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 홀로 앉아 있는 여자, 그의 이름은 혜선(김민하)이다. 어딘가 들떠 보이는 듯, 어색한 모습의 그녀는 중국 땅에서 방금 겨우 한국의 영토 안으로 들어온 탈북민이다.
북한에서 홀로 아픈 어머니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중국으로 탈북한 혜선(김민하)은 중국에서 살다 한국으로 망명했다. 국정원의 심문을 거쳐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 입소하지만 한국의 문화를 익혀 나가기 바쁘다. 말투를 바꾸고, 영어를 배우고,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은행 업무를 처리하는 일 등은 낯설고 관계를 맺는 방식도 익숙하지 않다.
북한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자유와 풍요가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혜선에게 한국은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세상이라기보다 하나부터 열까지 새롭게 익혀야 하는 곳에 가깝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그에게는 낯선 규칙이고, 다른 이들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렇다고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가지기도 어렵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간호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혜선에게 공부는 단순히 직업을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자, 낯선 사회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만들어가기 위한 선택이다. 그러나 미래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현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일과 생계를 꾸리는 일,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일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혜선에게 하루하루는 결코 가볍지 않다.
혜선이 감당해야 할 어려움은 경제적인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직장에서 성추행을 겪으며 자신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고 북한식 억양이 드러날 때면 자신의 출신을 의식하게 된다. 어디에서 왔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 혜선은 자신이 이 사회의 평범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었지만 그가 넘어야 할 경계는 한국에 도착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물리적인 국경은 넘었어도 사람들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경계는 여전히 그를 따라다닌다.
서울의 거리에는 먹을 것이 넘쳐나고 사람들은 저마다 원하는 것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혜선이 북한을 떠나며 꿈꿨던 자유와 풍요가 눈앞에 있지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고 해서 모든 선택이 그에게 열려있는 것은 아니었다. 낯선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혜선에게 자유는 누리는 것이라기보다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현실이었다.
그러던 중 혜선에 북한에 남아 있던 어머니의 부고가 전해지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은 혜선에게 큰 상실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혜선은 다시 일을 나가고 하루하루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버텨낸다. 혜선은 상실과 절망 앞에서 흔들리고 주저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선택한 또 다른 삶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그저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영화 말미 혜선은 간호사가 되기 위한 길을 이어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한 환자의 혈압을 재던 중 그의 말투를 들은 환자가 고향을 묻고, 북한 출신이라는 답에 자신의 어머니도 함경도 사람이었다며 말을 건넨다. 낯선 이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기억과 연결되고, 짧은 순간이지만 혜선은 이곳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가진 않을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마주한다.
혜선이 바라는 것은 대단한 성공이나 특별한 대우가 아니다. 공부하고 일하며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고, 자신이 살아가는 곳에서 낯선 사람으로만 남지 않는 것. 그 소박한 바람은 어쩌면 한국에서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소망이다.
자유를 찾아 한국에 온 혜선은 이곳에서 또 다른 삶의 문턱을 마주하고 있다.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면, 그 선택을 자신의 삶으로 이어갈 수 있는 조건 역시 중요하다. 낯선 사회에 적응하는 일은 혜선의 몫이지만, 그가 겪는 모든 어려움까지 개인의 노력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자유(自由)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혹은 ‘인간이 지향해야 할 최상의 가치’라고 명시돼있다.
사람은 종종 현실적으로 허락된 자유 안에서도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어쩌면 한 사람이 이곳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이 사회의 규칙에 익숙해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다름을 감추지 않아도, 지나온 삶을 설명하지 않아도 나 자체로 살아갈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의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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