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한·중 FTA 2단계 협상,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국제전략학]
 
 

올해 1월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과 함께 '연내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양국 정상 합의에 따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이 본격 재가동 중이다. 1월 베이징에서 제13차 서비스·투자 후속 협상이 개시됐고, 4월 서울에서 14차, 6월 베이징에서 15차 협상을 이어가며 격월 단위 협상이 계속 진행 중이다.

2015년 발효된 한·중 FTA는 1단계가 상품교역 중심의 협정이었다면, 2단계는 서비스·투자·금융이라는 훨씬 민감하고 구조적인 분야를 다룬다. 양국의 경제 교류 규모를 생각해보면 이는 일단 양국 경제 협력의 자연스러운 진화로 보인다. 실제로 한·중 상품무역은 2021~2024년 연평균 3,000억 달러를 웃돌지만, 같은 기간 양국 서비스무역은 301억 달러에 그쳐 전체 교역의 9%에도 못 미친다. 바로 이 극심한 불균형은 미개척 잠재력인 동시에 구조적 병목의 방증으로, 숫자만 보면 협상의 필요성은 자명하다.

사실 양국은 2018년 3월부터 서비스·투자 분야 후속 협상을 개시했으나 사드(THAAD) 갈등과 한한령(限韓令), 그리고 미·중 전략경쟁 격화 속에서 실질적 동결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이렇게 8년 가까이 표류한 협상 재개가 주목받는 것은 경제적 실익과 함께 경색된 양국 관계를 관리하려는 정치적 필요와 미·중 경쟁 속에서 경제연대 강화라는 현실적 고려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한중 FTA 2단계 협상은 단순 통상 현안을 넘어 새로운 한·중 관계 재조정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양국 입장에는 분명한 온도 차가 있다. 일단 중국으로서는 경기 둔화와 대외투자 위축 속에서 자국 서비스 시장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충분히 개방됐다는 ‘개방 중국’의 이미지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반영하듯 시진핑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4대 협력 제안'을 직접 제시하면서 확장된 서비스 개방과 함께 인공지능(AI)·바이오제약·녹색산업, 위안화의 국경 간 결제 및 디지털 화폐 협력에서 한국이 더 큰 편의를 제공해 주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는 자국 기업의 대(對)한국 투자 여건 개선과 미국의 대중 견제망 강화 및 관세 리스크를 돌파하려는 중국적 계산이 자리 잡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은 수출 구조의 불안정성과 산업 다변화 과제 속에서 서비스·콘텐츠·금융·전문서비스 분야의 원칙 개방과 예외 제한이라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을 확대 적용해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아 새로운 활로를 찾고자 한다. 또 2015년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현재 일정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인공지능(AI), 에듀테크, 헬스케어 등 신산업 분야에서 우리 기업이 선제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개방 효과와 요소수 사태와 같은 공급망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소통 채널 확보에 핵심 목표를 두고 있다. 문화·콘텐츠 분야의 한한령 해소나 게임 판호 발급 정상화, K-콘텐츠 유통 규제 완화도 국민적 관심사다.

이 점에서 양국의 입장은 다르다. 중국 측이 ‘실질 협력 촉진’을 거듭 강조하지만, 중국이 말하는 개방이 실제 제도 변화로 이어질지는 별개 문제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정부조달, 지식재산권, 네거티브 리스트 상의 시장 진입 문제 등 핵심 쟁점에서 여전히 자국 산업 보호와 통제라는 기본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이번 협상을 통해 자유롭고 개방적인 서비스 교역, 예측 가능한 투자 환경 조성을 목표로 내세운다. 관세 인하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기업의 현지 사업 예측 가능성을 여하히 실질적으로 높일 것인가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 문제는 ‘무엇을 더 열 것인가’보다 ‘어떻게 열 것인가’에 있다. 이 점에서 공세적인 중국의 입장에 대한 한국의 우려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우선, 중국은 OECD 등 주요 42개국 중 인도에 이어 두 번째로 서비스 분야 해외 자본 진입 제한이 높은 국가다. FTA 협정문에 개방이 명기되더라도 실제 운영 단계에서 '보이지 않는 규제'가 작동하게 되면 실질적 개방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또 경제 안보 리스크의 심화도 우려된다. 반(反)간첩법과 데이터보안법에 규정된 ‘국가 안보’를 이유로 상시 통제가 가능하며, 이는 자칫 우리 기업이 자의적 법 집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또 미·중 갈등 심화에 따른 '샌드위치' 리스크도 분명히 존재한다. 민감 문제들이 미국의 대중 견제 프레임과 충돌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한중 FTA 2단계 협상은 양국 관계 회복의 시금석이자 우리 서비스 산업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 기회지만 그만큼 위협도 병존한다. 특히 이번처럼 경제와 안보, 산업과 외교가 한꺼번에 얽혀 있는 사안에서는 더욱 그렇다. 관계 개선이라는 큰 그림에 매몰돼 협상의 실질적 내용을 소홀히 하면, 성과는 상징에 그치고 위험은 고스란히 남는다. 시장 개방의 유혹에만 끌려가면 협상은 실리보다 상징, 안전보다 속도를 택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서둘러 합의한 정치적 성과는 잠시 빛날 수 있지만, 한 번 잘못 설계된 규범은 오랫동안 기업과 산업에 부담으로 남을 수 있음을 분명하게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의 협상 전략은 실질적인 개방 내용과 그에 따르는 위험을 얼마나 정교하게 규범화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일단 핵심은 개방 수준의 확대보다 개방 방식의 정교화에 있다. 우선, 협정문 상으로 시장 접근이 허용돼도 ‘실질 개방’을 보장하는 절차적 장치가 협정문에 반드시 담겨야 한다. 둘째는 공급망과 경제 안보가 협상 의제의 중심이 돼야 한다. 요소수나 희토류처럼 돌발적 수출 통제가 반복될 수 있는 품목에 대한 사전 통보, 협의 의무, 상설 핫라인 설치 등 제도적 안전판 마련도 필수다. 또한, 투자자 보호와 분쟁 해결 장치의 실효성 제고와 함께, 문화콘텐츠와 데이터 분야에서는 시장 개방 못지않게 지식재산권 보호, 데이터 이동의 예측 가능성, 자의적 법 집행 억제가 핵심 협상 목표가 돼야 한다.

결국 한·중 FTA 2단계 협상의 성패는 개방의 폭보다 시장이 실제 작동 가능성 실현에 있으며, 이 과정에서 우리 기업과 산업을 지킬 안전판을 얼마나 촘촘히 설계했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냉정한 현실 인식 위에서 속도보다 방향, 타결 시점보다 타결 내용에 초점을 맞춘 협상력의 고수다. 이번 2단계 협상은 미래 한·중 경제 관계는 물론 한국의 대외 경제 전략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 아니라 향후 한·중 관계의 전반적인 방향 설정을 가늠할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강준영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교수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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