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일 동안 1만7985㎞ 바다 건넌 김명기 선장 "바다는 육지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출발점"

  • 이탈리아서 중고 요트 '제네시스호' 인수...지중해·수에즈운하·인도양 거쳐 강릉까지 

  • 승마지도자에서 요트 선장으로 변신..."엔진 끄고 바람으로 달리는 고요함에 빠졌다"

  • 강릉 해양레저 무한한 가능성 강조..."바라보는 바다 넘어 직접 즐기는 바다로 가야"

  • 남방큰돌고래 '안목이' 관찰·제보..."해양동물 상시 구조체계와 해양환경 인식 필요"

사진김명기 선장
돛을 활짝 펴교 대양을 항해 중인 제네시스호. [사진=김명기]

"바다는 육지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출발점"

이탈리아에서 대한민국 강릉까지 1만7985㎞. 자동차도 비행기도 아닌 세일링 요트 한 척으로 건넜다. 2023년 1월 이탈리아에 도착해 그해 7월 10일 강릉에 닿기까지 162일이 걸렸다. 지중해를 지나 수에즈운하와 아덴만, 인도양을 거쳤다.

그 항해를 마치고 지금은 강릉 앞바다에서 사람들에게 세일링의 매력을 알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강릉 마리나 '제네시스호' 김명기 선장이다.

김 선장은 지난 6일 OBS 라디오 99.9 '초대석 99.9'에 출연해 요트와 처음 만난 순간부터 1만7985㎞ 장거리 항해, 강릉 해양레저의 가능성, 남방큰돌고래 '안목이'와의 특별한 인연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진
김명기 선장이 지난 6일 OBS 라디오 99.9 '초대석 99.9'에 출연해 대담하고 있다. [사진=OBS 라디오 '초대석 99.9']
요트 선장이 되기 전 그의 삶은 바다가 아닌 말과 함께했다. 승마지도자로 활동하며 대학생들과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등장하는 옛길을 말을 타고 답사·복원하는 프로젝트를 14년간 진행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2005년 속초에서의 우연한 만남이었다.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가는 과정에서 속초 청초호 쪽에 말을 풀어 씻기고 먹이고 있었는데 한 분이 오셔서 웬 말이냐고 물어보시더군요. 설명을 드리고 무슨 일을 하시는지 물었더니 요트 선장이었다. 그때 요트를 한번 타봤는데 완전히 빠져버렸죠."

김 선장이 매료된 것은 요트의 화려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순간이었다. "바다에서 엔진을 끄고 바람으로 가는 겁니다. 무동력으로 달릴 때 찾아오는 고요함과 평화에 완전히 빠졌습니다."

그 우연한 승선은 훗날 그의 인생을 바꾸는 출발점이 됐다. "항해는 절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김 선장이 말하는 항해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출항 전에는 항로를 짜고 날씨를 확인한다. 하지만 바다에 나서는 순간 인간이 만든 계획은 자연 앞에서 수없이 바뀐다.

"항해는 절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계획을 세우고 가지만 태풍도 만나고 풍랑도 만나고 역조류와 역풍도 만난다. 위험하면 피항해야 하고 생각하지 않았던 곳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에게 예상 밖의 항구는 실패가 아니었다. 새로운 사람과 장소를 만나는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었다. 이오니아해에서 크레타로 향하던 중 태풍을 만나 이탈리아 오트란토로 피항했던 경험이 대표적이다.

"저도 오트란토라는 곳을 처음 알았습니다. 태풍 때문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고 아름다웠습니다. 거의 일주일을 머물렀는데 정이 들어서 떠나기가 싫을 정도였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곳을 알게 된 것이죠."

또 하나는 '시맨십(Seamanship)'이다. 혼자 장거리 항해에 나섰던 김 선장은 처음에는 낯선 항구에서 철저한 이방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새로운 마리나에 들어갈 때마다 세계를 항해하는 선장들이 몰려와 배를 잡아주고 물을 주며 도와줬다. 저녁이면 배에 모여 작은 파티를 하고, 서로 목숨을 걸고 지나온 바다의 정보를 나눴다. 하룻저녁만 지나도 10년 된 친구처럼 가까워진다."

김 선장은 장거리 항해 과정에서 약 40명의 외국 선장을 만났다고 했다. "지금도 서로 연락하고 있다. 강릉에 앉아 있어도 그 친구들을 통해 세계 바다의 소식을 듣는다. 세일링 요트로 장거리 항해를 하면 세계 곳곳에서 평생 친구를 만날 수 있다."

◆ 162일간의 항해..."살아서 왔구나"

김 선장이 '제네시스호'를 만난 곳은 이탈리아였다. 처음에는 배 이름을 딸의 세례명인 '마리스텔라'로 바꿀 생각이었다. 그러나 마음을 바꿨다.

"배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이름이 제네시스였다. 이름을 바꾸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세계를 항해하는 일이 저 개인에게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대로 두기로 했다."

