먼즈 종암'은 공공기금 융자를 기반으로 초기 사업비를 마련하고, 시공사 선정에 앞서 조합이 사업 구상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지난 1일 서울 성북구 개운산 아래 사무실에서 만난 이원형 커먼즈 종암 조합장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집, 우리가 원하는 집을 주체적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사업의 출발점을 설명했다.
 
커먼즈 종암은 성북구 종암동 81-188번지 일대에 130가구 규모로 조성되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이다. 지난해 9월 착공했으며 2028년 6월 준공을 목표로 보미건설이 시공하고 있다.
 
"브랜드보다 중요한 건 사업의 취지"…시공사 선정도 뒤로
이 조합장은 사업 초기부터 자체 브랜드를 고집했던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여러 건설사와 협의하며 기존 브랜드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그 과정에서 조합이 구상한 사업의 방향을 상당 부분 수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는 "브랜드도 서사가 중요하다"며 "우리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이야기를 끝까지 살리는 것이 오히려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는 전략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건설사 브랜드에 의존하기보다 주민들이 오랫동안 구상해 온 사업의 취지와 정체성을 유지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조합이 직접 '커먼즈'라는 이름을 내세우게 된 배경이다.
 
이러한 선택이 가능했던 데에는 초기 사업비 조달 방식이 영향을 미쳤다. 일반적으로 정비사업조합은 설립 이후 운영비와 설계비 등 초기 자금이 필요하다. 자체 자금이 충분하지 않으면 시공사를 조기에 선정해 사업비를 조달하는 방식에 의존하게 된다.
 
이 조합장은 "정비사업은 초기 자금이 부족하다 보니 공사 자체보다 조합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공사를 서둘러 선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커먼즈 종암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소규모주택정비사업 관련 기금 융자를 활용했다. 공공기금으로 초기 사업비를 마련하면서 시공사에 대한 자금 의존도를 낮추고, 조합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이 조합장은 "일반적인 정비사업에서는 시공사 선정이 절차의 앞쪽에 있지만, 우리는 그 순서를 뒤로 미뤘다"고 말했다.
 
실제로 조합은 시공사를 선정하기에 앞서 건축심의와 설계 등 정비사업 절차를 진행하며 사업 구상을 구체화했다. 이후 건설사들과 협의하는 과정에서도 기존 설계 방향을 유지하는 데 무게를 뒀다.
 
이 조합장은 공공기금 융자가 주민 주도형 사업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조건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초기 자금의 출처가 시공사였다면 조합이 기존 사업 구상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공공의 금융지원이 민간 조합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이 끝나도 이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원주민 중심 정비사업
커먼즈 종암은 기존 주민들의 참여 비율도 높은 편이다. 조합 측에 따르면 기존 조합원 32명 가운데 3명이 현금청산을 선택했고, 현재 29명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기존 조합원 기준 약 90%가 사업에 남아 있는 셈이다.
 
이곳은 오랫동안 단독주택이 밀집했던 주거지역이다. 조합원 중에는 종암동에서 20~40년간 거주한 주민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조합 측은 기존 주민들이 정비사업 이후에도 같은 지역에서 생활하기를 희망한다는 점이 사업 방향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 조합장은 "우리가 원주민이었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계획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을 마친 뒤 떠나는 것이 아니라 완공된 주택에서 계속 살아갈 주민들이기 때문에 당장의 사업 수익뿐 아니라 향후 주거환경과 관리 방식까지 고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비사업 과정에서 기존 주민들의 이탈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다만 현재 조합에 참여하는 주민 비율이 준공 이후 실제 재정착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를 지은 뒤가 더 중요"…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공동주택
커먼즈 종암의 주민 주도형 사업은 아파트 준공 이후에도 이어질 예정이다. 조합은 별도로 '개운산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정비사업이 끝나면 청산하는 정비사업조합과 달리, 사회적협동조합은 입주 이후에도 주민 활동과 공동시설 운영을 이어가는 역할을 맡을 계획이다.
 
이 조합장은 기존 아파트 관리 방식과 달리 입주민들이 단지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체계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주민들이 직접 운영에 참여하면 아파트를 단순한 공동주택이 아니라 자신의 집처럼 더욱 적극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사회적협동조합은 기존 정비사업조합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향후 일반분양으로 입주하는 주민들도 참여하도록 해 주민 공동이용시설과 단지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을 함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조합장은 이러한 운영 방식이 커먼즈 종암만의 지속적인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건설사가 아파트를 완공하는 것으로 브랜드의 역할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실제로 생활하는 과정에서 주거 경험과 공동체의 가치가 축적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런 사업을 커먼즈 종암뿐만 아니라 더 확장해 커먼즈 2,3호를 만들고 싶다”며 주민 주도형 소규모 정비사업인 커먼즈 종암의 실험을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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