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주 농산물 수입이 사상 처음으로 5조원을 넘어섰다. 농업경영체의 한사람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 앞으로 더 좋은 품질과 생산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마음이다.
제주 감귤은 단순한 과일이 아니다. 제주 농업의 뿌리이고, 농민의 생계이며,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기반이다. 그런데 지금 농민들은 기후위기와 생산비 상승, 인건비 부담, 물류비 부담에 더해 수입 과일과의 경쟁까지 감당하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 서리와 동해를 견디며 농사를 지어도 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면 농민의 1년 노력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설상가상으로 농민에 시름을 더한 사건은 미국산 만다린 무관세 수입이다. 한-미 FTA에 따라 단계적으로 낮아져 온 만다린 관세가 2026년 3월 이후 완전히 사라져 제주 감귤과 만감류 농가가 받을 충격은 결코 작지 않다. 이미 수입량은 빠르게 늘고 있다. 2018년 8톤 수준이던 미국산 만다린 수입량은 2024년 2874톤, 2025년에는 7619톤까지 늘었다. 관세가 남아 있을 때도 이 정도였는데, 완전 무관세가 되면 산지 가격과 수급 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정부는 최근 설탕세 또는 부담금을 도입한다고 한다. 이는 더 큰 부담을 주는 정책일 수 있다. 감귤을 활용한 음료와 가공식품에 추가 부담이 붙으면 제조업체는 원료 매입을 줄이거나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비싸진 제품을 덜 찾게 되고, 결국 그 피해는 다시 산지 농가로 돌아온다. 가뜩이나 미국산 만다린 무관세 수입으로 제주 감귤의 판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내 가공 판로까지 좁아진다면 농민은 어디에 기대야 할지 막막하다. 감귤 가공산업은 그나마 농가에 작은 숨통이 되어 왔다. 모든 감귤이 선물용 상품으로 팔릴 수는 없기 때문에 크기나 모양이 조금 다르거나, 상품성이 떨어지는 물량도 주스, 청, 잼, 가공식품 등으로 활용하여 농가 손실을 줄이고 지역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설탕세가 국민 건강을 위한 정책이라는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정책은 한쪽 목적만 옳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농업 현장에 어떤 부담을 줄지, 누가 피해를 떠안게 될지, 지역 농업과 영세 가공업체에 어떤 연쇄 충격을 주는지 함께 살펴야 한다. 대기업은 제품을 바꾸고 광고를 늘려 대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농민과 영세 가공업체, 지역 소상공인에게는 그런 여력이 없다.
농업은 한 세대의 생계만이 아니다. 후대와 함께 지켜야 할 삶의 터전이고, 제주도민의 문화와 정신이 깃든 뿌리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농민의 어깨에 또 하나의 짐을 얹는 정책이 아니라, 무너지는 판로와 가격을 지켜낼 실질적인 대책이다.
설탕세 논의가 진정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면, 먼저 농민의 삶을 살펴야 한다. 미국산 만다린 무관세 수입으로 벼랑 끝에 선 제주 감귤농가에 또 다른 부담을 지우는 것은 농민에게 버티라는 말이 아니라 포기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설탕세 논의를 비롯해 제주 감귤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정부와 국회는 현장의 목소리부터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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