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수출은 7000억달러를 넘어 1조달러를 향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 도약은 반도체 호황만으로 만들기 어렵다.
강경성 코트라 사장은 AI로 시장을 찾고 바이어를 연결하며, 지역 중소기업까지 세계시장으로 내보내는 ‘모두의 수출’을 승부수로 꺼냈다. AI가 K수출의 방식과 주체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사는 수출의 역사다. 1964년 1억달러에 불과했던 수출은 60여 년 만에 7000억달러를 넘어섰다. 강 사장이 2024년 11월 취임하면서 내건 목표도 ‘글로벌 수출 5강’과 ‘수출 1조달러 시대 준비’였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수출액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수출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
한국 수출은 반도체와 미국·중국 등 일부 품목과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AI 반도체 호황이 꺾이거나 글로벌 통상환경이 급변하면 전체 수출이 영향을 받는다.
강 사장이 ‘견고한 다변화’를 강조하는 이유다. 시장은 아세안·인도·중남미 등 글로벌 사우스로 넓히고, 품목은 반도체에서 바이오헬스·소비재·방산·전력기기 등으로 확장한다.
여기에 하나가 더 있다. 수출하는 기업 자체를 늘리는 것이다.
대기업에는 해외영업 조직과 현지법인이 있다. 하지만 지방의 작은 제조기업이나 스타트업은 다르다.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어느 나라에서 팔릴지, 어떤 바이어를 만나야 할지, 인증과 규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하다.
강 사장은 이 정보와 인력의 격차를 AI로 좁히겠다는 구상이다.
기업이 제품 정보를 입력하면 AI가 해외시장과 경쟁제품을 분석한다. 유망시장을 찾고 잠재 바이어를 추려낸다. 현지 인증과 규제 정보도 제공한다.
과거에는 전문인력과 해외 네트워크를 가진 기업에 유리했던 수출의 진입장벽을 AI가 낮추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업무 효율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AI가 수출의 민주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수출 경험이 없는 지역 중소기업도 AI와 KOTRA의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세계시장에 도전할 수 있다.
강 사장이 말하는 ‘모두의 수출’이다.
‘AI 수출비서’가 직접 일하는 시대
그 중심에 KOTRA가 준비한 ‘AI 수출비서’가 있다.
강사장은 “사용자가 목표만 정해 주면 시장조사, 바이어 접촉, 서류 준비와 일정 조율까지 여러 단계를 스스로 끝내고 결과만 보고하는 자율 에이전트가 일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기업 대표가 “이 제품을 독일에 수출하고 싶다”고 지시한다. AI가 시장 규모와 경쟁제품을 조사하고 바이어 후보를 찾아낸다. 필요한 인증과 규제를 확인하고 상담 자료와 서류를 준비한다. 앞으로는 바이어 접촉과 일정 조율, 후속관리까지 AI 에이전트가 담당할 수 있다.
‘대답하는 AI’에서 ‘일하는 AI’로의 전환이다.
수출 전문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는 특히 큰 변화다. 기업마다 해외시장 조사원과 수출전문가를 두기 어려웠지만 AI 에이전트가 그 역할의 상당 부분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KOTRA는 AI를 대기업이나 수도권 기업만을 위한 기술로 보지 않는다.
전국 20곳의 AI 무역지원센터를 지역 수출기업과 청년의 수출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수출희망 1000 프로젝트’를 통해 지방 영세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고, ‘K-수출스타 500’을 통해 성장 가능성이 높은 중소·중견기업을 수출 중추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AI가 시장조사와 바이어 발굴을 돕고 KOTRA의 해외 네트워크가 현장에서 기업을 연결한다.
이 모델이 확산되면 한국 수출의 구조도 달라질 수 있다. 서울의 대기업 중심에서 지역 중소기업까지, 제조업 중심에서 K푸드·K뷰티·바이오·콘텐츠·AI 기업까지 수출의 주체가 넓어진다.
수출 1조달러의 진정한 의미도 여기에 있다. 몇몇 대기업의 수출이 늘어 1조달러를 달성하는 것보다 대한민국 곳곳의 기업이 세계시장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AI로 수출하고, AI 자체를 수출한다
강 사장의 전략에서 한 단계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AI를 이용해 기존 제품을 잘 수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한민국의 AI 기술 자체를 새로운 수출산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 사장이 특히 주목하는 것이 M.AX(Manufacturing AI Transformation), 즉 제조업 AI 전환이다.
