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전기 풍부한 호남···해안가 염도 우려는 클린룸 기술로 극복

  • 용인 15GW·110만톤 부족 한계 다달아

  • TSMC·美 글로벌파운드리스도 해안가 분산 배치

  • 전문가들 "지역, 후공정 클러스터부터 단계적 연착륙해야"

전라남도 나주시의 영산강 일대 사진연합뉴스
전라남도 나주시의 영산강 일대 [사진=연합뉴스]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비대화로 전력과 용수 부족 우려가 심화하면서 호남권 인프라가 실질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영산강 수계의 풍부한 수자원에 대규모 재생에너지와 한빛원전을 결합한 안정적 전력망까지 갖춰 수도권 과밀을 해소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4일 지방자치단체와 한국전력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남 지역에서 공급 가능한 잠재 전력은 풍력발전 21.3GW, 태양광발전 34GW 등 총 55GW 이상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발전량 수요 15~16GW의 약 3.5배에 달하는 규모다. 정부가 추진 중인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국책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면 호남권의 재생에너지 수용 용량은 2026년 21.3GW에서 2030년 46.1GW로 2배 이상 확대될 전망이다.

여기에 한빛원전 등 대규모 기저 전원을 고루 갖춘 점도 경쟁력으로 꼽힌다.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대응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현재 용인 클러스터 계획대로라면 15GW의 전력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수치"라며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호남권 등 전력 생산지 인근으로 산업을 분산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가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력 수요의 일부를 LNG 발전소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영호남 등 지방에서 송전망을 통해 끌어 쓰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초고압 송전망 건설은 막대한 비용과 수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과의 갈등 등 잠재적 리스크가 크다. 이에 대해 국회입법조사처는 "국가가 입지를 먼저 결정하고 사후에 인프라 계획을 수립하는 기존의 중앙집권적 개발 방식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고 짚었다.


호남권은 용수 인프라 면에서도 탄탄한 기반을 갖췄다. 영산강 수계의 다양한 수자원을 비롯해 새만금, 서남해안권의 대규모 담수, 영암호 등 풍부한 수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수도권의 경우 한강수계 다목적댐(소양강댐·충주댐) 여유량은 현재 일평균 5만㎥, 2035년이 돼도 8만㎥에 불과하다. 오는 2050년에는 하루에 약 109.7만㎥ 규모의 용수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일각에서는 호남권 입지를 두고 염도가 높은 해풍이 반도체 정밀 장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반도체 공장은 염분이 많은 해안 지역을 피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반도체 생산의 핵심인 팹 클린룸은 외부 공기에 직접 노출되지 않는다. 고도화된 공조 시스템과 초정밀 필터, 제습 및 방진 설계가 상시 가동돼 내부 환경을 완벽히 통제한다. 외기의 염도나 습도가 공정 수율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실제로 글로벌 파운드리 1위 기업인 TSMC는 주요 생산 거점 11곳 이상을 대만 서부 해안 산업벨트에 집중 배치했다. 글로벌파운드리스 등 미국의 핵심 반도체 기업들 역시 지정학적·자연재해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내륙에 팹을 몰아넣지 않고, 해안 등으로 분산해 운영 중이다. 박 교수는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용수·전력 공급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특정 지역에 반도체 생태계를 전적으로 몰아 조성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반도체 산업 분산 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로 이어지려면 기업의 경영 판단을 존중하고 투자 속도도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병훈 포스텍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현재의 지방 이전 논의가 지나치게 급진적으로 진행되는 점은 우려스럽다"며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맞아 충분한 자금 여력을 확보하고 평택과 용인 공장의 수요가 포화 상태에 이른 뒤에 지방 이전을 단계적으로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제언했다.

이 같은 제약을 감안할 때 후공정 클러스터 우선 조성이 현실적 대안으로 꼽힌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전공정까지 한 번에 이동하면 지역 경제 파급효과는 확실하겠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전문 인력 확보와 협력사 간 실시간 협업 애로 등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힐 것"이라며 단계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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