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을 증시에서 신속하게 퇴출시키기 위한 금융당국의 상장폐지 제도 강화가 시행 석 달 만에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한국거래소는 결국 시가총액 미달 기업에 대한 후속 상장폐지 절차를 유예했다. 시장의 신뢰를 높이겠다며 추진한 제도가 오히려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불확실성을 안긴 셈이다. 이번 사태는 상장폐지 기준을 얼마나 엄격하게 만드느냐 못지않게 이를 얼마나 합리적이고 일관되게 적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상장폐지 요건 강화의 필요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국내 증시에서는 실적 부진과 재무구조 악화에도 상장 지위를 유지하는 한계기업이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이들 기업이 시장에 남아 있는 동안 투자자 피해가 누적되고 자본시장의 신뢰도 떨어진다. 금융당국이 부실기업의 신속한 퇴출을 추진한 것도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퇴출 기준이 엄격하다고 해서 반드시 부실기업을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시가총액 기준이 대표적이다. 지난 2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주연테크와 케이엠제약이 제기한 상장폐지 결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법원은 시가총액 기준 자체의 정당성을 부정하기보다는 강화된 기준의 적용 시기와 회복 요건, 절차적 권리 보장 등을 문제 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내년 1월로 예정됐던 시가총액 기준 상향을 올해 7월로 앞당긴 조치도 쟁점이 됐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45거래일 연속'이라는 회복 요건이다. 강화된 규정에 따르면 시가총액 미달로 관리종목에 지정된 기업은 90거래일 안에 기준 시가총액을 45거래일 연속 충족해야 했다. 종전의 연속 10거래일과 누적 30거래일 기준보다 크게 강화된 것이다.
한 시장 관계자는 이 규정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시가총액 기준을 44거래일 연속 충족한 기업이 45일째 하루 기준에 미달하고, 이후 다시 44거래일 연속 기준을 충족했다가 마지막 90일째 또다시 기준을 밑돌았을 때 전체 90거래일 가운데 88거래일 동안 기준을 충족했지만 단 한 차례도 45거래일 연속 요건을 채우지 못해 상장폐지 대상이 될 수 있다. 전체 기간 중 97.8%를 기준 이상으로 유지했는데도 단 이틀의 주가 흐름이 기업의 퇴출 여부를 가를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 같은 규정이 만들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 일시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려 상장폐지를 피하는 편법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업의 회복 가능성까지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시가총액은 기업의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지만 시장 전체의 변동성과 수급에도 영향을 받는다. 기업의 재무구조나 영업 상황과 무관하게 주가가 일시적으로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사태가 더욱 아쉬운 이유는 그 부담이 결국 투자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거래소는 법원 결정에 따라 관리종목 지정은 유지하면서 후속 상장폐지 절차를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상장폐지가 결정돼 거래가 정지된 기업들에 대해서는 거래정지 조치를 유지하기로 했다. 같은 시가총액 기준을 적용받는 기업들 사이에서도 절차 진행 시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상장폐지는 단순히 부실기업 하나를 시장에서 내보내는 문제가 아니다. 해당 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들의 재산권과 직결된다. 부실기업을 지나치게 오래 방치하면 투자자 피해가 커지지만 퇴출 기준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도 투자자들은 피해를 볼 수 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마련한 제도라면 그 집행 과정에서도 투자자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상장폐지는 숫자로 성과를 평가하기 쉬운 정책이다. 몇 개 기업을 퇴출했는지, 얼마나 빨리 시장에서 정리했는지가 눈에 띄기 때문이다. 하지만 퇴출 기업 수가 늘었다고 반드시 시장이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퇴출돼야 할 기업이 남지 않도록 하면서도 남아야 할 기업이 잘못된 기준으로 밀려나지 않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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