한국은 반도체·자동차·배터리·조선 등 세계적인 제조업 기반을 갖고 있다. 수많은 공장과 생산설비에서 실제 산업데이터가 만들어진다. 로봇과 스마트팩토리 기술도 축적돼 있다.
생성형 AI의 거대 플랫폼 경쟁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앞서 있지만 제조 AI와 피지컬 AI에서는 한국이 다른 경쟁을 벌일 여지가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에 AI를 결합하는 것이다.
KOTRA는 지난 6월 실리콘밸리에서 ‘2026 피지컬 AI 수퍼커넥트’를 개최해 한국 AI 기업과 미국 현지 기업·투자자를 연결했다.
한국이 자동차와 반도체를 수출했던 것처럼 앞으로는 AI가 적용된 공장 운영기술, 로봇, 스마트팩토리와 제조 AI까지 세계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AI로 수출하고, AI 자체도 수출하는 것이다.
KOTRA도 AX 조직으로 바뀐다
기업에 AI 전환을 주문하면서 KOTRA가 기존 방식으로 일할 수는 없다.
강 사장은 AI 전환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기술 자체보다 ‘데이터와 조직문화’라고 강조한다.
AI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KOTRA가 수십 년 동안 세계 각국에서 축적한 시장정보와 바이어, 기업, 통상 데이터를 AI가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KOTRA가 AI 관련 내부 추진체계를 마련하고 현장의 AI 활용을 확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AX의 본질은 AI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이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 계약은 사람이 한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수출의 본질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강 사장은 “데이터 분석과 실행은 AI가 하더라도, 신뢰 구축과 최종 협상은 결국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AI는 시장을 분석할 수 있다. 바이어도 찾을 수 있다. 서류를 만들고 일정도 조율할 수 있다.
하지만 수십억원, 수백억원의 계약을 결정하는 마지막 순간에는 결국 사람이 사람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강 사장이 그리고 있는 미래의 KOTRA는 사람이 필요 없는 조직이 아니다.
“AI로 받쳐주고 연결하며 현장에서 성과를 만드는 기관”이다.
AI가 조사와 분석, 반복업무를 맡는다면 사람은 관계를 만들고 협상하며 신뢰를 쌓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AI가 주도하는 K수출 1조달러
대한민국이 수출 1조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반도체 몇 개 품목과 일부 대기업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많은 기업이 수출해야 한다. 더 많은 지역이 세계시장과 연결돼야 한다. 수출시장과 품목도 넓어져야 한다. 그리고 AI 산업 자체가 새로운 수출동력으로 성장해야 한다.
이 모든 변화의 연결고리에 AI가 있다.
AI가 시장을 찾는다. AI가 바이어를 분석한다. AI가 수출업무를 돕는다. KOTRA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기업과 사람을 연결한다. 마지막 협상과 신뢰는 사람이 완성한다.
여기에 제조업이라는 대한민국의 강점까지 AI와 결합한다면 새로운 수출산업도 만들어질 수 있다.
AI로 기존 수출의 생산성을 높이고, AI를 통해 더 많은 기업을 수출기업으로 만들며, 궁극적으로 한국의 AI 자체를 세계에 수출하는 것.
강경성 사장이 그리고 있는 ‘K수출 1조달러’의 그림이다.
산업화 시대 대한민국을 세계로 끌어낸 힘이 수출이었다면 AI 시대의 수출은 다시 한번 대한민국 경제의 지도를 바꿀 수 있다.
수출 1조달러 시대의 진짜 승부는 숫자가 아니다. AI를 통해 대한민국 전체를 세계시장과 연결하는 것이다.
강 사장은 공직에 입문해 산업·에너지·통상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대통령비서실과 산업통상자원부 주요 보직을 거쳐 산업부 1·2차관을 역임했으며 2024년 11월 KOTRA 사장에 취임했다.
‘글로벌 수출 5강’과 ‘수출 1조달러 시대 준비’를 목표로 수출 다변화와 AI 무역지원, 제조업 AI 전환(M.AX)의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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