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책임 있는 기여는 필요하되 군사적 개입 범위는 엄격해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 초입에 있는 상선들사진AFP 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 초입에 있는 상선들 [사진=AFP 연합뉴스]

미국이 한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 안정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한국이 중동 석유의 주요 수입국이라는 점을 거론하며 “한국이 이 지역에 자원을 배치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안보 기여 요구가 호르무즈 해협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우리 정부의 고심은 깊을 수밖에 없다. 이란은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자국에 반하는 행동에 나설 경우 이를 군사 공격에 직접 참여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요구와 이란의 경고가 동시에 이어지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압박만 보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단순히 미국의 요구로만 볼 수도 없다. 이 해협의 안정은 대한민국의 에너지 안보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동산 원유의 주요 수입국이고 호르무즈 해협은 핵심 수송로다. 해협의 안전에 문제가 생기면 원유 수송과 운임, 국제 유가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이는 국내 물가와 산업에도 부담이 된다. 호르무즈의 안정은 미국만의 이해가 아니라 우리의 경제와 에너지 안보가 걸린 문제다.

이런 점에서 한국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일정한 역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이면서 해협의 안전을 위한 부담을 다른 나라에만 맡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미 동맹 역시 안보를 제공받기만 하는 관계로 유지될 수는 없다. 우리의 국익과 국제적 책임이 맞닿는 영역에서는 필요한 기여를 하는 것이 맞다.

다만 참여에는 분명한 조건이 붙어야 한다.

첫째, 목적을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항행과 우리 선박·수송로 보호’로 한정해야 한다. 특정 국가를 공격하거나 봉쇄하는 작전에 참여하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 둘째, 가능한 한 비전투 임무를 우선해야 한다. 정보 공유, 감시·정찰, 선박 보호, 수송 지원, 구조·의료 등 직접 교전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부터 검토하는 것이 순서다. 셋째, 작전 구역과 지휘체계, 무력 사용 기준을 사전에 명확히 해야 한다. 어디에서 어떤 임무를 수행하고, 어떤 상황에서 자위권을 행사할 것인지 불분명한 상태로 병력이나 군사 자산을 보내서는 안 된다. 넷째, 장병 안전을 담보할 구체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 이란이 한국의 관여를 군사 공격 참여로 간주할 수 있다고 경고한 만큼 우발적 충돌 가능성과 대응 방안까지 따져야 한다. 다섯째, 한반도 방위태세에 공백이 없어야 한다. 중동에 전력을 투입하더라도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는 데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 여섯째, 정부는 참여 목적과 범위, 예상되는 위험을 국민과 국회에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군사적 기여는 외교적 신호를 넘어 장병의 생명과 국가안보가 걸린 문제다. 충분한 설명과 절차적 정당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국익 중심 외교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도, 동맹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곳에서는 책임을 분담하되 참여의 목적과 한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 원칙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경제의 중요한 에너지 수송로다. 정부는 미국의 요구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에너지 안보를 지킨다는 차원에서 필요한 기여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다만 비전투 임무 우선, 작전 범위의 명확화, 장병 안전, 한반도 대비태세 유지라는 조건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책임 있게 참여하되 불필요한 군사적 충돌에 휘말리지 않는 것, 그것이 국익을 지키는 현실적인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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