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팬덤을 가진 그룹 BTS의 팬들이 지난 12일 부산 공연에서 75분 동안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일이 벌어졌다.
하이브는 이후 현장 안내 혼선과 팬 선물 배포 구역의 병목 현상, MD 상품 수령 지연 등을 이유로 들며 사과했다. 그러나 팬들이 불편을 호소한 이유는 단순히 시간이 늦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공연을 보러 온 한 팬은 "왜 기다리는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며 "공연장 뒤편에서 소리만 들릴 뿐 팬들끼리 소문을 주고받으며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22년 부산 공연도 직접 경험했다. "당시에는 동선이 불분명해 9시간 가까이 서 있었다. 전반적인 운영이 엉망이었다. BTS 공연은 원래 시간을 잘 지키는 것으로 유명해서 이번에는 더 당황스러웠다.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이었다. "
두 달 전인 4월 9일, 같은 투어는 서울 북쪽 고양종합운동장에서 막을 올렸다. 팬들은 비가 쏟아지는 야외 육상경기장에서 공연을 관람해야 했다.
두 사례 모두 BTS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K팝이 직면한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세계 시장에서 K팝은 이미 초대형 산업이 됐지만, 한국의 공연 인프라는 과연 그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가.
세계적 K팝, 그런데 무대가 없다
서울에서 대형 스타디움급 공연을 열 수 있는 대표 장소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은 2023년부터 리모델링에 들어갔고, 2026년 12월에야 재개장할 예정이다.
수도권에서 6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인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잔디 훼손 우려로 콘서트 대관이 제한적이며, 또 다른 주요 선택지인 고척스카이돔은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는 프로야구 시즌에는 사용이 쉽지 않다.
결국 공연 기획사들은 1만5000석 규모의 KSPO돔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 등 제한된 대체 공연장을 두고 날짜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공연장 부족 문제는 잠실 주경기장 폐쇄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 한국 대중음악은 수십 년간의 검열을 거친 뒤 1990년대 말에야 국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대형 공연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산업의 상업적 성장보다 뒤늦게 이뤄졌다.
서울은 땅이 부족하고 그 가격 또한 높다. 대형 공연장 건립 사업은 공사비 부담, 행정 절차, 사업 지연 등 여러 변수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 도봉구에 추진 중인 서울아레나는 2015년께 처음 논의됐으며, 현재 2027년 5월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은 도시를 만들었고, 한국은 공연장을 찾는다
일본은 다른 모델을 보여준다. 도쿄돔, 교세라돔 오사카, 나고야와 후쿠오카의 유사한 대형 공연장은 투어 아티스트들이 이동할 수 있는 비교적 분명한 '돔 투어' 회로를 제공한다. 이들 공연장 상당수는 대규모 관객을 흡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지역 인프라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도쿄돔시티는 공연장을 중심으로 호텔, 식당, 쇼핑 시설, 지하철 접근성이 함께 묶인 복합 엔터테인먼트 구역이다. 콘서트가 고립된 스타디움 행사가 아니라 하나의 도심형 소비 경험으로 확장되는 구조다. 일본 공연 역시 혼잡, MD 대기줄, 호텔 요금 급등 등의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않지만, 주변 인프라가 관객 흐름을 분산시키고 팬들이 공연 전후로 머물고 이동하고 소비할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해외 팬은 비교 기준으로 싱가포르를 꼽았다. "싱가포르는 공연 운영이 가장 잘 된다고 생각한다"며 "대규모 행사에서도 입장부터 퇴장까지 전 과정이 매우 체계적으로 관리된다"고 말했다.
중국은 물리적 수용 능력은 크지만 K팝의 접근성은 불확실하다. 베이징 국가체육장은 약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고, 상하이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는 약 1만8000명을 수용한다. 그러나 2016년 한국의 사드 배치 이후 시작된 외교적 냉각 국면 속에서, 대형 K팝 가수가 중국 본토에서 대규모 콘서트를 연 사례는 거의 10년 가까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9월에는 하이난에서 열릴 예정이던 드림콘서트가 개최 며칠 앞두고 무기한 연기됐다. 같은 달 푸저우에서 예정됐던 케플러 콘서트도 취소됐다. 홍콩에서는 K팝 공연 재개 조짐이 일부 나타나고 있지만, 중국 본토 시장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다.
공연장은 문화시설이 아니라 산업 인프라다.
한국 대중음악 콘서트 시장은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일부 서울 대형 공연장이 리모델링으로 문을 닫았거나, 콘서트 사용이 제한됐거나, 이미 대관이 차 있었음에도 티켓 매출은 29% 증가해 약 7억3000만 달러에 달했다.
오아시스와 머라이어 캐리 등 해외 아티스트의 아시아 투어 일정을 다뤄온 공연 기획 관계자들은 한국의 공연장 부족 문제가 2010년대 마돈나와 아델의 내한 불발과도 연결돼 있다고 봤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2024년 아시아 투어가 도쿄에는 들렀지만 서울에는 오지 않은 사례 역시 같은 맥락에서 언급된다.
한국을 건너뛴 공연을 보기 위해 팬들이 해외로 나가면 숙박, 식음, 교통, MD 소비가 다른 나라로 흘러간다. 반대로 대형 공연이 한국에서 열리면 그 소비는 지역 상권으로 들어온다.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희정 씨(62)는 BTS가 2022년 10월 같은 경기장에서 'Yet to Come in Busan' 공연을 열었던 때부터 비슷한 흐름을 지켜봐 왔다.
김 씨는 "BTS가 컴백하거나 큰 공연을 하면 관련 협업 상품이 들어오는데, 그런 상품들은 확실히 매출에 도움이 된다"며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부산에 온다면 도시에는 좋은 일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계획은 넘치는데 무대는 아직 없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브리핑에서 우선 지역 스포츠 시설의 음향·조명을 보강해 공연장으로 활용하고, 향후 몇 년간 서울아레나와 고양아레나를 활용한 뒤, 장기적으로는 대형 전용 돔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 장관은 "5만 석 규모의 돔구장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며, 스포츠 시설을 임시로 전환하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스포츠와 공연을 모두 염두에 둔 공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아레나는 약 10년째 추진 중이지만 아직 문을 열지 못했다. 고양의 CJ라이브시티 역시 2023년 공사가 중단된 뒤 사업이 멈춰 있다.
잠실실내체육관은 2026년 7월 철거될 예정이고, 인근 학생체육관 역시 그로부터 1년 뒤 철거가 예상돼 단기적으로는 공연장 부족이 더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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