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일본 감독 나카히라 코우(中平康)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나카히라는 1926년 1월 3일 도쿄 다키노가와(현 기타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서양화가 다카하시 도라노스케, 어머니는 바이올리니스트 슌이었고 외동딸이던 어머니의 성을 이어받아 '나카히라'가 됐다. 도쿄대 문학부 미학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한 뒤, 1948년 쇼치쿠 오후나촬영소의 조감독 공채에 1500대 8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이때 동기가 훗날 각자의 스타일로 이름을 남기는 스즈키 세이준, 마쓰야마 젠조, 사이토 부이치였다. 검은 베레모에 주머니투성이 작업복을 입고 온몸에 도구를 채운 채 촬영소를 뛰어다니던 그의 모습은 당시에도 눈에 띄었다고 한다. 다른 조감독들이 각본 공부에 매달릴 때 그는 혼자 편집 기술을 파고들었고, 베레모는 평생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1954년 제작을 재개한 닛카츠로 자리를 옮긴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이 이적은 닛카츠 감독 니시카와 가쓰미의 권유로 이뤄졌다고 알려져 있다. 배우 시시도 조는 2011년 한 토크쇼에서 "스즈키 세이준과 나카히라 코우, 사이토 부이치를 닛카츠로 데려온 건 니시카와였다"고 증언했다. 닛카츠에서 프로듀서 미즈노에 다키코가 재능을 알아보고 감독으로 기용했고, 나카히라는 1956년 두 작품을 잇달아 세상에 내놓았다. 실제로 먼저 촬영한 작품은 <노려진 남자>(狙われた男)였으나, 먼저 개봉한 작품은 <미친 과실>(狂った果実)이다. 그해 7월 개봉한 <미친 과실>이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으로 더 널리 알려진 이유다.
<미친 과실>의 원작자는 이시하라 신타로다. 신타로는 소설가로 출발해 훗날 네 차례 도쿄도지사를 지낸 인물로, 이 영화의 각본도 직접 썼다. 유부녀를 사이에 둔 형제의 갈등과 파국을 그린 이 영화에서, 신타로의 친동생인 이시하라 유지로가 극중 형 역할을 맡았다. 닛카츠가 영화화를 제안했을 때, 신타로는 유지로를 주연으로 세운다는 조건으로 이를 허락했다고 한다. 전후 혼란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방향을 잃고 방황하다 파멸에 이르는 청년들을 그린 이 작품은, 앞서 5월 개봉한 <태양의 계절>(太陽の季節)과 함께 '태양족'이라는 신조어를 시대의 아이콘으로 각인시켰다. '태양족'이라는 말 자체는 <태양의 계절>이 그해 1월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뒤 평론가 오야 소이치가 만든 조어였다.
촬영은 단 17일 만에 끝났고, 클라이맥스의 항공 촬영은 요미우리신문 헬기를 빌려 촬영 종료 전날에야 찍었다고 한다. 완성 후에는 영화윤리위원회가 두 장면의 삭제를 명령했고, 그해 8월 영화사 사장들이 '태양족 영화 제작 중단'을 선언하는 소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영화로 스타덤에 오른 이시하라 유지로는 이후 닛카츠 청춘·액션 영화의 얼굴이 됐다. 배우뿐 아니라 가수로도 활동해 '북의 여행자', '붉은 손수건', '밤안개여 오늘밤도 고마워', '긴자의 사랑 이야기' 등을 히트시키며 일본레코드대상을 네 차례 받았다. 1950~60년대는 그야말로 '유지로의 시대'였고, 나카히라는 <미친 과실>을 비롯해 그의 여러 작품에서 유지로를 기용했다. 이 영화에서 처음 함께 출연한 유지로와 기타하라 미에는 이후 닛카츠의 대표 콤비로 20편이 넘는 작품에 함께 출연했고, 1960년 실제 부부가 됐다.
나카히라는 이후에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작품을 쏟아냈다. 코미디 <우유배달부 프랑키>(牛乳屋フランキー, 1956), 미시마 유키오 원작의 <흔들리는 미덕>(美徳のよろめき, 1957), 이시하라 유지로·아시카와 이즈미가 출연한 일본-이집트(아랍연합공화국) 합작 <아랍의 폭풍>(アラブの嵐, 1961), 시시도 조 주연의 <위험한 일은 돈이 된다>(危いことなら銭になる, 1962), 하마다 미쓰오·요시나가 사유리 콤비가 주연한 <진흙투성이의 순정>(泥だらけの純情, 1963), 가가 마리코 주연의 <월요일의 유카>(月曜日のユカ, 1964)까지 다양했다. 이 가운데 <그 녀석과 나>(あいつと私, 1961)는 스키 사고로 다친 유지로의 복귀작으로, 그해 흥행 1위에 올라 그의 최대 흥행작으로 남았다.
