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말(馬)은 아무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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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식, 국무총리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사무처장]

화창한 가을 초입 주말, 과천 경마장에서 열린 코리아컵·코리아 스프린트 대회 시상대에 올랐다. 단거리 경주를 제패한 일본인 기수에게 일본어로 축하 인사를 건네며 문득 생각에 잠겼다. 땀방울을 흘리며 트랙을 질주한 말에게 인간은 과연 어떤 보상을 주어야 하는가.

나는 말(馬)의 입장에서 상상해 본다. 대하드라마에서 보듯이 전장에서는 목숨을 걸고 주인을 실어 날랐고, 문명의 새벽에는 무거운 짐을 지며 인류의 지평을 넓혔다. 말은 역사 내내 인간을 향한 헌신의 상징이었다. 오늘날 스포츠와 레저, 사행산업의 중심에서 삶의 활력과 가치를 선사하는 존재 역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헌신에 얼마나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가. 말이 짊어진 사행성과 중독이라는 낙인은 통제되지 않은 인간의 욕망이 투사된 결과일 뿐이다. 말은 아무 죄가 없다. 혹여나 사업자의 소홀함과 제도의 허점이 빚어낸 그늘을 말이 오명으로 뒤집어쓰고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국무총리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사무처장으로 4년째 카지노·경마·경정·경륜 등 사행산업의 건전화와 도박 문제 해결을 총괄하고 있다. 사행산업은 세수 확충, 기금 조성, 일자리 창출, 지역 발전, 여가 레저 문화 형성 측면에서 명확한 긍정적 효과를 지닌다. 다만 이용이 과몰입될 경우 중독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기에, 정책가로서 이용자 보호에 최우선 역점을 두고 역할을 다하고 있다.

오는 9월 17일은 위원회가 발족한 지 19주년이 되는 날이다. 매년 이즈음 일주일간 전국에서 〈도박문제 인식 주간〉 행사를 연다. 날로 짙어지는 불법도박의 그늘에 사회적 경각심을 깨우고, 단 한 사람라도 더 ‘자기다운 삶’을 찾도록 돕기 위한 간절한 고언(苦言)이다. ‘자기다움’과 ‘인간다움’은 남이 심어놓은 헛된 욕망과 일확천금의 환상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묻는 인문(人問)이자, 삶의 결을 세우는 인문(人文)의 문화에서 시작된다. 불법도박에 자아를 저당 잡힌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억압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인문학적 회복이다.

신종 사행성이 매일 범람하는 시대의 근본 해법은 제도의 뿌리인 ‘인간에 대한 책임’과 ‘생명에 대한 존중’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이는 추상적 다짐이 아닌 구체적 정책의 문제다. 자율 배제 제도, 고위험군 선별 및 치유, 사업자별 이용자 보호 프로그램처럼 중독 예상 이용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상담을 통해 회복으로 이끄는 실행 체계가 뒷받침될 때 책임은 현장에서 작동한다. 얼마 전 동물권과 말 복지의 화두를 던진 한국마사회장의 언론 기고문에 진심 어린 지지와 연대의 메시지를 보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말은 인간이 만든 틀 안에서 달릴 뿐이며, 부작용의 책임은 오롯이 제도를 설계하고 이용한 인간의 몫이다. 말이 지닌 본연의 아름다움을 되찾아주는 일은 단순한 시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인문학적 품격과 국격을 가늠하는 척도다.

이 명제는 현장에서 이미 증명되고 있다. 제주경마장은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채 민원과 부정적 시선에 갇혀 있지만, 불과 몇 분 거리의 승마장은 내외국인으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서울과 지척인 과천경마장 역시 핵심 관광 거점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아쉽다. 같은 말, 같은 초원 위에서 승마장의 말은 교감과 치유의 상징으로 대접받고, 경마장의 말은 여전히 사행의 낙인 속에 갇혀 있다. 두 공간을 가르는 것은 말의 본성이 아니라 인간이 설계한 제도와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그렇다면 말에게 돌려주어야 할 회복은 두 갈래다. 하나는 과다한 베팅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이용자를 보호하고 우대하는 방식으로의 발 빠른 전환이며, 다른 하나는 낙인에 갇힌 산업 자체의 회복이다. 이 둘은 뿌리가 같다. 중독자가 스스로를 되묻지 못해 무너지듯, 낙인찍힌 산업도 스스로를 되묻지 못하면 방어적 규제 속에 웅크릴 뿐이다. 인간이든 산업이든, 회복은 언제나 자신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인문(人問)에서 출발한다. 문제를 겪는 이웃에게 낙인 대신 손을 내밀어야 하듯, 말에게도 낙인 대신 제도적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이용자를 보호하는 예방·치유·재활의 안전망이 완비될 때 사행산업은 방어적 규제의 대상에서 벗어나 건전한 레저이자 관광 자원으로 도약할 수 있다.

영국 유학 시절 마주한 프리미어리그(EPL)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90분 경기 밑단에는 레저, 관광, 데이터,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이 단단히 결합한 생태계가 있었다. 경기 자체보다 그 경기를 둘러싼 신뢰의 인프라가 산업을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내 스포츠토토나 경마장 역시 마찬가지다. 생태계적 시선과 신뢰가 확보될 때 경마장은 억제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과 말이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의 장이 된다.

제주의 승마장이 보여주듯 낙인이 걷힌 자리에는 어김없이 웃음소리가 채워진다. 이제 승마와 경마라는 낡은 경계를 넘어, 말과는 무관해 보였던 이업종(異業種)과의 융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재활 승마 치료, 치유의 숲, 예술 전시와 스토리텔링이 하나로 엮일 때 말 산업은 완성된 문화 생태계로 거듭난다.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말에게 덧씌워진 낡은 시선이다. 범(凡)사행산업의 연대, 변종 사행성에 대한 선제적 대응, 지역사회와의 신뢰 회복이 그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그 구심점으로 새롭게 세울 ‘말산업 문화연구소’를 세계적 수준으로 키워 선택과 집중을 단행할 때, 말 문화는 비로소 깊이와 지속가능성을 얻는다.

오늘도 말은 아무 말이 없다. 인간이 터준 길을 침묵 속에 달릴 뿐이다. 제주의 승마장을 가득 메운 웃음소리와 경마장의 적막한 빈 트랙 사이에는 달리는 말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차가운 시선이 놓여 있었다. 그 낙인을 벗겨내고 생명의 존엄을 채워 넣는 일, 그것이 오늘 우리가 말에게 갚아야 할 오랜 빚이다. 그 빚을 갚는 일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낙인 대신 이해를 건네는 연습이기도 하다. 말의 순한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스스로에게 삶의 값을 되묻는 인문(人問)의 시간 — 그 물음이 다 끝나기도 전에, 말은 또 한 번 힘차게 트랙을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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