2023년 1월 29일 이탈리아에 도착한 김 선장은 제네시스호를 타고 한국을 향했다. 강릉에 도착한 날은 7월 10일. 162일간 1만7985㎞를 이동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모두 말렸다.

"나이도 있고 몇 달 동안 험한 바다를 건너와야 하니까 모두 반대했다. 하지만 그때 아니면 언제 유럽에서 요트를 사서 장거리 항해를 해보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상당히 충동적으로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김 선장은 "자신의 항로였던 홍해와 아덴만, 바브엘만데브해협 일대의 정세가 이후 크게 불안해졌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에게 자주 건네는 말이 있다"고 했다. "뭐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금 즉시, 당장 하라고 한다."

바다에서의 162일은 낭만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특히 인도양은 김 선장에게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기억된다.

"파도가 없고 잔잔한 바다에 별이 비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그런데 육지에서 1400㎞ 떨어져 있고 바람까지 없으면 세일도 쓸 수 없다. 그때 엔진에 문제가 생기면 표류하게 된다. 인도양은 너무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너무 무서운 바다였다."
사진김명기 선장
인도양을 횡단중인 제네시스호 김명기 선장. [사진=김명기]
◆ 풍랑이 오면 누룽지와 물로 버텨

몇 달씩 바다에 머물기 위해서는 먹고 자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세일링 요트에는 오븐과 조리시설이 갖춰져 있다. 서양 선장들이 빵을 구워 먹었다면 김 선장은 압력밥솥을 준비했다.

"이탈리아에서 출항하다 보니 한국 음식을 많이 가져갈 수 없었다. 오이를 사고 중국 두반장으로 김치를 대신했다. 간장, 고추장, 참기름을 가지고 이것저것 비벼 먹었죠. 갓 지은 밥은 어떻게 먹어도 맛있잖아요."

항해 도중 10개국의 마리나에 들러 물과 식료품을 보급했다. 문제는 파도였다.

"1~2m 파도가 치면 주방에서 몸을 어딘가에 붙이고 발로 버티면서 음식을 만든다. 풍랑이나 태풍이 오면 그것조차 불가능하다. 기상예보를 보고 미리 말린 음식이나 비스킷, 누룽지, 물을 조종석에 매달아 놓고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버틴다."

제네시스호에는 방 4개와 화장실 3개가 있다. 하지만 항해 중에는 편안한 선실이 있어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 대형 화물선과 유조선, LNG선 등이 오가는 국제항로에서는 잠깐의 방심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큰 배들은 워낙 크고 제 배는 작다. 제가 계속 정신을 차리고 견시해야 한다. 그러다 마리나에 도착하면 한 이틀 동안 죽은 듯이 잔다."

그렇게 162일을 버티고 마침내 강릉항에 도착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거창한 성취감이 아니었다.

"살았다. 살아서 왔구나." 김 선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회한이 밀려왔다"고 말했다.

◆ 승마지도자에서 강릉 요트 선장으로

김명기 선장이 강릉에서 요트 관련 사업을 시작한 것은 세계 항해보다 앞선 2018년이었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돌아온 뒤 소형 범선 관광과 마리나 관련 사업을 시작했고, 자신이 강릉지역 관련 사업자 1호가 됐다고 설명했다. 국내 이용객 대부분이 요트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제가 만나는 국내 고객의 99% 정도가 요트를 처음 타는 분들이다. 세계적으로 세일링 문화는 오래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새롭게 개척되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처음 요트에 오른 사람들이 가장 놀라는 순간 역시 그가 2005년 처음 요트를 탔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엔진이 꺼지는 순간이다. "엔진을 끄고 바람만으로 배가 앞으로 나간다는 사실을 경험한다. 바람과 요트가 주는 자유와 평화를 느끼는 순간 세일링의 매력에 빠진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에게 조금은 특별한 조언도 건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쉬러 와서 자꾸 일을 한다. 요트를 타러 와서도 낚시를 하려고 하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면서 일을 한다. 쉬러 왔으면 쉬어야죠. 쉬는 법부터 다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요트는 부자들만의 레저가 아냐

요트에 따라붙는 대표적인 선입견은 '부자들의 레저'라는 이미지다. 김 선장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절대 아니다.
선진국에서 요트가 대중화된 것은 부자가 많아서라기보다 요트를 바라보는 문화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요트를 집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 젊은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버려진 요트를 구하거나 500만원, 1000만원 정도의 중고 요트를 사서 직접 고친다. 그곳에서 생활을 시작하고 세일링을 즐기는 것이죠."

김 선장은 수에즈운하 인근에서 만난 프랑스 청년 세 명의 이야기를 꺼내며 당시 모두 22세였던 세 청년은 17개월째 세계 일주를 하고 있었다. 김 선장이 어떻게 젊은 나이에 요트를 마련했느냐고 묻자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마르세유에서 세계 일주를 하고 싶다고 SNS에 올렸는데 세계 일주를 막 끝낸 사람이 찾아와 배를 1유로에 팔았다고 했다."

