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이 커질수록 높은 수익률만큼 중요해지는 것이 자산을 지키는 일이다. 실제 상담에서도 "무엇이 가장 많이 오를까요?"라는 질문 못지않게 "제 자산이 너무 한쪽에 치우쳐 있지 않나요?"라는 우려의 질문을 자주 접한다. 주식과 채권, 원화와 외화, 국내와 해외, 금융자산과 부동산 등 서로 다른 성격의 자산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관심이 금과 같은 실물자산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주식, 채권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 자산을 포트폴리오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묻는 고객이 많아졌다.
투자 방법도 다양해졌다. 하나은행의 '금모아 신탁'처럼 신탁을 통해 KRX금시장의 금현물을 거래하는 방법도 있다. KRX금시장의 매매차익은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에서 제외되고, 시장 내 매도 시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는 특징이 있다.
결국 주식이든 채권이든 금이든 좋은 자산의 기준은 고객마다 다르다. 중요한 것은 특정 자산이나 특정 시점에 자금을 집중하기보다 각 자산에 역할을 부여하고, 시장 상황과 자신의 재무 목표가 달라질 때 그 구조를 다시 점검하는 것이다. 투자는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둔 고객을 만나면 이러한 변화는 더욱 분명해진다. 과거에는 "은퇴할 때까지 얼마를 모아야 하나요?"가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은퇴 후 매달 얼마를 받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중요해지고 있다. 많이 가진 것과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자산이 많다고 해서 은퇴 이후의 생활이 안정적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부동산이나 장기 투자자산의 비중이 높다면 전체 자산 규모는 크더라도 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현금흐름이 부족할 수 있다.
따라서 예금이나 채권의 이자, 만기 자금, 연금, 배당 등 서로 다른 시점에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PB 입장에서는 고객이 다른 금융기관에 보유한 자산 현황도 파악하고 있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자산이 일정 규모 이상 형성되면 고객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로 향한다. 이때 상담의 질문도 달라진다. 단순히 "상속세가 얼마나 나올까요?"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녀에게 언제부터, 어떤 자산부터 이전하는 게 좋을지, 자녀에게 증여한 후 어느 정도의 자산이 남아 있어야 할지 등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상속과 증여는 세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너무 일찍 많은 자산을 이전하면 본인의 노후 자금이 부족해질 수 있고, 반대로 준비를 계속 미루면 원하는 방식으로 자산을 이전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일정 규모 이상의 자산관리는 결국 개인의 투자 문제를 넘어 가족 전체의 장기적인 재무 계획으로 확장된다.
요즘은 금융정보가 부족해서 투자하기 어려운 시대가 아니다. 누구나 주가와 환율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금융상품의 수익률과 특징도 쉽게 비교할 수 있다. 그런데 고액자산가들은 왜 여전히 PB를 찾을까.
결국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 자체보다 자신에게 맞는 판단이다. 수많은 정보 가운데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위험은 감수하고 어떤 위험은 피해야 하는지, 그리고 여러 선택지 가운데 어떤 것이 자신의 목표에 가장 적합한지를 함께 고민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때로는 새로운 상품을 추천하는 것보다 지금은 투자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필요한 조언일 수도 있다. 새로운 자산을 추가하기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자산의 균형을 다시 맞추는 것이 먼저일 때도 있다.
그래서 PB의 역할도 변하고 있다. 좋은 상품을 빠르게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객의 투자와 은퇴, 세금과 자산 이전까지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함께 고민하는 금융 파트너가 돼야 한다. 지금 주목받는 투자 대상 역시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자산관리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고객이 이루고 싶은 목표를 먼저 이해하고, 그 목표에 맞춰 자산의 방향을 정하는 것. 어쩌면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오히려 PB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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