<미친 과실>은 당시 프랑스에서 개봉된 몇 안 되는 일본 영화 중 하나였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1958년 『카이에 뒤 시네마』 83호에 실은 평론 「이토록 젊고, 일본인인」에서 이 영화를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를 능가하는 작품으로 평가했다. 트뤼포가 아직 평론가로만 활동하던 시절에 쓴 글로, 그가 감독으로 데뷔한 <400번의 구타>(1959)보다 1년 앞서 나왔다. 크라이테리온의 해설에 따르면 트뤼포는 이 영화의 "절대적인 단순함과 명료함"을 칭찬하며, 나카히라를 직관만으로 17일 만에 영화를 완성한 감독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상과는 인연이 없었다. 오카모토 기하치, 마스무라 야스조, 이마무라 쇼헤이 등 동세대 감독들이 명성을 쌓는 동안 초조함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나카히라는 "영화는 무엇을 찍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영상화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평론가들과 각을 세웠다. 1963년경 닛카츠 사장 호리 규사쿠와 영화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은 그는 도호(후지모토 마사우미)·도에이(오카다 시게루)에 협력을 요청했지만, 5사협정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국내에서 입지가 좁아진 그는 1967년부터 홍콩 쇼브라더스의 초청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1968년 마지막 닛카츠 작품 <더 스파이더스의 대진격>(ザ・スパイダースの大進撃)을 끝으로 완전히 해고됐다. 홍콩에서는 <특경009>(特警009, 1967), <광연시>(狂戀詩, 1968, <미친 과실>을 거의 숏 단위로 셀프 리메이크한 컬러 시네마스코프판) 등을 중국명 '양수희(楊樹希)'로 연출했다.
말년에는 새로 세운 나카히라 프로덕션의 첫 작품 <어둠 속의 요괴들>(闇の中の魑魅魍魎, 1971)으로 제24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다. 에도 말기 도사의 화가 에킨(繪金)의 생애를 잔혹한 묘사와 파격적인 성적 표현으로 그린 이 작품을 두고 물의가 일었다. 경쟁부문 선정 경위가 불투명하다며 오시마 나기사가 항의하자, 나카히라는 "프랑스가 주최하는 영화제이니 불평할 것도 아니다. 항의는 번지수가 틀렸다"고 맞받았다.
1976년 이쓰키 히로유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남프랑스에서 올로케로 찍은 <변주곡>(変奏曲)이 그의 마지막 극장 영화가 됐다. 이후에는 TV 2시간 드라마 연출을 이어갔는데, 그를 조감독에서 감독으로 승진시켜준 프로듀서 미즈노에 다키코가 끝까지 그의 재능을 믿고 맡긴 일이었다고 전해진다. 말기 위암 판정을 받은 상태에서도 들것에 누운 채 링거를 맞으며 오드리 헵번 주연작을 리메이크한 TV드라마 <토요와이드극장: 눈물·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려줘>를 연출했고, 이 작품이 그의 유작이 됐다.
1978년 9월 11일, 52세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에는 구로사와 아키라, 시부야 미노루 등이 참석했다.
그의 영화는 1999년 딸 나카히라 마미의 평전 출간을 계기로, 2005년 고치현립미술관에서, 2009년 도쿄 라퓨타 아사가야에서 다시 조명됐다. 한국에서도 2003년 서울아트시네마 특별전에서 <미친 과실>이 처음 소개된 뒤, 2005년 서울아트시네마 회고전, 2017년 한국영상자료원 회고전으로 이어졌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는 이달 나카히라 코우를 다룬 평론집 《영화의 사냥꾼 나카히라 코우》(映画の猟人 中平康, 신와샤, 부제 '일본 누벨바그의 기원')가 출간됐다. 요모타 이누히코의 평론, 요시나가 사유리 인터뷰 등을 담은 352쪽 분량이다. 닛카츠도 100주년 프로젝트의 하나로 그의 1964년작 <월요일의 유카>를 지난 1월 처음 블루레이로 냈고, 영화채널 NECO는 1~3월 그의 작품을 특집 편성했다.
나카히라의 작품은 한국에도 흔적을 남겼다. 1964년 한국에서 흥행한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은 오랫동안 나카히라의 <진흙투성이의 순정>(1963)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후 한국영상자료원 등의 연구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수입사 극동흥업은 일본 각본가 바바 아타루의 각색 동의서만 받았을 뿐 원작 소설가 후지와라 신지의 동의는 없었고, 한국판 크레디트에도 원작 표기가 없었다. 한국판에는 원작에 없는 약 9분짜리 시퀀스가 새로 추가되기도 했다. 1974년에는 나카히라가 신필름의 초청으로 자신의 <붉은 날개>(紅の翼, 1958)를 한국에서 리메이크하는 데 각본과 공동연출로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 영화는 <청춘 불시착>이라는 제목으로 그해 9월 개봉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