조건은 하나였다. 세계 일주를 마치면 똑같이 세계 일주를 꿈꾸는 다른 사람에게 그 요트를 다시 1유로에 넘기는 것이었다. 멋지지 않나. 세일링의 세계는 그런 곳이다. 바다와 항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사진김명기
김명기 선장이 강릉 초등학생들에게 정기적으로 요트 시승과 관련 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김명기]

◆ 강릉 바다, 보는 관광에서 즐기는 관광으로

김 선장의 관심은 이제 자신의 항해를 넘어 강릉의 미래를 항해하고 있다. 강릉의 커피와 해변 같은 기존 관광자원에 요트와 마리나를 결합하면 체류형 관광과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김 선장은 자신이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며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세계 해양관광 시장과 마리나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강릉이라는 해양관광 브랜드라면 적어도 300척 이상의 국제 마리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해 명동 마리나 사례도 들었다. 해양수산부가 거점형 마리나항만으로 추진한 진해 명동 마리나가 300척 규모이다. 이런 경제적 효과를 생각하면 강릉에도 국제 마리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김 선장의 제안이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강릉 바다의 미래는 분명하다. 바다를 멀리서 바라보고 사진을 찍는 관광에서 직접 바람을 맞고 바다를 경험하는 관광으로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김명기 선장
김명기 선장이 처음 발견 당시 상처투성이였던 남방큰돌고래 '안목이' 모습(지금은 회복). [사진=김명기]
◆ 남방큰돌고래 '안목이'와의 특별한 인연

김 선장에게 강릉 바다는 산업의 공간인 동시에 생명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특별한 인연을 맺은 남방큰돌고래 '안목이'가 그 연결고리다.

김 선장의 설명에 따르면 안목이는 2025년 6월 30일 강릉 바다에 처음 모습을 나타냈다. 돌고래는 무리를 이루는 동물인데 혼자 나타나 요트를 따라다닌다는 것이 굉장히 희귀했다. 그때부터 계속 관찰하고 촬영해 자료를 고래연구소와 방송사 등에 제보했다.

안목이라는 이름도 그가 붙였다고 한다. 안목 앞바다에서 만난 돌고래를 그렇게 부르며 방송사 등에 제보했고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안목이는 한동안 요트와 수영객 주변에서 모습을 보이다가 지난해 9월부터 11월 사이 자취를 감췄다. 이후 양양과 묵호·삼척 일대를 오간다는 이야기가 들렸고 12월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고 했다.

김 선장은 이후 안목이의 행동에도 변화가 있었다고 기억했다. 처음에는 멀리서 경계하며 놀았는데 다시 나타난 뒤에는 배를 따라 안목항 안까지 들어왔다. 배 아래를 돌면서 놀기도 했다.

그러나 안목이가 상처를 입으면서 김 선장은 우리나라 해양생물 보호체계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안목이가 큰 상처를 입었을 때 여러 곳에 문의했는데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김 선장은 해양수산 당국을 중심으로 야생 해양동물을 신속하게 구조할 수 있는 상시 대응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마리나와 해양레저 이용자들의 책임도 강조했다.

"항내 안전속도를 지키고 관광객과 낚시객들도 바다에 쓰레기나 폐어구를 버리지 않아야 한다. 해양환경에 대한 인식교육과 캠페인도 필요하다. 제2의 안목이가 나타났을 때 또 상처 입은 채 방치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진김명기
딸 리나와 제네시스호에서 즐거운 한때. [사진=김명기]
◆ 해양레저가 발전하려면 바다를 이용하는 것과 바다를 지키는 일 함께 해야

말과 함께 육지를 누볐던 승마지도자에서 바람을 따라 세계의 바다를 건넌 요트 선장으로. 김명기 선장의 삶에는 서로 다른 두 길이 존재하는 듯하지만 그가 추구했던 것은 어쩌면 하나였다.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일이었다.

162일 동안 바다를 건너며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을 배웠고, 낯선 항구에서는 국적도 언어도 다른 선장들과 친구가 됐다. 태풍을 피해 들어간 이름조차 몰랐던 도시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인연을 만났다. 그리고 다시 고향 강릉으로 돌아와 자신이 바다에서 경험한 자유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김 선장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는 "바다는 육지의 끝이 아니고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출발점이다. 도전과 휴식, 자유가 공존하는 곳이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처럼 바다는 제게 경계를 허물고 자유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고 단언했다.

이어 "바다는 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고 삶의 이유이고 끝없는 자유다"라며 자신이 좋아한다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꺼내며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고 확신했다.

1만7985㎞의 바다를 건너온 김명기 선장이 이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를 굳이 더 설명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에게 바다는 목적지가 아니었다. 다시 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바다 위에 세우고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